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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hole Oct 06. 2023

Detour 4. 얌전한 금리가 화내면 무서워요.

그런데 요즘 금리가 제일 무서운 시절이네요.

  여의도 금융바닥 생활을 몇 년 있으면 20년째가 되어가는데, 요즘처럼 '금리'가 주목을 받아본 적이 저의 기억에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도 채권금리가요. 채권 시장에 계시는 분들 제외하고는 기껏해야 자금 담당자들과 몇몇 유관기관에 계시는, 일명 기관투자자 분들을 제외하고는 잘 모르는 영역입니다. 관심 없는 분들에게는 기준금리-채권금리-은행금리 간에 구별도 쉽지 않죠. 그만큼 마이너 한(다른 금융자산에 비해) 영역입니다.


  그런 금리가, 그것도 기준금리나 예금금리뿐만 아니라 채권금리,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 국채 10년 금리까지 시장의 관심을 한껏 받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추석연휴가 끝난 다음날, 그동안 누적된 글로벌 금리가 상승한 영향으로 우리나라 국채10년선물은 종목이 상장된 이래 처음으로 -2.7% 하락하며 하한가를 기록했습니다. 오늘 코스피가 -2.4%를 기록했으니 주식보다 더 변동성이 컸네요. '채권은 주식에 비해 안전자산'이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취지가 하루 있었던 일을 다루는 것은 아니니 넘어가시죠.


  사실 좀 들여다보면 금리가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얘기입니다. '금리'라는 친구는 원래 조용히 살던 애이기도 하고, 그래야만 하는 애이기도 하지요. 그런 애가 세간에 오르내리다니, 무슨 일이 나기 전에 찾아온 전조 같은 느낌입니다. 왜 그런지 한번 간단히 얘기해 보도록 할게요.




  '금리'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까요? 금리가 태어난 것은 대단히 오래되었습니다. 성경뿐만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에도 나와요. 그때의 이름은 '이자'라는 이름이지만,  금리와 개념은 동일합니다. 무엇인가를 빌려주었을 때, 원소유자가 사용하지 못함으로 해서 받는 응분의 대가지요. 쌀을 빌려주면 쌀을 추가로 받고, 금이나 은을 빌려가면 돌려줄 때 소정의 금 또는 은을 추가로 돌려줬습니다. 이것이 이자의 개념입니다. 그러고 나서 점차 '돈'이라는 개념이 널리 사용되면서, 돈을 사용하는 대가로 제공하는 이자, 즉 금리라는 개념도 생겨납니다. 한마디로 돈의 사용가치가 금리입니다. 여기까지는 간단하군요.


  그럼 조금 더 들어가 볼까요. 금리가 가지는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한번 금리를 분해해 보겠습니다. 전에 쓴 글처럼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으니까요. 

저에게 지금 10,000원이 있습니다. 10,000원이면 가격이 저렴한 2,000원짜리 아메리카노 5잔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1년만 빌려달라고 합니다. 아메리카노 5잔을 못 사 먹는 것은 아쉽지만, 까짓 거 빌려주지요. 그리고 1년 뒤에 10,000원을 돌려받았습니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전 아메리카노를 사러 갔습니다만, 흐억. 5잔을 못 사 먹네요. 왜냐하면 1년 동안 인플레이션 때문에 아메리카노 가격이 한잔 당 2,100원으로 올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위의 예에서 금리는 0% 였습니다. 저는 지금 아메리카노 5잔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을 지닌 액수의 돈을 빌려줬습니다. 1년 지난 뒤에도 그대로 아메리카노 5잔을 사 먹으려면 지금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최소한 인플레이션만큼은 이자를 받아야 동일한 구매력을 지닌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겠네요. 위의 예에서는 1년 뒤에 500원, 즉 최소한 인플레이션 증가율 5% 만큼을 금리로 더 받으면 구매력이 유지가 됩니다. 따라서 금리를 구성하는 친구들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입니다.


  또 다른 친구를 찾아보겠습니다. 위의 예로 돌아가 볼까요.

사실 저는 전 10,000원으로 아메리카노를 사 먹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전 옆 건물에 있는 시중은행에 1년 동안 돈을 빌려줄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저에게 11,000원으로 돌려준다고 했거든요.

