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쌀밥에 반찬 몇 개가 어렵다
자리에 앉자마자 말한다.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주문하자마자 아주머니는 네모난 두부, 김치, 무말랭이, 나물 반찬 몇 개를 담은 그릇들을 들고 오신다. 테이블에 그릇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으면 나는 얼른 젓가락을 꺼내 김나는 두부를 자르고, 두부 위에 김치를 올려 입 속에 넣는다. 따뜻한 부드러움이 허기를 감싸안는다. 젓가락이 바쁘다. 나물도 맛봐야 하니까.
저번에 친구랑 왔을 때의 일이다. 종종 아주머니에게 무슨 나물인지 물어보기도 한다. 근데 신기한 건 기억에 남는 나물 이름이 없다. 분명 생소한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음...오늘도 저 초록색 나물이 뭔지 모르겠다.먹어본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괜히 한 번 더 초록색 나물을 입 속에 넣어 본다.
반찬들이 내 눈빛을 읽을 수 있다면 아마 이런 말 따위가 아니였을까. 허기를 채우고 있으면, 금새 메인 메뉴인 비빔밥이 나온다. 냉면 그릇같은 큰 그릇에 상차림에 올라온 나물보다 더 많은 종류의 나물들이 잘게 썰려 있다. 한가운데엔 반숙 계란후라이가 꽃 같이 아름다운 자태로 놓여있다. 자그만 뚝배기에 된장찌개도 보글보글 끓여져 함께 나온다. 아 공깃밥도 함께 나온다. 뚜껑을 열면 흰쌀밥이 꾹꾹 눌러담아져 있다. 밥이 어설프게 채워져 공깃밥 위 공간이 남으면 속은 기분이 드는데, 이곳은 진짜배기다. 공깃밥을 열기 전에 흔들어서 나물그릇에 넣고, 고추장을 넣는다. 나는 된장찌개도 두 국자 정도 넣고 비빔밥을 비벼준다. 된장찌개 국물이 비빔밥을 촉촉하게 만들어줘서 먹을 때 뻑뻑하지 않고 촉촉하니 맛있다. 이제 숫가락이 바빠진다.
가끔씩 이 비빔밥이 생각이 났다. 사실 이 음식점은 내가 서울에 처음 올라왔던 날 처음 왔다. 자취방을 알아보는데 부동산 아주머니가 점심 먹을 곳으로 추천해줘서 엄마랑 왔었다. 그때는 평범한 밥집 정도로 여겼다. 그때도 잘 먹어놓고선. 그 후로 때때로 이곳을 찾았다. 나 혼자서 올 때도 있었고, 친구를 이끌고 올 때도 있었다. 배고파서 나는 이곳에 왔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빈 속을 채웠다.
나는 야근이 꽤 많은 회사에 다녔었다. 일하며 밥을 제 때 챙겨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 사무실 내 책상엔 편의점 음식이 비상 식량처럼 쌓여있었다. 서랍 안에도 한가득. 점심 시간에 라면과 김밥, 샌드위치를 많이 먹었다. 내 자리에 앉아서 먹거나, 일을 하면서 먹거나, 회의실에서 팀 사람들과 회의하면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거나 했다. 밖에 나가서 먹을 때도 밥만 빨리 먹고 들어와 다시 일을 했다. 무언가를 먹으면 맛은 있는데, 속은 채워지지 않는 기분. 어쩌다 시간이 날 때 속이 너무 허하고, 밥 같은 밥을 제대로 챙겨먹고 싶은 날. 나를 위해 챙겨먹고 싶은 날. 나는 이곳에 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날은 조금 지쳤었던 것 같다. 오늘 나는 이곳에 왔다.
나는 그 회사를 떠났고 시간이 좀 흘렀다. 내 친구는 아직 내가 밥을 제 때 못 먹었을 때처럼 일한다. 오늘 내 친구와 카카오톡으로 연락하는데, 이번주에만 3일을 새벽 4, 5시까지 야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요일도 출근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친구에게 나는 밥 잘 챙겨먹고, 좀 자고, 체력을 회복하라고, 건강제일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고맙다고 화요일 제안이 끝나면 보자고 했다. 손으로 몇 글자 눌러썼을 뿐인데, 허기졌다. 이 곳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비빔밥을 먹었다. 역시나 맛있다.
빈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제대로 채우고 싶다.
나는 이곳을 조금 아는 사람이다.
가격: 비빔밥 1인 7천원.
장소: 서울대입구 3번출구.
이름: 하우림 (구 산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