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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일 Mar 24. 2017

하나의 꿈으로 읽은 영화.

영화 <경주>

 

영화를 본 사람들의 해석은 매우 다양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하나의 꿈같다'는 생각을 영화 중반부터 하게 되었다.





최현 <박해일>의 삶에서 잊지 못할 상처와 기억을
무의식에서 비유와 상징으로 뒤범벅한
하나의 꿈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영화가 하나의 꿈처럼 한 사람의 무의식이 뒤범벅되어있으면서도 표면적 시나리오가 제법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을 빼고는 인물들의 행동이 매우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그것은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되지 않고 한 인물의 특이성 정도로 이해되고 넘어가는데

아마도 감독은 의미를 담아 장면을 구성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에게 있어 이 영화는 해석이 꽤 명료한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감독이 의도한 의미들이 매우 궁금했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기에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 혼자만의 작품 해석에 골몰해하며

나름의 의미에 만족할 수밖에.

작품을 본 사람들 각각의 의미로 풀이되면서 작품이 더욱 풍부해지는 것도 재밌으니까.




영화의 중반까지도 이 영화가 최현의 몽중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일본인 관광객이 나오고, 술자리 이야기를 지나면서 앞에서 이미 본 장면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느낌을 받았다.

크게는 연달아 등장하는 죽음이 그러하고 친한 형과 공윤희의 남편이 우울증으로 죽은 것이 그렇다.

꿈속에서 같은 메시지를 다른 장면, 상징으로 계속해서 재현하는 것과 닮아있다.

그 후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아니 최현과 인물들을 살펴보게 됐다.


나는 이 영화의 표면적 시나리오가 매끄럽게 완결되는, 인물관계에 개연성을 찾기보다

최현의 삶에 일어난 지울 수 없는 하나의 큰 사건을 맞추는 방법으로 영화를 읽고 싶다.

그러니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실 각각의 개개인이 아니고 중첩되고 분열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표상이 아닐까 한다.



나의 상상은 이렇다.

이 꿈을 꾸는 현실의 최현은, 사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중, 노년의 남자로 오랜 시간 지식과 학식을 쌓아 삶에서 하나의 성취를 이루었다.

나름대로 사회적 위치도 있고 그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젊은 날 어떤 과오를 저질렀고 그 죄의식(혹은 사회적 도덕관념)은 노란 옷을 입은 꼬마와, 음식점 주인들이 자신에게 말하는 꾸지람으로 나타난다.

여자 후배를 울릴 때와, 후배의 남편으로부터 도망갈 때 자신을 꾸짖는 식당 주인들처럼 말이다.

꿈에서 음식은 마음의 양식이다. 그런 음식을 마음 편히 먹지 못하고 도중에 나오거나 도망쳐야 하는 최현.

그는 누군가에서 커다란 상실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 과오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오로부터 도망치듯 살아왔을 것이다.



영화에서 죽음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꿈에서의 죽음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새로운 삶이 그것이다.


꿈속 (이 글에서는 영화 속)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아이가 죽은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어떤 과오에서 느낀 죄책감(혹은 옥죄여오던 도덕관념)의 해방이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커플은 과오를 있게 했던 과거의 경솔한 자신의 죽음.

이것은 물소리가 시끄럽던 돌다리의 물이 이제는 모두 말라버린 것과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즉, 한 시절이(젊은 날이) 이제 끝났음을.



영화에서 최현만이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미 지난 과거를 되돌려 생각하듯이

젊은 날에는 알 수 없던 자신의 삶의 모습, 삶의 지형을 이제야 조망하게 된 건 아닐까.

그러니까 자신의 행동들이 어땠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사람인지 그는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후 자신의 삶을 그동안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더 나아간다면, 자신의 한계나 부족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감독은 이영화에서의 장면들을 실제로 꿈으로 꿨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영화에서 나타난 비유와 상징들이 하나의 큰 통일감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이 영화는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꿈에서의 죽음은 절대 죽음으로 나타나지 않고

성적인 것은 절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 꿈은 나의 꿈이 아니기에 하나하나 똑부러진 의미를 찾아내진 못하겠지만

그 의미를 생각하는 재미가 있는 꿈이었다.

정작 꿈을 꾼 본인도 자신의 꿈이 가진 의미를 전부 알 순 없겠지만 말이다.






생각해 볼 것들

-최현이 유일하게 편하게 먹는 음식은 차와 낫토이다.

차는 중국, 낫토는 일본, 음식은 한국의 것이라는 게 재미있다.


-중국 여자로부터 받은 화해의 전화는 최현의 내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최현이 과오를 저지른 사람에게 하는 화해의 목소리이자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죽은 선배는 젊은 시절의 최현 자기 자신 일지도 모른다.


-공윤희는 그가 목을 축이는 차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녀의 행동을 따라 하는 최현.

최현은 공윤희와 같은 사람을 삶의 모습으로 지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삶의 방향성 같은.


-그렇게 찾던 춘화. 

꿈에서 섹스는 신적, 영적 합일을 의미한다. 그는 온전한 정체성, 삶의 모습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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