<동물의 숲> 친구 사이? 주민 사이? 애매한 사이

조지오웰 『1984』

by 타미

며칠 전 다이소에서 파는 우정 문답을 할 기회가 생겼다. 문득 우정과 친구 사이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었달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친구란

서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심적으로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이일 것이다.


예를 들면 동숲의 최애 주민 같은 존재 말이다.

내 섬의 빙티 라는 주민은

가끔 우리 집에도 놀러 오고, 선물을 주고받고,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며, 고민도 나누고, 애칭도 만들어준다.


빙티의 생일이 되면 너굴상점에서 선물 포장지를 구매해 어렵게 고른 체크무늬 니트셔츠를 포장하고 빙티의 집으로 향한다.

항상 반쯤 감긴 눈으로 다니는 빙티는 선물을 풀자마자 고양이 특유의 동공 확장을 보여주며 나의 선물에 담긴 노력을 아는 듯 기쁨의 리액션을 취한다.

나는 100퍼센트 빙티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빙티도 나를 단짝으로 여기고있다.)

그리고 내 현생의 친구들 나봉과 반장이도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정 문답을 했던 은냥이는 문답을 하긴 했지만 친구라고 말하기엔 뭔가 인지부조화가 느껴졌다. '친구'라는 단어가 억지로 끼워 맞춰진 느낌


분명 같이 보낸 시간, 같이 갔던 식당과 카페들 동숲 주민들처럼 주고받은 선물, 서로의 애칭? 별명도 있고 서로의 취향도 조금은 아는 사이

내 최애주민 빙티와 유사한 구조를 띄고 있으나... 어디선가 조지오웰의『1984』에 나오는 '이중사고'가 이런 느낌일까?

친구이지만 친구가 아니다를 둘 다 동시에 믿는 느낌

출처 : 니켈로디언 네모바지 스폰지밥

분명 빙티나 나봉이 반장이는 서로의 상호작용 속에서 기대, 의무, 역할이 없이 100퍼센트의 나를 보여줘도 된다는 안도감이 기저에 깔려있다.

즉 내 일기장을 훔쳐봐도 타격 없는 사람들

덤앤 더머 베이스

뚱이와 스폰지밥이 서로 멍청하게 수용하는 느낌?

나에대한 기대치가 낮아 해방된 느낌에 가깝다.


은냥이는 분명 가까운 사이는 맞다.

근데 항상 앞에서는 자가검열이 돌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말하면 상처받지 않을까?' 단어를 순화 시키기도 하고 '이렇게 카톡 보내도 될까?' 전송 전에 조금 더 생각해보기도 한다.

뭔가 특별한 책임, 위상, 기대에 깔려있단 소리겠지

이 사람 앞에선 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

텔레스크린이 나를 감시하며 언어의 통제를 받는 윈스턴 스미스의 삶을 체험하는 듯


남들에겐 그냥 공수표 날리듯 하는 말들도

“언제 한번 밥이나 같이 먹어요~”

“담에 시간 나면 연락하세요!“

라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으면 안될 무거운 말이 되어버린다.


의미 있기에 특별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에서 멀어지는 것인가?


잘 짜여진 코드로 돌아가는 빙티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안심 이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데

겁나 방대한 뉴런으로 돌아가는 인간은 예측불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기란 어렵다.

특히 관계의 변동 가능성이 크다면 더욱 자가검열이라는 궤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마치 <동물의 숲>보다는 미연시에 가까운

질문에 대답을 할 때 말 한마디에 호감작이 달라지고 엔딩 루트가 달라지는 관계라면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은냥이는

내 삶에서 ‘친구’라는 이름에 맞춰 넣을 수 없는,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특별하게 남아 있는 사람이다.


관계라는 게 꼭 이름을 가져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이렇게 애매한 경계에 서 있는 사이에서

나는 내 관계의 의미를

천천히,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찾아가고 있다.


오늘의 책 추천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가장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책!

인지부조화, 언어의 한계,

사회적 규범과 개인감정의 모순을

가장 강렬하게 파고드는 소설

조지오웰의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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