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plexity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의 근대 지식체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매료되었다. 특히 그가 말하는 '요약하기에 대한 저항'이라는 개념이 흥미로웠는데, 마침 5개월 된 우리 딸의 예측불가능한 행동들을 보며 와이프와 나눈 대화 속에서 이 개념이 새롭게 다가왔다.
근대 지식체계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고 일반화된 패턴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마치 세상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 돌아가는 구조로 이해하려는 시도와 같다. 현재의 상태만 정확히 파악하면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원더윅스는 아기의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예측불가능한 시기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아이가 나름의 패턴을 보이다가 갑자기 알 수 없는 행동을 보일 때, 부모들은 이를 '원더윅스'라고 부른다. 이는 마치 의학에서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증상들을 '증후군'이라고 명명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일종의 안도감을 얻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실제로 성인인 우리조차도 매일 같은 패턴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에게 정해진 패턴대로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이는 어쩌면 부모의 편의를 위해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의 반영일 수도 있다.
애나 칭이 지적하듯, 현실은 단순하게 요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아이는 저마다의 리듬과 속도로 성장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의 행동을 하나의 패턴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를 넘어서, 각각의 아이가 가진 고유한 리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일 것이다. 결국 원더윅스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역설적인 깨달음을 준다. 아이의 행동을 패턴화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시도 자체가 얼마나 근대적 사고방식에 갇혀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아이는 왜 이럴지를 더 철저하게 고민해보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 맞는 선택이 아닐까.
최근에 애나칭의 <세계 끝의 버섯>을 조금씩, 그리고 굉장히 재밌게 읽고 있는데 거기서 근대 지식 체계를 비판하면서 '요약하기'를 언급하였다. 이러한 요약하기는 자칫하면 현실을 너무 단조로운 현상으로 만들어버릴수 있기 때문에 '마주침' 혹은 '귀기울여 이야기 듣기'와 같은 연구 방법이 필요하다고 애나 칭은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현실을 어떠한 설명으로 환원해서 '모든 걸 다 이걸로 설명할수 있어!'가 아니라 서로가 다른 위치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복잡한 현실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아무튼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어서 또 관련 내용 읽다가 현실과 접목되는 지점들이 있으면 짦게나마 글로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