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고소증, 고산병
라사를 출발한 지 이틀이 지난 오후 3시 무렵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근처 롬복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시간도 충분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언제 5,000m대 산을 걸어 볼 기회가 있겠습니까? 1시간에 4km 걷는다면 두 시간 정도면 도착하겠지…. 롬복 사원의 고도는 5,100m 정도에 베이스캠프는 5,200m를 좀 넘습니다. 길도 좋고 그리 가파르지 않아 걸을 만합니다.
웬 걸요. 제 특기가 바로 헛발질입니다. 꼬불꼬불한 길을 질러가겠다고 산허리를 타고 무작정 오르다 산양을 만났습니다. 산양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가까이 다가가도 피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얼씨구나, 정신없이 따라다녔습니다.
짐 가볍다고 껑충껑충 뛰며 앞서 걸었더니 큰 등짐 진 불쌍한 몇몇 분들은 저를 따라오다 모두 망연자실…. 길은 사라지고 베이스캠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컥컥
시간은 어느덧 저녁 7시…. 돌아 돌아 저 아래 집단으로 텐트가 보입니다. 그게 바로 베이스캠프. 지나쳐도 한참을 지나쳤습니다.
미끄럼 타듯 단숨에 날라서 내려갔습니다. 숨을 가다듬자 갑자기 몸이 솜처럼 처집니다. “너무 무리했나? 조금 쉬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며칠 동안 5,000m대를 오르내리면서 고소 적응 다 되었다고 깝죽거린 벌을 받은 겁니다. 속이 메슥거리고 헛구역질이 납니다. (음~~ 임신인가? 날짜를 계산해 보지만 답이 안 나옵니다) 그래도 입덧은 계속되고….
일행들은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음식 냄새에 속이 울렁거려 상을 발로 차고 싶습니다. 한술 더 떠 고량주도 깝니다. 이놈의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신경질이 끝까지 올라왔습니다. 화를 낼 수 없어 모포를 뒤집어쓰고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웃뺘가 고소 먹었나벼~. 고소증은 사람마다 증상이 다른데 이유 없이 신경질을 내는 사람도 있대." 컥컥…. 이유 없이 신경질? 속 뒤집히는데 온갖 냄새 풍기면서 참으라고? 울렁거림이 좀 가라앉자 이번에는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옵니다.
어느덧, 램프 불도 꺼지고, 텐트 안은 적막강산…. 시간은 안 가고 머리는 아프고, 울고 싶어라~~. 이대장이 준 다이막스를 먹었더니 머리는 고사하고 손발까지 찌릿찌릿 저리기 시작합니다. 오줌은 또 왜 그리 자주 마려워지는지…. 내가 못 살아. 엎친 데 덮쳤습니다. (다이막스는 고소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이뇨작용을 한다는군요. 사람에 따라 손발 저림도 온답니다. 효과를 보려면 3일 전부터 먹어야 했습니다.)
하늘의 별을 찍겠다고 벼르고 별러 삼각대를 들고 왔는데 도저히 카메라를 들 정신이 아닙니다. 부들부들 떨며, 아픈 머리를 감싸고 텐트 밖으로 기어 나와 겨우 지퍼 내리고 오줌 누면서…. 그래도 이런 하늘을 언제 보나 싶어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꺄악~~~. 북두칠성이 바로 코앞, 롬복 사원 방향에서 등잔불처럼 깜빡거립니다. 별은 밝게 빛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깜빡인다는 사실을 어릴 때 이후 잊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주르륵…. 서러운 일도 없는데 그냥 눈물이 흐릅니다. 아련한 옛 기억과 어머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싸아합니다. 어머니…. 정말 오래 잊고 있었던 단어입니다. 깜빡이는 별을 보자 강원도 두메산골 옛집의 냄새가 나는 듯했습니다.
말은 이럴 듯 멋스럽게 하지만…. 깜깜한 오 밤 중, 시커먼 텐트에서 다 죽어가는 사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나와서 부들부들 떨며, 바지 내리고, 쉬하면서 눈물 콧물 훌쩍거리는 꼬락서니를 누군가 보았다면 뒤집어졌겠죠. 새벽 세시에 한 번 더, 다섯 시에 한 번 더….
새벽엔 북두칠성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하늘에 하얀 구름처럼 은하수의 강이 펼쳐져서 내 눈을 다시 한번 의심했습니다. 날이 흐렸나? 어두운데 구름이 보이던가? 아~~~ 저게 바로 은하수지…. 다행스럽게 아침 무렵 아픈 머리도 누그러졌습니다.
고산병
고도가 높은 지역을 여행하시는 분은 참고하세요. 고산 반응은 산소가 일반적인 대기보다 30%쯤 적은 해발 2,500m 무렵에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사람마다 편차가 크고, 적응력이 달라서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고산증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지 알 수 없습니다. 대개는 3,000m에서 확실한 증상을 보이는데 두통, 무력감, 구토 증세를 동반합니다. 건강 상태나 체격 조건과는 상관없이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며칠간 시달리거나 아예 겪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산증은 같은 고도에서는 2~3일 적응하면 없어지고 고도를 낮추면 바로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신 갑자기 고도를 높이면 확실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리프트나 차를 타고 오르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여행자라면 고산병에 대해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신기한 반응을 체험하는 재미가 또 다른 여행의 묘미죠. 고산 반응을 평지에서 체험해 볼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숨을 쉬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스피드를 내어 도로를 뛰어 보세요. 한 번으로 부족하면 조금 숨을 돌리고 다시 한번 더! 하늘이 노랗고 어질어질할 겁니다. 그게 바로 고산증 초기 증상입니다.
아직 고산병을 완벽하게 대처하는 약은 없습니다. 증상을 약간 개선하는 보조제가 있지만, 이 약도 체질에 따라 편차가 심한 편입니다. 시중에 다이막스라는 약이 있습니다. 이 약은 고지대를 가기 2~3일 전부터 복용해야 효과를 봅니다. 이뇨 성분이 있어 소변이 자주 마렵습니다. 중국에는 홍경천이라는 보조약물이 있습니다. 비아그라가 고산증에 효과가 있다는 거 아십니까? 혈관을 확장하는 성분이 있어 고산증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산악인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고산증에 가장 확실한 대처법은 고도를 낮추는 것과 산소의 보충입니다. 심하게 고통스럽다면 무조건 고도를 낮추어야 합니다. 위험한 상태에서 높은 고도에 있으면 폐수종으로 사망하는 때도 있습니다. 두렵다면 산소통을 메고 다니면 되겠지만, 이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발 고도가 높은 곳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저지대로 내려오면 똑같은 고통을 당한다고 합니다. 이 경우 산소 과다가 원인이 됩니다. 산소부족보다 산소 과다가 더 위험하다고 합니다.
TIP : 고산병에서 머리가 아플 때는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이 잘 듣는 편입니다. 고산지대를 여행하시는 분은 두통약을 넉넉히 준비해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