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먹고 싶다

흰 쌀밥에 반찬 몇 개가 어렵다

by 밤하늘

"여기 비빔 2개 주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말한다.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주문하자마자 아주머니는 네모난 두부, 김치, 무말랭이, 나물 반찬 몇 개를 담은 그릇들을 들고 오신다. 테이블에 그릇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으면 나는 얼른 젓가락을 꺼내 김나는 두부를 자르고, 두부 위에 김치를 올려 입 속에 넣는다. 따뜻한 부드러움이 허기를 감싸안는다. 젓가락이 바쁘다. 나물도 맛봐야 하니까.


"이거 무슨 나물이지?"

"시금치는 확실히 아니고 민들레?"

"민들레도 진짜 아니다ㅋㅋㅋ 뭐지 이거?"

저번에 친구랑 왔을 때의 일이다. 종종 아주머니에게 무슨 나물인지 물어보기도 한다. 근데 신기한 건 기억에 남는 나물 이름이 없다. 분명 생소한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음...오늘도 저 초록색 나물이 뭔지 모르겠다.먹어본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괜히 한 번 더 초록색 나물을 입 속에 넣어 본다.


'반가워. 얼른 내 입 속으로 오렴.'

반찬들이 내 눈빛을 읽을 수 있다면 아마 이런 말 따위가 아니였을까. 허기를 채우고 있으면, 금새 메인 메뉴인 비빔밥이 나온다. 냉면 그릇같은 큰 그릇에 상차림에 올라온 나물보다 더 많은 종류의 나물들이 잘게 썰려 있다. 한가운데엔 반숙 계란후라이가 꽃 같이 아름다운 자태로 놓여있다. 자그만 뚝배기에 된장찌개도 보글보글 끓여져 함께 나온다. 아 공깃밥도 함께 나온다. 뚜껑을 열면 흰쌀밥이 꾹꾹 눌러담아져 있다. 밥이 어설프게 채워져 공깃밥 위 공간이 남으면 속은 기분이 드는데, 이곳은 진짜배기다. 공깃밥을 열기 전에 흔들어서 나물그릇에 넣고, 고추장을 넣는다. 나는 된장찌개도 두 국자 정도 넣고 비빔밥을 비벼준다. 된장찌개 국물이 비빔밥을 촉촉하게 만들어줘서 먹을 때 뻑뻑하지 않고 촉촉하니 맛있다. 이제 숫가락이 바빠진다.


가끔씩 이 비빔밥이 생각이 났다. 사실 이 음식점은 내가 서울에 처음 올라왔던 날 처음 왔다. 자취방을 알아보는데 부동산 아주머니가 점심 먹을 곳으로 추천해줘서 엄마랑 왔었다. 그때는 평범한 밥집 정도로 여겼다. 그때도 잘 먹어놓고선. 그 후로 때때로 이곳을 찾았다. 나 혼자서 올 때도 있었고, 친구를 이끌고 올 때도 있었다. 배고파서 나는 이곳에 왔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빈 속을 채웠다.



나는 야근이 꽤 많은 회사에 다녔었다. 일하며 밥을 제 때 챙겨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 사무실 내 책상엔 편의점 음식이 비상 식량처럼 쌓여있었다. 서랍 안에도 한가득. 점심 시간에 라면과 김밥, 샌드위치를 많이 먹었다. 내 자리에 앉아서 먹거나, 일을 하면서 먹거나, 회의실에서 팀 사람들과 회의하면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거나 했다. 밖에 나가서 먹을 때도 밥만 빨리 먹고 들어와 다시 일을 했다. 무언가를 먹으면 맛은 있는데, 속은 채워지지 않는 기분. 어쩌다 시간이 날 때 속이 너무 허하고, 밥 같은 밥을 제대로 챙겨먹고 싶은 날. 나를 위해 챙겨먹고 싶은 날. 나는 이곳에 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날은 조금 지쳤었던 것 같다. 오늘 나는 이곳에 왔다.



나는 그 회사를 떠났고 시간이 좀 흘렀다. 내 친구는 아직 내가 밥을 제 때 못 먹었을 때처럼 일한다. 오늘 내 친구와 카카오톡으로 연락하는데, 이번주에만 3일을 새벽 4, 5시까지 야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요일도 출근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친구에게 나는 밥 챙겨먹고, 좀 자고, 체력을 회복하라고, 건강제일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고맙다고 화요일 제안이 끝나면 보자고 했다. 손으로 몇 글자 눌러썼을 뿐인데, 허기졌다. 이 곳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비빔밥을 먹었다. 역시나 맛있다.

'다음에 친구랑 같이 와야지.'


빈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제대로 채우고 싶다.

나는 이곳을 조금 아는 사람이다.




가격: 비빔밥 1인 7천원.

장소: 서울대입구 3번출구.
이름: 하우림 (구 산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