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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Aug 01. 2024

중년의 철학: 인간-차원을 달리다 5

인간이 거치는 여정의 길목에는 유아기,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 중년, 장년 그리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발달의 단계가 있다. ‘생애주기’는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거치며 나타나는 발달 단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삶의 형태가 복잡해지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각 개인의 ‘생애주기별 방향 설정‘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생물학적 죽음에 이르기 전 누구나 필연적으로 거쳐가야 하는 늙음의 단계는 생애주기에서 노년에 해당된다. 먼저 늙음이라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늙음은 자연의 필수불가결한 발달 단계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시간이 무수한 작은 공간으로 분리된 차원에서는 질병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V. 페토의 역설과 죽음에 관한 안내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늙는다는 것은 사실 질병일 수도 있다는 간접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페토의 역설이 있다. 암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그런데 개체의 몸집이 클수록 암에 걸릴 확률이 적어지는 현상이 존재한다. 이 연관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영국의 전염병 학자의 이름을 따서 페토의 역설이라고 한다. 이론적으로 볼 때, 동물은 몸집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포 분열 횟수도 늘어나 이 쉽게 발생하고 사망할 확률이 높아야 맞을 텐데 현실은 덩치가 큰 고래에게는 암이 발병하지 않는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나이가 많을수록, 체중이 거대할수록 암 발병률이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반대다.  세포가 많을수록 암을 억제하는 유전 인자가 많이 존재할 수도 있고 암세포가 성장할수록 그 안에서 또 다른 암세포가 발현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중복 종양 이론이 이를 설명하기 위한 유력한 가설이다. 암이 없는 개체는 죽음을 불러오는 치명적 질병의 하나를 극복한 셈이다.


또 다른 예로는 죽지 않는 해파리가 있다. 말 그대로 죽지 않아 이름조차 불사해파리(immortal jellyfish)라 불린다. 병이 생기거나 늙게 되면 심해로 돌아가 몸을 재 흡수하여 아기 상태인 폴립(polyp)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성장의 단계를 밟는 생애 주기를 반복하며 시간이 거꾸로 가는 삶을 이어간다.


고대인들에게도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동양에 진시황의 불로불사의 영약을 찾기 위한 전설이 있다면 서양에는 16세기 스페인 왕의 후원을 받은 폰세의 젊음의 샘물 탐색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시도는 실패하였으며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불사를 갈구 하며 생명의 불꽃을 영원히 이어가고자 하는 욕망을 소유한다.


생물의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자기 복제를 이어가기 위한 이기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행동으로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고통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늙는다는 것은 몸의 질서를 유지하기 힘들어진다는 것과 동일하며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효율을 선택한 유전자의 배신이다. 개체의 생존은 사소한 순간의 수단일 뿐 DNA 전파를 통한 불멸만이 유전자의 목적이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유전자의 선택인 죽음의 존재는 가장 현명한 판단인 것 같다. 죽음이 없는 세계는 생명이 없는 세계다. 배고픔도 없고 추위와 더위도 느끼지 못하는 실체는 생명이 아니며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고통이 없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급부로 사랑도 행복도 알지 못할 것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소멸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고대로부터 전수되는 여러 죽음에 관한 문서들이 있다. 고대 이집트의 사후 세계 안내서인 <사자의 서>는 관 속의 미라와 함께 매장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고대 중국의 중용의 세계관에서도 음양론적 사고를 기반으로 '죽음 속에 죽음은 없다'는 관념을 제시하고 있다.


서양과 동양 사상 속의 사후 세계에 관한 시공 관념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죽음 이후 대처에 관하여 기술한 흥미로운 책은 티베트 밀교 사자의 서인 <바르도퇴돌>이다. 죽음과 환생 사이인 바르도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해탈에 이르는 법(퇴돌)을 뜻한다. 장례 절차에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사자의 서를 낭송하는 것은 죽은 이가 듣고 해탈할 수 있도록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죽음 이후 다시 환생하기 전까지 49일간 이어지는 유랑과 윤회의 과정은 사실 이집트 사자의 서에 나오는 오시리스의 심판에 이르기 위한 유랑과도 비슷한 과정이다. 도중에 마주치는 악마와 괴물 또한 실체가 아닌 마음속 허상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생생한 꿈은 현실과 구별이 힘든 것처럼 꿈속에서 알아차리기에는 매우 어렵다.


죽음 후의 여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찬란한 빛이 주위를 감싼다고 한다. 하지만 어둠의 유혹 또한 매우 강력해서 이승의 습관에 익숙한 우리가 뿌리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이로 인해 현생에서 번번이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듯 사후 세계에서도 많은 이들이 빛을 등지고 어둠으로 향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빛을 통해 생명은 삶을 이어가는 에너지를 얻는다. 태양에서 나오는 정제된 에너지(엔트로피가 낮은)를 흡수한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생산하여 동물에게 공급하고 있어 항상 빛은 생명의 원천이 된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력도 빛을 통해 전해지고 있으니 세계를 움직이는 근원이기도 하다.


핵심은 한마디로 '빛을 향해 나아가라'다. 만약 내가 죽음에 이른 상태라면 도움이 될만한 문구다. 사후 세계에 관한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관련 서적에서 찬란한 빛은 우리를 집착과 욕망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밧줄과 같다. 손해 볼 일도 없을 것 같으니 한 번쯤 포근한 빛을 향해 온몸을 온전히 맡겨 보는 것도 좋겠다.


= 다음 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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