  이 경우에 금리는 10%입니다. 10% 중에 5%는 아까 얘기했던,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한 인플레이션 증가율 5%입니다. 인플레이션 효과를 제외한 '실질이자율'이라고 부르는 나머지 5%는 뭘까요(이 경우 인플레이션 효과를 포함한 10%는 '명목이자율'이라고 부릅니다).


  우선 5% 중에 일부는 기획재정부나 한국은행과 같이 얘가 없으면 우리나라 돈도 없다고 할 수 있는 곳에 빌려주거나 투자할 때 받을 수 있는 보상입니다. '무위험 금리', '무위험 이자율', 영어로는 'Risk free rate'이라고 하죠. 예를 들자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나 한국의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하는 기준금리가 있겠네요. 이 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제외하고 돈을 빌려주는 것에 대한 약간의 보상을 하기에 금리가 낮은 수준입니다. 그리고 '무위험' 이기에 그 어떤 것에 투자하던 얻어야 하는 최소한의 수익률 기준이기도 합니다. 이것보다 낮으면 차라리 그냥 그곳에 투자 안 하고 정부에게나 빌려주는 게 낫다는 얘기입니다.


  아까의 예를 다시 볼까요. 저는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준다고 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1년짜리 시중은행 정기예금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시중은행이 망할 확률이 0% 일까요? 국가나 중앙은행이 망하면 어차피 그 화폐는 가치가 없기 때문에 얘기할 가치가 없지만, 시중은행도 같은 수준일까요?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많은 은행이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통폐합이 되었죠. 지금은 환골탈태해서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망할 위험이 0은 아닙니다. 이렇게 돈 떼일 위험을 감수하고 돈을 빌려주는 것에 대한 보상을 'Credit Risk Premium', 신용위험에 대한 보상이라고 합니다.


  Credit RIsk 말고 또 다른 Risk도 있습니다. 저는 1년 동안 정기예금을 가입했기 때문에 1년 사이에 돈이 필요해도 뺄 수가 없습니다. 돈이 묶여버린 거죠. 이 정기예금은 남에게 팘 수도 없어서 어떻게 돈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돈이 유동화가 안 되는 유동성 위험에 대한 보상, 'Liquidity Risk Premium'이라고 합니다.


 한 가지 더 있네요. 요즘 아주 핫하죠. 유동성 위험과 헷갈릴 수 있으니 잘 보세요. 위의 예에서 보면 전 1년짜리 정기예금에 가입했어요. 즉 1년 동안 정해진 금리로 돈을 빌려준 겁니다. 그 사이에 상황이 변해도 전 그 금리를 유지해야 하죠. 정해진 기간 동안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받아야 할 보상, 즉 기간에 대한 보상, 'Term Premium'이라고 합니다. 이건 다른 실제 예를 들어볼게요. 

올해 3월 미국의 실리콘 밸리 은행(SVB)이 파산을 했습니다. SVB는 주요 고객인 IT 스타트업 기업들로부터 유치한 돈을 안전한 미국 국채에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국채를 살 때만 해도 미국 기준금리가 0%에 가까웠죠. 그래서 수익성을 위해 그래도 조금이라도 금리가 더 나오는 장기 미국국채에 투자를 합니다. 신용도만큼은 걱정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금리가 급등하면서 투자한 채권에서 손실이 나기 시작합니다. 금리와 채권의 가격은 역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주요 고객들이 점점 돈이 필요하게 되면서 인출을 합니다. 그럼 SVB는 투자한 자산을 팔아서 돈을 내줘야 합니다. 그런데 투자한 자산을 매각하니 손실이 계속 쌓이네요. 그러다가 뱅크런이 발생하면서 결국 SVB는 파산을 하게 됩니다. 

  이때 장기 미국국채에 투자하면서 얻을 수 있던 조금이라도 더 나온던 그 수익률이 바로 Term Premium에 의한 수익률입니다. 그런데 그 Term Premium이 너무 낮았던 겁니다. 나중에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도 투자 수익률이 양호할 만큼 충분히 기간에 대한 보상을 받았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해서 결국 손실이 나버렸습니다. 이해가 되실까요? 최근에 가장 핫한 내용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금리를 분해하는 중이었죠. 일단 금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가 가능합니다.

