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자세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것 중 하나가 진정한 친구를 하나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것입니다.
결혼하면서부터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한 친구들은 자녀가 생기면서 연락처를 잃어버리는 친구들이 많아지더니 회사의 중간 관리자라는 저항할 수 없는 사슬에 얽매이면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쯤에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게 됩니다.
일부러 가끔씩이라도 안부 전화를 주고받으며 꾸준히 연락하지 않으면 나란 존재도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그렇게 잊혀 가게 마련입니다.
서재 한편에 예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명함들이 서류함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경 쓰지 않아 먼지가 켜켜이 쌓였지만 나름 나이가 들어 삶을 반추해 보는 추억의 유물이 되지 않을까 싶어 버리긴 아까워 두고 있었던 명함들이죠.
그 곁엔 회의 내용과 영업 전달 사항들을 적어 두었던 태블릿 PC정도 크기의 업무용 수첩들이 쌍둥이 형제들처럼 사이좋게 누워 있습니다.
수첩을 열어 꼬물대는 글씨로 갈겨써 두었던 낙서 비슷한 문장들을 볼 때면 그때의 상황들이 되살아나 그립기도 합니다.
명함을 살펴보다 마주치는 이름들은 대개는 그냥 스쳐 지나갔던 거래처의 담당자나 영업 사원들입니다.
회사를 나오거나 비즈니스 관계가 끊어지면서 전화 한 통 걸기도 껄끄러운 관계에 불과한 사람들은 친구도 적도 아닌 모호한 사이... 시간이 지나면 유령과 다름 없어집니다.
그런데 말이죠.
조직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적이 밖에 나오면 명확히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배를 나눠 피우고 커피 한잔을 함께 마시며 고민을 이야기했던 동료가 나중에 알고 보니 상사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고자질 쟁이였다던지 나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녔다는 단순한 사람에 대한 실망이 우리에게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기준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심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진리는 조직을 떠난 타인에 대한 추억이 자기의 성향이나 처한 환경에 따라 충분히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기준은 ( ** )이라고 생각합니다.
( )에 들어가는 말은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저에게 적용되는 기준은 아마도 (선의)가 아닐까 합니다.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저는 벤처 기업부터 외국계 기업, 대기업, 중견 기업까지 두루 다녔습니다.
심지어 첫 직장부터 홍차의 꿈, 인도양의 보석이라 불리는 스리랑카 현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수많은 가정을 풍비 박살 냈던 IMF 사태는 얼마나 심했던지 당시 유명했던 온라인 취업 사이트 구직란을 다 뒤져도 구인을 원하는 곳이 한 두 페이지면 요약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나간 측면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직접 경험하지 못했으면 배우지 못할 것들을 알 수 있었던 소중한 추억의 시간들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제삼자의 관점에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이런 잦은 이직은 참을성이나 끈기가 부족한 결과로 보이기도 할 듯하여 부끄럽기도 합니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 나쁜 의미론 개인적 이득만 챙기는 체리피커(cherry picker) 혹은 메뚜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이직을 하도 자주 하다 보니 결혼 후 와이프가 제 이름과 직함이 새겨진 다양한 회사들의 명함들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혹시 사기꾼 아니냐고 질문하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T^T
하지만 여러 직장을 거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 가지 경험적으로 느낀 사실은 선의를 베푼 사람은 결국 좋은 결과로 보답받는다는 것입니다.
당장 자기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면 잠시 이득을 보는 것 같지만 사람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손해를 보고 말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오히려 꾸준히 선의를 가지고 타인을 배려하다 보면 어려울 때 선의를 가진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신도 난관을 극복할 수가 있는 경우를 무수히 보았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았습니다.
H 계열의 대기업에 있을 때 신규 사업 기획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임원분의 학교 후배라는 사람이 찾아와 자신의 회사가 만든 제품에 H로고를 붙일 수 있게 허락해 준다면 5%의 브랜드 로열티를 매월 회사에 지불해 주겠다고 하는 조건을 제시하였습니다.
브랜드만 붙이면 아파트에 대량 납품도 가능하고 실제 몇 군데 현장에 계약도 했다고 하는데 당시 뭔가 실적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해서 일단 사람을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직원도 1명에 불과한 소규모 회사라 법무팀의 반대가 있었지만 법적인 한도 내에서 사업에 몇 번 실패했다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선의로 상사분들을 어렵게 설득해 계약서에 서명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로고 자체 사용 권한은 일부 제품 분야에만 인용 가능하며 최종 권한은 본사에 귀속되어 있음은 사전에 업체에 통보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퇴직한 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상표 사용 관련해서 참고인 조사가 필요하니 방문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시간을 내서 브랜드를 사용하고자 했던 업체 사장님과 일대일 대면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그 사장님이 제대로 사업을 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 처음부터 회사를 고소해 합의금을 받아 내고자 했던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정황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휴식 시간 대화 도중에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면 조선족을 시켜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들으니 사람이란 존재의 악함에 슬프기까지 하더군요.
선의를 가지고 사람만을 믿었는데 실망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악의를 가진 상대방은 자신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적과 친구는 구체적 상황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은 상황이 어찌 변하든 끝까지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습니다.
결과가 잠시 부정적일 수는 있지만 인간 그 자체에 실망하지 않고 꾸준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라면 결국 주위 모든 사람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람만이 모든 사회생활의 해답입니다.
내가 손해를 볼 지라도 다른 이에게 선의를 가지고 인정을 베푼다면 사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온실을 벗어난 꽃에겐 밖은 폭풍이 몰아치고 언제 거센 바람에 휩쓸려 떠내려 갈지 모르는 생존의 지옥입니다.
그러나 꽃에게 양분을 공급해 주는 좋은 친구-지렁이(?)-를 만나면 화창한 봄날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뿌리를 망가뜨리는 나쁜 두더지 친구는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