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숲길을 거닐면 검둥이의 코가 쉴 새 없이 킁킁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어다니는 게 좋았다. 나이가 먹어도 튼튼한 다리와 촉촉한 콧망울을 유지하는 게 다 내 덕이라 생각했다. 나만이 검둥이를 가장 잘 알고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도 믿었다. 행복을 위한 행복. 이기든 이타든 뭐든 행복하기만 하면 됐다.
엄마네 집에서 며칠 묵기로 하고 짐을 푼 뒤 외출한 첫날,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우리에게 엄마는 버럭 화를 내었다. (엄마는 화를 낸 게 절대 아니라고 했다.) 나는 더 큰 화를 내며 아이 봄방학이라 하루 종일 혼자 애 데리고 놀아주느라 힘든데 왜 화를 내냐고 맞받아쳤다. 엄마는 우리 손주 먹이려고 딸기 한 박스를 사 왔는데 안 와서 그랬다고 했다. 요양보호사 일을 다니는 엄마가 일끝나고 좀 쉴 수있게 일부러 밖에서 저녁까지 해결하고 온 거였는데 뭐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는지 당황스러웠다. 엄마는 계속 딸기 사왔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날 밤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어쩜 엄마랑 나는 이리도 닮았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돌보는 것'이 제일 쉬웠고, 어쩌면 '돌봄 중독'에 걸린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야 우리가 별것도 아닌 걸로 크게 화를 낸 게 설명이 되었으니까.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오줌이 마려워 잠이 깼다. 다음 날 아이와 빡빡한 일정을 보내야 하니 얼른 급한 용무만 해결하고 다시 눈을 붙이려 했다.
몽롱하던 정신을 확 깨운 건 검둥이의 짖음이었다. 짖음이라기엔 거의 공기 90, 소리 10 정도의 주파수 같긴 했지만. 오줌 누고 나오는데 검둥이가 자기를 보라는 듯 필사적으로 음성을 짜내고 있었다. 노쇄한 강아지는 목소리도 점점 소멸해가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게, 아이를 낳고 엄마네 집에 가면 검둥이는 심드렁하게 있다가 아이를 재우고 나왔을 때 미친 듯이 나에게 달겨들곤 했었다. 아이가 잠들기만을 기다린 것 마냥. 아이가 1번이고 자기가 2번이라는 걸 아는 듯이.
나는 검둥이가 그래왔다는 것 또한 잊고 있었는데,그게 생각이나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대로 화장실 앞에 쭈그려 앉아 냄새나는 앙상한 둥이를 쓰다듬었다. 맞다. 그랬었지. 네가 그랬었어. 그래놓고 아까 내가 너를 모른 척했어. 나는 쓰다듬기를 반복했다. 검둥이는 예전처럼 몸을 부비고 킁킁 소리를 내고 나를 핥고 또 핥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