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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Sep 09. 2024

중년의 철학: 인간-차원을 달리다 15

열대야가 이어지는 저녁, 꿈에서 세명의 자신을 만났던 밤이 있었다.


어릴 적 내가 묻는다. '미래의 나는 행복할까요?'

미래의 내가 묻는다. '과거의 나는 행복했었나요?'

현재의 나는 묻는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나는 같은 인물이면서도 동일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자신은 물론 주변의 모든 것들도 함께 변화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 인간의 정체성 또한 의식의 관념에 지배당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이질적인 존재가 된다.


청년 시절과 중장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면 어릴 적 순수했던 그 아이는 전혀 다른 어른이 된다. 삶을 지배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영혼이며 자의식이다.


데카르트는 진리란 명확한 것이라고 했고 니체는 진리의 상대성을 말하며 냉소적이고 허무적이다. 유물론자와 관념론자는 상반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역사의 진화를 설명하지만 모두가 맞고 또 틀리기도 하다. 결국 각자의 믿음이라는 강력한 벽만이 무너지지 않을 인간의 가치관을 지탱하는 힘이다.


종교, 인류학, 철학, 과학등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즐거운 여정이지만 가족을 부양하며 고된 삶을 이어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에게는 삶의 의미를 찾는 자체가 그저 배부른 사치일 수도 있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존스튜어트밀처럼 나는 비록 배고픈 인간에 불과하지만  퍼즐조각을 풀어가듯 의식의 파편들을 되새김질해 본다.


XV. 리만 가설& 소수 규칙: 인간의 정체성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생존에 불리한 신체 구조를 가졌다. 심지어 인간과 유전자가 98.4% 동일한 침팬지조차 근육의 힘은 그럼에도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들을 제치고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선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네안네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 같은 호모사피엔스와 동시대를 함께 했던 유사 인류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배경중 하나는 인간의 공감 능력에 있었다고 추측한다. 즉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종교나 문화 같은 추상적 개념까지 공유하며 공동 의식을 함께 나눌 수 있었고, 이것은 나중에 늑대를 길들여 사냥개로 확대되는 단계까지 발전하였다. 대규모 집단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은 생존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강력한 이점을 제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각자 모두 다른 고유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데 자연에서 비슷한 무언가(랜덤 한) 존재한다면 개별적 비밀을 파악하는데 조금이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매우 엉뚱하지만 어쩌면 소수(Prime number) 법칙이 그 힌트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소수란 1보다 큰 자연수 중 1과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가지는 수다. 자연수와는 달리 소수는 불규칙적으로 증가한다. 즉, 소수는 규칙성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구에 사는 70억 인류의 정체성이 모두 다르고 규칙성이 없듯이 소수 또한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MBTI성격 테스트와 같은 구분법은 심리학적 유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혈액형럼 통계적 유사성을 기준으로 성격을 분류한 것일 뿐 실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대변하지 않는다.)


리만 가설은 리만 제타 함수의 모든 자명하지 않은 영점의 실수부가 이라는 추측이다. 즉 '제타함수의 비자명적인 제로점은 모두 일직선상에 있는가?'에 대한 추측이다..

리만 가설의 증명은 아직까지 아무도 이루지 못했다. 소수 법칙은 양자 역학 법칙(전자궤도의 에너지준위 간격 식)과 일치하기 때문에 가설의 증명은 수학적 의미를 넘어 원자 세상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간의 삶 또한 마치 제타 함수의 영점처럼 특정한 패턴의 반복을 벗어나지 못하니 소수나, 전자나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수학적 방법론으로는 리만 가설의 완벽한 증명이 어렵다고 한다. 


뇌피셜이지만 존재하는 숫자가 중첩되는 가상의 벡터형 함수를 도입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n차원의 n차 초입방체에서는 숫자 또한 빛과 같이 입자이면서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면 가능할 것이다. 고등수학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제곱 하면 음수가 되는 허수의 개념 또한 과거에는 말도 안 되는 개념이지 않았던가. (허수는커녕 실수가 아닌 무리수도 인정할 수 없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무리수를 주장했던 학자를 물에 빠트려 죽였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있다.)


인간의 개체성 또한 이런 뜬금없는 엉뚱한 상상을 통해 마법처럼 정의할 수 있다면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무한한 우주를 넘을 수 있는 유일하며 거대한 존재이다.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감사할 일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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