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풍선 오므라이스
“명함 나왔는데 만나면 줄게”
최근 재취업한 친구가 했던 말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친구와 밥을 먹기로 한 날이다. 항상 웨이팅이 있는 '에그썸'이라는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나보다 빨리 도착해서 대기명단에 이름을 적고, 영하의 추위를 피해 난로 하나가 놓여있는 대기장소에 앉아있었다. 샤로수길 '에그썸'은 항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오므라이스 맛집이다. 최근 화제가 된 '강식당' 오므라이스처럼 계란을 부드럽게 만든 게 특징이다. 토네이도, 마그마, 화이트마그마, 3종류의 오므라이스 모두 맛있다.
가게 안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친구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넸다. “명함 나왔다” 경상도 출신이라 약간 무뚝뚝한 친구의 말투에 살짝 들뜬 목소리가 섞여있었다. 명함에는 이미 알고 있는 게 인쇄되어 있다. 친구 이름, 직업, 직장, 연락처 정보. 다 아는 거지만 친구의 명함을 받을 때면 받은 명함을 두 손으로 쥐고 열심히 들여다보는 척을 한다. 명함 속 기업 로고는 친구의 자켓 위 뱃지와 같았다. 나는 “오 축하해. 잘됐다 진짜”라는 축하의 인사를 다시 한 번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의 퇴사와 재취업 기간을 거쳐 대기업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어머니는 합격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다.
직업일까
회사일까
둘 다 일까
친구가 다니는 기업은 계열사가 많은 회사다. 나는 그 기업의 다른 계열사에 다니는 사람 몇몇을 만난 적이 있다. 한 사람에게 건네받은 명함에 적힌 '연구원'을 강조한 사람도 있었고, 누구나 들어도 아는 '회사명'을 강조한 사람도 있었다. 연예기획사를 가져와 예를 든다면, 한 사람은 자신이 '가수'나 '배우'라는 걸 강조한 거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YG소속'이라는 걸 강조한 거다. 회사의 후광효과, 소위 '회사빨'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래서 누군가 명함을 주면, 그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게 직업일까 회사일까. 그 둘 다 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직장보다 '직업'이 중요했던 사람이었다. 소속보다는 '하는 일'을 선택했다. 내 첫 명함에는 카피라이터라라는 일 적혀 있었다. 카피라이터는 광고 크리에이티브를 책임지는 직업이다. 두번째 명함에도 역시 카피라이터라고 적혀있었다. 회사 대표는 히트한 광고를 많이 만든 사람이었다. 나에게 내 이름이 적힌 명함을 주며 명함 한 장의 무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그 당시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 선배는 그 명함 한 장의 무거움에 짓눌려 퇴사를 했다. 아침 10시부터 밤 12시 막차 시간까지 나는 카피라이터로 살았다. 하루가 24시간인데, 14시간을 회사에서 있었고, 오고 가는 이동 시간 1시간반, 아침 저녁으로 씻는 시간 1시간을 빼면, 7시간 30분이 남는다. 집에서 잠자는 시간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활이 주말까지 이어졌다. 나중엔 잠자는 시간마저 빼앗겼다. 직업이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취업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도. 직업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하는 '과정'이다.
돈벌이는 숭고한거야.
직업은
밥줄, 생업이다.
회사를 퇴사한 선배를 2년여만에 만났다. 선배는 다른 성격의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명함의 무게를 알아가며 버거워하는 나에게 선배는 “어떤 일을 하든 먹고 사는 돈벌이는 숭고한거야.”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렇다. 직업의 사전적 의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다. 유의어에는 '밥줄', '생업'이 있었다. 링컨은 '세상에 천한 직업은 없으며, 다만 천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직업은 중요하지만, 모든 직업이 숭고하다. 한 가지 직업에 갖혀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힘들다면 언제든지 울타리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직업은 나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나는 이제 직업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장소: 샤로수길 에그썸
가격: 8천원 후반~10,500원
메뉴: 오므라이스 추천
토네이도는 노란풍선 같이 얇은 계란이 볶음밥을 감싼 오므라이스이고, 마그마는 부드러운 계란이 더 많이 들어가서 이불처럼 폭신하게 볶음밥을 덮는다. 화이트마그마는 까르보나라를 연상시키는 비주얼과 맛이다. 토네이도와 화이트마그마 볶음밥에만 베이컨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