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마날리
한증막 같은 델리에서 하루 만에 도착한 마날리 뒷산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었습니다. 마닐리는 여름 휴양지로는 천혜의 조건을 타고 난 곳입니다.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꿀루 계곡에선 래프팅이 한창이고, 인도 중남부 사람들은 생전 처음 눈을 밟아 보기 위해 로탕패스를 오릅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마날리는 꼭 알프스 같습니다.
* 인도에서의 철칙 하나 *
인도는 100m 미인이다. 환상을 깨기 싫다면 절대로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된다. 경고를 무시하고 다가서는 순간 인도는 환상에서 사라진다.
마날리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입니다. 적당히 어수선하고, 적당히 시끄럽고, 적당히 지저분(?)합니다. 이 도시가 적당히 괜찮은 것은 꿀루 계곡을 따라 삼등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초입은 뉴마날리라 불리는 상업지역으로 시끄럽고, 번잡하며, 악취를 가끔 풍기는 곳이고. 약간의 언덕길을 따라올라 작은 개울을 건너면 나타나는 올드 마날리는 조금은 소음에서 멀어져 있고 공기도 신선하여 여행자들이 묵기에는 가장 좋은 입지입니다. 세 번째 지역은 뉴마날리에서 한참 떨어진 바쉬쉿 지역인데 거리가 좀 멀다는 흠이 있지만, 설산이 코앞에 보여서 오래 머물기에는 좋은 곳입니다.
마날리에 도착한 순간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선택할 여유도 없이 정류장에 나온 삐끼를 따라 올드 마날리 지역에 숙소를 잡았는데 나쁘지 않은 가격에 깨끗하고 위치도 좋았습니다. 이런 땐 나를 따라다니는 행운에 늘 감사하게 됩니다.
밤새도록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시달린 육신을 달래 줄 방법이 가이드북에 적혀 있었습니다. "바쉬싯 지역에 가면 크지 않지만 물 좋은 천연 노천 온천이 있다." 인도에서 노천 온천이라니 눈이 번쩍 뜨입니다. 빨랫감을 싸들고 목욕용품을 챙겨 오토릭샤를 탔습니다.
에게…. 이게 진정 가이드북에서 말하던 노천 온천? 크기나 모양새도 어이없지만, 입지가 말이 아닙니다.힌두 사원 옆에 위치하여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얼핏 본 물 상태 또한 심각해 보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했던가? 갈등도 잠시, 내 생전에 이런 물에서 멱 감아 볼 일이 언제 또 있겠으며, 포동포동 살찐 배를 인도 사람에게 보여 줄 기회가 또 언제 있으리오. 길바닥에 서서 옷을 훌훌 벗어던졌습니다.
어? 이거 장난 아닌데…. 물의 따뜻함이 기가 막힙니다. 때맞추어 내려주는 보슬비가 달아 오른뺨을 시원하게 적셔 줍니다. 둥둥 떠다니는 이물질은 때가 아니라 유황 성분이었습니다. 약간의 달걀 썩은 냄새와 함께 물의 매끄럽기가 그지없이 좋습니다.
빗속의 노천 온천…. 지나가는 인도인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봅니다. 눈만 찔끔 감으면 나야 부끄러울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늘어진 배를 보는 사람만 갑갑할 뿐…. 카카
이틀 후…. 북쪽 지방으로 올라왔지만 해가 나면 햇볕이 정말 따갑습니다. 나가르를 다녀오는 길에 잊지 못해 바쉬싯으로 다시 갔습니다. 이번엔 유료 온천을 찾으려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모른답니다. 분명히 가이드북에 있다고 쓰여 있는데…. “에라 돈 굳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너저분한 노천 온천도 그 나름의 맛이 있습니다. 뜨거운 물에서 나오면 바람결이 너무도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2년 후 다시 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노천 온천 바로 곁 힌두사원이 진짜 온천이었습니다. 멀쩡한 온천을 눈앞에 두고 길거리에서 무료 온천을...ㅋㅋ. 유료 온천은 사람들이 많아도 주변에 담장이 쳐 있어 온천하기엔 아주 좋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고 물이 무진장 뜨거워서 처음엔 입욕하기 어렵지만 조금 적응되면 따근 따끈함이 시원함으로 바뀝니다. - 아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