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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Sep 04. 2024

중년의 철학: 인간-차원을 달리다 14

시간은 인간 그 자체다.  '내가 왕년에~'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게 삶의 의미는 현재가 아닌 과거에만 존재한다. 즉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시간에서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지고 삶을 있어간다는 뜻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세상의 어떤 사물과 함께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일컬어 마음씀(Sorge)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 무엇에 신경 쓰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은 사회적 성공일 수도, 돈과 명예 일수도 있고 혹은 사랑일 수도 있다. 마음이 있는 곳에 인생의 의미가 있고 인간은 시간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시간이 곧 인간을 정의하는 매개체가 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낙오된듯한 느낌이 들 때 인간은 내면의 외로움과 고독이 더욱 커진다. 유교적 공동체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공부를 못하거나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적 존재 가치마저 떨어지는 존재로 여겨진다. 타인의 판단과 사회의 시선이 자신의 시간 가치까지 결정짓게 만드는 현대 사회는 진짜 아이러니다.


XIIII. 길가메시와 싯다르타의 깨달음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의 길가메시 신화는 인류 최초의 서사시에 가깝다. 길가메시의 '길가'는 '늙은이, 조상', '메시'는 '젊은이, 영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젊은이가 늙은이가 되는 필연적 운명을 암시한다. 


친구인 엔키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영웅 길가메시는 불멸의 삶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를 통해 신의 분노를 피해 방주를 짓고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인물(성경 속 노아의 방주가 아닌가?)을 만나 죽음이 없는 생명의 비밀을 알고자 하지만 실패한다. 대안으로 불로초를 얻고자 하지만 뱀(창세기 이브를 유혹했던 뱀이 여기에도..?)이 가로채 역시 실패하고 만다. 그럼에도 좌절을 딛고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이기로 한 그는 영웅이었다. 

인도에서 작은 왕국의 왕자였던 싯다르타(석가모니) 또한 화려한 연회가 끝나 후 아름답던 무희들의 모습이 추해지는 것을 보고(아마 화장이 지워진 채 침을 흘리며 잠을 자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죽음과 생로병사에 대한 번뇌가 생겼다고 한다. 출가 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그는 부처가 되었고 카르마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루었다.


길가메시와 싯다르타에게 있어 현재의 화려한 젊음이 영원하지 않고 가까운 미래에 늙음과 질병으로 반드시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은 깨달음으로 이끈 계기였다. 


무엇이 그들에게 그토록 충격적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삶에 대한 미련이 그다지 없다. 다만 주어진 삶에 대한 감사와 경외심, 그리고 소중한 가족과 주위분들에 대한 책임을 지켜내는 것이 이 시간을 살아가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그 속에서 마음을 유혹하는 것들로 인해 삶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말아야 한다. 당나라 임재 선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말하였다. 가는 곳마다 늘 조건과 상황이 변화하는 동적인 환경 속에서도 주도적으로 행동하라는 뜻이다.


매일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주식 시장 폭락으로 작지만 소중한 나의 주식들도 함께 폭락하여 하루를 우울하게 만들기 쉽다.  주도적으로 감정을 극복하고 미래를 믿도록 마음속에 주문을 건다.


시간은 흐르고 미래는 언제나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선물한다. 내일은 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며 손짓하고 있을지 모른다. '삶이 비록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쉬킨의 시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커피 한잔의 향기가 거실을 가득 채우는 9월의 오후가 또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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