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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 Aug 25. 2024

[오늘의 세계] 2. 권민희 (1부)

반려동물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피도테일’ 대표

8월에 만난 세계는

반려동물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피도테일’ 대표 권민희 님입니다.


발레리나의 길을 걷던 그가 디자이너가 되고, 사업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습니다.



민희는 중학교 동창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발레를 해왔다던 민희는 매일 발레학원에 갔고, 진지하게 콩쿠르를 준비했습니다. 제겐 처음부터 그가 발레리나의 삶을 살 것으로 보였기에, 그가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거의 만날 수는 없었지만, 대학교 무용학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역시 자연스러웠습니다. 제게는요.


그런데 몇 년 뒤 SNS를 통해 접한 소식은 색달랐어요. 디자인 공모전 대상 수상! 발레리나와 디자인 공모전 대상이라니, 궁금증이 생길 만한 뉴스였지요. 직접 묻지는 못한 채 시간이 또다시 한참 흘렀고, 우리는 중학교 졸업 이후로 거의 1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민희는 시각디자이너가 되어있었어요. 발레는 그만두었다고 했어요.


이후 1년에 한 번쯤 만나 안부를 나눠오던 어느 날, 그가 또다시 흥미로운 소식을 들려줬어요. 반려동물용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요. 그가 반려동물 하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제조업으로의 첫 도전은 꽤 대담해 보였습니다.


첫 창업에 혼자서 뛰어든 만큼 속도가 빠르진 않았지만, 시간은 성실히도 흘렀고, 결과물이 차츰 하나씩 나타났습니다. 첫 제품을 세상에 내보인 것만으로도 놀라웠던 때를 지나, 민희의 브랜드 ‘피도테일’은 어느새 제품 가치를 통해 브랜드 철학을 보여주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처음부터 완성형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민희가 ‘조금 더’ ‘해 본’ ‘한 걸음’들이 쌓여 지금이 되었어요. 이제는 자신을 소개할 때 피도테일 대표라고 소개하는 그가 자연스럽습니다. 민희는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와 오늘에 이르렀을까요?

피도테일 제품 화보 속 권민희 대표와 반려견 하미


*이번 인터뷰는 평어로 진행합니다 :) 평어가 궁금한 분은 댓글을 참고해주세요!

[1부] 고민 없이 가던 길에 강한 의심이 들 때
 - 발레: 어머니의 바람따라 높아지는 기대
 - 디자인: 직접 찾아간 새로운 세계
 - 창업: 꿈 쪽으로 향한 발걸음

[2부] 일단 해 보고 싶은 일에 전념한다
 - 퇴사하지 않고 만든 첫 제품
 - 사업가이자 디자이너라는 정체성
 - 어차피 파도는 친다, 슬퍼 말고 개선하자



[1부]

고민 없이 가던 길에 강한 의심이 들 때


발레: 어머니의 바람따라 높아지는 기대


민희는 발레하던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아직 강해. 자신을 피도테일 대표라고 소개하는 오늘의 민희가 되기까지의 여정이 궁금해. 민희의 일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발레에서부터 시간순으로 물어보고 싶어.


가장 먼저, 발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

이게 진짜 멋있지 않은 얘기인 것 같아.


하지만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우리 세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거야.

그럴까? 초등학생 때 엄마가 내 신체 조건에서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하시고 내게 발레를 해야 한다고 하셨어. 그때 나는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재밌어했지만, 엄마는 내 신체 조건을 보고 “미술이 아니라 반드시 발레를 해야 한다”고 확신하셨어. 그런 엄마를 따라 무용 학원에 갔던 게 첫 시작이었어. 아직 주체성이 없던 때라서 부모님이 하라고 하시니 해볼까, 해서 갔고, 그게 쭉 이어졌어.

엄마는 굉장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어. 부모가 자식을 통해서 신분 상승을 노리는 경우가 많잖아. 내가 이화여대에 가면 좋겠다는 말을 어릴 때 항상 했어. 무용과, 이대. 정말 결혼을 잘할 것 같잖아.


어머니가 민희의 삶에 관해 꾸었던 꿈은 결국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이구나.

그렇지. 근데 마침 내가 발레를 잘했어. 만약 그런 꿈을 꾸더라도 잘하지 못했으면 엄마도 계속 발레를 시킬 수 없었을 텐데 계속 상승세니까 그냥 계속하게 된 거야.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아. 공부를 곧잘 하는 학생은 의심 없이 남들이 하라는 공부만 하기도 하지. 꼭 스스로 던져봐야 할 질문을 미뤄둔 채로.

그게 위험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 느껴보고 찾는 과정이 없었어. 우리 세대 많은 아이들이 그랬고,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하다는 걸 우리 세대는 잘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어른들이 그런 고민을 할 틈을 주지 않았던 것 같아. 그때의 어른들도 몰랐기 때문이겠지. 그들의 살아온 시대는 공부만 잘해서 대학 가면 성공한다고 생각해도 되었으니까. 여자아이들에게는 결혼만 잘하면 된다고도 하고.


얼마 오래되지 않은 일인데, 정말 그때는 그랬어.

