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도 나이든다

WORD 59: 파일

by 다시청년


파일도 나이를 먹는다. 정성 들여 만들 때는 무엇보다 소중했다.

혹여나 삭제될까 조심스레 저장하며 애지중지하던 정보였다.

시간이 흘러 다시 열어본 파일은 빛바랜 옷처럼 어색하다.

한때 반짝이던 내용은 간데없고 촌스러운 문장만 남았다.

'이걸 왜 보관했지' 싶은 민망함도 든다.


모습은 시간을 따라 변해도, 생각은 시간을 먹으며 진화한다.

파일 속 정보는 저장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낡아간다.

내 안의 시선은 매일 깨지고 빚어지며 정교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유의 폭도 깊고 넓어진다.


오래된 파일을 클릭할 때, 살짝 긴장이 된다.

어리숙했던 내 실력을 들추는 기분이다.

어떤 어설픈 모습이 담겨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

내용을 확인하면 이내 오글거림이 밀려온다.

과거에 썼던 연애편지를 발견했을 때처럼,

부족했던 내 모습을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부끄럽다.

손가락부터 타고 흐르는 듯한 근지러움 뒤로 묘한 기쁨이 뒤따른다.

낡은 파일, 지금의 내가 멀리 왔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물이다.


3년 전의 나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어제의 나를 망설임 없이 보내도 되는 이유다.

과거의 나를 기꺼이 놓아줄 때, 나의 시야는 오늘 더 높고 넓은 곳을 향한다.



다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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