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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는 급여 꼭 보내주세요(中)

현장에서 신었던 안전화는 사실 군대에서 가져 나온 전투화를 신었다.

by 서예빈



흉통이 지속될 경우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약을 처방받아서 나온 뒤

급히 돌아간 현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술 한 잔 마시지 않는 어색한 저녁 식사를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서 남자는 “안 뒤진다고 이 새끼야.”

하는 10원짜리 조언만 내뱉었고 몸에 열감이 돌아

편히 쉬지 못했다. (누가 보면 의사인 줄 알겠다)



그렇게 현장 마지막 날, 모든 정리를 끝내고

탑차 안에서 돌아오는 풍경을 바라보는데

어딜 가도 아름다워 보였던 길목이 그렇게 암울할 수

없었고, 마음속에서 ‘그만둬’ 하는 말만 맴돌았다.



서울에 도착해서 며칠이 지나도 몸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급기야 숨 쉴 때 ‘쎄엑 - 쎄엑 -‘ 하는

바람 새는 소리가 들릴 정도.



조급해진 나는 집 근처 가장 큰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더니 기계처럼 말하는 의사 선생님의 몇 가지 질문이 끝나자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서 엑스레이 촬영과

산소 포화도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다) 검사를 했는데

진행하는 내내 미소를 머금고 계셔서 별 문제없겠거니

플라세보 효과 때문이겠다 생각했다.



들어간 호흡이 5인데 3만 나오죠? 천식 초기네요.



호흡기 질환이라고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전부였던

내게 들려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



미세 분진이 많은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질환이라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위로에도 심란해진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정밀 검사 비용을 포함한 진료비는 일반 진료비 20배 정도.

처방받은 흡입형 레뷸라이저* 를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별 일 아니라는 듯 핀잔을 주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라 전화를 걸어

천식 진단을 받았다 얘기하니 돌아오는 남자의 대답


좋겠다 새끼야.


지금 누굴 놀리는 건가? 아니라면 멍청해서 상황 파악을 못하는 건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지만 전해야 할 말이 있었기에

숨을 정리했다. “이제 현장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잠깐 정적, 그리고 남자의 대답. “알겠다, 쉬어라.”



상경 후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그만둔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나는 돈보다는 건강이 훨씬 중요했다.

일이야 또 구하면 되는 거니까. 이 일도 그렇게 구한 일이니까.

그렇게 마음 편히 생각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일자리는 하나 둘

줄어들고 있었고, 나는 3달이 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실직과 함께 줄어드는 통장 잔고.

그리고 서울 살이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결정적인 순간.

남자는 그 시간 동안 마지막 급여를 보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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