바로 그 목표에 우리 엄마가 욕심이 많았어. 더 잘 가르친다는 발레 학원을 찾아가느라 이사도 많이 다닐 만큼. 그렇게 계속 발레를 했고, 예고에도 입학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모든 환경이 대학교 코스로 이어졌어. 꾸준히 발전하며 좋은 성적을 내니까 엄마도 기대감이 점차 커졌지. 그런데 그 기대가 커지니까 오히려 나는 괴리감이 들었어. ‘이게 아닌 것 같아.’


어떤 괴리감이야?

발레하면서 마주하는 한계와 벽, 그리고 이것들을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직업으로서 평생 하고 싶은 분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지만 성적이 좋았다니 아이러니하다.

발레 성적이 신체 조건에 너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야. 발레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외적인 아름다움에도 점수를 매겨. 나는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어서, 요구되는 예쁜 선을 그리기 수월했어. 선천적 재능이 커야 하면서 신체적 조건도 좋아야 하는 곳이었어.


그럼에도 민희가 최선을 다했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옆에서 지켜본 중학생 민희는 매일 연습을 쉬지 않았어요. 절제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았고요. 키가 크다는 신체 조건이 한편으로는 어려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상대 배역이 민희의 몸을 들어 올릴 수 있게끔 특정 체중을 넘으면 안 돼서 키가 큰 만큼 더 마른 몸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마른 체형이지만 마음껏 먹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중학생이던 제겐 꽤 놀라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터 미래에 대한 고민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어?

대학교에 입학한 뒤야. 고등학생 때는 입시라는 목표를 앞두고 무조건 열심히 하느라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 느끼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코앞에 대학이라는 더 강력한 목표만 봤어. 계속해서 나오는 성적도. 눈앞에 보이는 것만 계속 믿었으니까.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가던 길에 강한 의심이 들었어. 보통 그렇지 않아? 더 이상 목표랄 게 없어졌고, 내가 그리는 미래에는 발레단은 없었거든. 일단 노는 게 너무 재밌으니까 열심히 하던 걸 다 놓게 되더라고.


어떻게 노는 게 그렇게 재밌었어?

대학교에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잖아. 발레가 전부였던 나는 내 필드 밖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으니 사람들 만나서 얘기하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 그래서 공부를 진짜 안 했어. 고등학교 때는 진짜 열심히 했는데 대학교 가니 성적이 점점 떨어졌어. 그렇지만 세상이 넓다는 걸 알았어.


큰 성과다. 그렇게 신나게 논 다음엔 무얼 했어?

재밌게 놀았고, 세상이 넓은 걸 알게 되었으니, 이제 내가 좋아했던 걸 해 보고 싶어졌어. 그래서 한 게 디자인 복수전공이야.


어렸을 때 미술을 좋아했다고 했는데, 어떤 미술을 좋아한 거야?

그냥 그림 그리기. 끄적끄적 그리고 색칠하는 게 정말 좋았어.


미술 관련 영역 중에서 디자인을 고른 이유는 뭐야?

미술에는 순수 미술이나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등으로 나뉘는데 순수미술 쪽은 예술이잖아. 근데 발레라는 예술을 하고 보니 거기에서도 똑같은 한계가 보였어. 정말 자기가 좋아서 하지 않으면 저 높이 갈 수 없겠더라고. 그래서 예술이기보다는 상업적으로 미술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디자인을 선택했어. 마침 아이폰이 등장했던 때라 디자인이라는 것이 너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미술을 하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다고 단순히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아니었어.(웃음)



디자인: 직접 찾아간 새로운 세계


디자인 복수전공 자격을 얻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어?

그때는 입시 미술을 해야 디자인과에 들어갈 수 있었을 때라 미술학원 등록해서 다니고, 포트폴리오 준비해서 지원했어. 2학년 때 1년 준비해서 3학년 때 복수전공을 시작했어. 처음 1년 실컷 놀고 나서는 정신 차리고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준비한 거지.


말은 쉽지만 아무나 받아주지 않았을 텐데, 차근히 준비를 해나갔네.

난 그걸 몰라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 큰 걱정 안 하고 ‘되겠지 뭐’ 했어.(웃음) 다행히 붙어서 지금까지 이어졌네.


오히려 무모함이 도움이 되었구나.

하기를 정말 잘했어. 직업적으로 이어지고 안 이어지고를 떠나서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을 더 많이,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거든. 무용과 친구들은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잖아. 몸도 꼿꼿이 서 있고. 그런데 디자인 쪽 친구들은 각양각색으로 자유롭고, 서로 관심도 없고(웃음), 생각도 엄청나게 다양했어. 무엇보다 전공 과정 공부도 다 재밌었어.


바라는 삶의 모습에 더 가까웠나 봐. 취향이 맞는 곳에 찾아가서 사람도 배움도 흥미로웠던 걸까?

그렇더라고.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고 감탄했고, 그 세계에 속해 온몸으로 느끼자 시야가 트였어. 내가 직접 찾아간 새로운 세계에서 기쁘게 잘 배웠어.