명목금리 = 인플레이션 증가율 + 실질금리


실질 금리를 또 분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Risk Free Rate + Credit Risk Premium + Liquidity Risk Premium + Term Premium


이 내용을 마음에 품어두고서 이제 처음 얘기하던 금리가 주목받는 것이 왜 위험한 상황인지 얘기해 볼까요. 




  지금 당장 시장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국채금리, 정확히는 미국 국채금리입니다. 국채금리는 인플레이션 증가율과 무위험 금리, Term Premium으로 구성됩니다. 국가가 발행한 채권인 국채이기 때문에 신용위험은 '0'입니다. 유동성 위험도 거래가 활발하고 투자금을 채권 매도를 통해 쉽게 확보할 수 있기에 '0'에 가깝습니다.


  이 중에서 인플레이션 증가율 전망이 원래 올해 들어 얌전해질 줄 알았는데, 1) 사우디와 그 친구들이 어깃장을 놓는 바람에 유가가 오르고, 2) 미국인들이 정부에서 받아 꿍쳐둔 돈을 펑펑 쓰는 바람에 소비가 양호한 모습을 보이면서 상향조정되어 버렸습니다. 연준은 2%가 목표라는데 이게 어려워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안 꺾이면 연준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작년부터 사람들은 겪어 봤습니다. 또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의심은 보상을 원하죠. 특히 기간에 대한 보상, Term Premium은 더 크게 확대가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회사채 금리는 어떻게 될까요. 회사채 금리는 국채 금리에 Credit Premium을 얹으면 되는데, 국채금리가 올라가니 자연스럽게 회사채 금리가 올라가죠. 기업의 자금조달비용이 확대되는 겁니다. 그럼 기업은 더 높은 수익으로 비용을 커버하려 하고, 매출 수량 증가 또는 가격의 상승으로 귀결됩니다. 악순환의 기미가 보이네요.




  아까 인플레이션 증가율의 상승을 금리 상승의 하나로 꼽았습니다. 사실 인플레이션이 올라서 금리가 오르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간단히 커버할 수 있습니다. 가격을 그냥 올리면 됩니다.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거죠. 그래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인플레이션이니까요. 물론 저희와 같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괴롭지만, 주식시장과 같은 투자 파트나, 고용 등의 주체가 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전가할 수 있기에 다행입니다.


  Term Premium 확대의 경우, 장기로 금리를 빌려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장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 즉 부동산 시장이죠. 이건 리파이낸싱을 할 경우 갑자기 높아진 이자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자연스레 매수도, 매도도 없어지면서 거래량이 줄어 버립니다. 한마디로 말라죽어가는 시장이 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신규 주택공급도 위축되고, 고용유발효과가 큰 건설업도 위험해질 수 있죠. 개인의 내 집마련 꿈이 더 어려워집니다.


  Credit Risk Premium의 확대일 경우, 소비자에게 전가가 안됩니다. 그냥 기업이 오롯이 떠안아야 합니다.  바로 기업 수익성에 영향을 주게 되고, 이것이야 말로 최근 주식시장이 조정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계기업의 경우에는 파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금리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올라갈 수도 있고, 올라가면 요인별로 영향을 어떻게 줄 수 있는지 주절주절 늘어놔 봤습니다. 그런데 이러하든 저러하든, 금리가 좀 올라가는 게 왜 큰 문제가 발생할까요? 왜냐하면 금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채권시장의 사이즈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일단 미국의 21년 말 기준 전체 채권 잔액 규모가 약 $53조입니다. 환율 1,340원 적용 시에 우리 돈으로 약 7 경원입니다. 어마무시하네요. 미국 전체 주식시장(NYSE, Nasdaq, 장외주식 등) 전체 시가총액이 22년 말 기준 $40조입니다. 장외시장까지 싹 다 긁어모은 주식도 사이즈가 크지만, 채권의 경우 21년 기준이니, 미국 국채 발행량이 늘어난 지금은 더 클 것 같습니다. 거의 $10조 가까이 차이가 나겠네요.


  이렇게 큰 시장에서 움직이는 단 하나의 가격 요소가 금리입니다. 만기와 신용등급 등에 따라 금리가 다르지만 다 방향성의 거의 같기에 하나의 요소로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 금리가 요즘 이렇게 미쳐 날뛰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오늘은 금리에 대한 얘기를 해봤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얘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표지그림 : 사진: Unsplash의 Alexander Grey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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