졸업 후 디자인 영역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어?

운이 좋았어. 디자인이 재밌고 좋아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거든. 교수님들이 인상 깊게 봐주실 정도로. 공모전에도 적극적으로 나갔어. 디자인 전공 선후배가 모여 해외 공모전에 함께 준비해서 나가는 동아리도 있길래 궁금해서 찾아가 봤고, 재밌을 것 같아서 했는데, 거기서 또 사람들을 사귀게 됐어.

그때 친해진 언니가 졸업할 때쯤 같이 일하자고 했어. 언니가 일하는 회사에 데리고 가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을 준다니까 큰 고민 없이 시작할 수 있었어.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어?

언니와 함께 일을 시작한 곳은 의류 쇼핑몰 회사였고, 화장품도 만들었어. 시각디자인 쪽에서 시작한 커리어가 UIUX 쪽으로 이어졌는데 요즘에는 UIUX라고 표현하지 않는 분위기야. 디자이너의 직함은 각자 자기가 표현하기 나름인 것 같더라고.


디자이너로서 가장 최근에 일했던 직무를 표현한다면?

모든 브랜드 경험을 담당하는 익스페리언스 디자이너(experience designer) 또는 브랜드 디렉터(brand director)라고 말할 수 있겠네.


그러다 창업해서 ‘피도테일’을 만들었지. 창업 전에 디자이너로서는 몇 년 정도 일했어?

6~7년 정도. 직장생활과 창업 시기가 겹쳐 있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서서히 제품과 브랜드를 만들어갔고, 꽤 최근까지 직장생활과 사업을 병행했어.



본격 창업 이야기에 앞서, 민희의 브랜드 ‘피도테일’을 소개할게요.

피도테일은 반려동물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 판매하는 브랜드입니다. 2021년에 첫 제품 론칭을 시작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기능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피도테일’은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Our companion animal is our family, not just pet.
피도테일은 반려동물을 생각하고, 보호자를 위해 만드는 반려동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입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밥을 먹고 산책하고 잠을 자는 반복적인 우리의 일상이 특별해질 수 있도록 우리 곁에 스며있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만듭니다.
단순 애완용품이 아닌 우리 가족이 사용하는 반려동물 제품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세심하고 건강한 제품을 연구하고 만들어갑니다.

창업: 꿈 쪽으로 향한 발걸음


회사 생활을 하다가 어쩌다 창업하게 된 거야?

대학생 때부터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내 브랜드를 가지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어. 하지만 아무런 지식이나 기반도 없이 무작정 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일단 회사에 들어가 배우기로 했어. 회사 일을 이어 나가면서 꿈을 잘 품고 있었지.

그러다 스타트업에 가까운 직전 회사에 다니면서 창업과 가까운 환경에 있게 됐어. 어떻게 하면 창업을 할 수 있을지, 창업을 돕는 지원사업이란 어떤 것인지 바로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었거든. 각종 지원사업에 필요한 자료 만드는 일을 하고, 지원사업 선정 결과를 계속 보고받았어.

그러니 어렵지 않게 한 지원사업에 지원할 수 있었고, 그 지원사업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나간 브랜드가 피도테일이야.


어떤 지원사업이었어?

반려동물 산업군 예비 창업자를 지원하는 사업이었어. 마침 우리 하미(반려견)와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아이템이 있었어. 그걸 사업 아이템으로 쓰면 뽑힐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어. 품고 있던 창업의 꿈과 딱 맞아떨어진 거지.


잠깐, 순서가 궁금해. 반려동물 아이템을 만들고 싶어서 해당 산업의 지원사업을 찾았어, 아니면 반려동물 산업 지원사업 공고를 발견해서 아이템을 구상했어?

후자야. 지원 사업을 보고 나서 아이템을 찾았어.


반려동물 산업 관련 지원사업을 발견했는데, 마침 창업의 꿈도 있고 반려동물에 대한 경험과 애정도 있으니 한번 해 보기로 한 거야?

맞아.


그럼 시작할 때는 사실 장기적인 그림을 그렸던 게 아니야?

아니야.(웃음)


정말로 한번 ‘해 본' 거구나.

맞아. 해 보고 아니면 아니지 뭐, 하는 마음이었어. 그 당시 직장에서 일하면서 창업지원사업에 이점과 기회가 많다고 느껴서 어떤 지원사업 공고가 올라와 있나 항상 지켜봤어. 창업하려면 지원사업은 필수라고 생각해서 때를 노린 거지. ‘K-Startup 창업지원포털’처럼 공고를 모아 볼 수 있는 창구가 많더라고.


지켜보고 있었구나. 그즈음에 창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불타올랐던 걸까?

‘해야겠다’보다는 ‘해 보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운 것 같아. ‘해야겠다’는 마음은 ‘이제 다른 건 다 그만두고 하겠다’와 같은 강한 의지잖아. 나는 그냥 ‘해 봐야겠다’였어. 난 항상 그냥 ‘해 보고, 아니면 아니고’ 와 같은 마음으로 무언가 해왔어. 디자인 복수전공도 그랬고.



2부에서 창업 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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