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이로 Oct 18. 2022

독신주의 친구의 결혼 소식

근 1년 만에 본가에 내려간 날이었다. 친구는 그날 외근까지 마치고 늦은 밤 나를 만나러 우리 동네까지 왔다. 친구는 남자 친구의 차를 타고 왔는데 그 친구가 연애한 지 2년이 다 되어서야 처음 남자 친구를 보게 되었다. 조금 마르고 작은 얼굴에 비해 동그란 큰 안경과 멀끔한 인상은 성실함과 다정함 첫인상만으로 충분히 느껴졌다. 친구 S는 평생을 독신주의를 외치며 연애뿐 아니라 남자에 관심도 없고 외로움조차 모르던 친구였는데 그런 친구가 난생처음으로 길게 연애하는 것만 봐도 사실 남자 친구가 얼마큼 좋은 사람인지는 은연중 느끼고 있었다. 친구는 연애를 하면서도 결혼은 모르겠다며 틀에 갇혀 살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그런 친구가 내리자마자 남자 친구를 소개하며 내게 한 첫마디는 '나 내년 9월에 결혼해'였다. 나는 내 눈이 그렇게 크게 떠지는 줄 그날 알았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소름이 돋으며 이내 갑자기 이유모를 눈물이 흘렀다. 나는 친구를 꼭 안으며 잘 됐다고, 너무 축하한다는 말만 계속했다. 친구도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남자 친구에게 '너는 이런 찐친없지?'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친구 S는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 가장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6살 어린 여동생 하나, K-장녀로서의 역할과 책임감, 예술을 전공했다는 점까지 비슷한 점이 참 많았다. 그런 탓인지 나보다 더 연애와 결혼에 반감이 많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연애했던 나와는 다르게 정말 연애란 건 인생에 없는 듯 살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결혼이라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친구의 결혼 소식에 다행이란 생각부터 들었다.


우리는 몇 개월 만에 나란히 카페에 앉았다. 동네에 늦게까지 여는 카페가 없어 무인 카페에서 음료 하나씩을 시키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혼 날짜 잡고 식장 찾고 있는데 아직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

"아냐, 아까 남자 친구분 보니까 인상부터가 너무 좋으시더라. 오죽하면 너 같은 성격이 이렇게 오래 만날 수 있었겠냐? 남자 친구분이니까 이렇게 만난 거지."

"너는 비혼 주의라면서 왜 내가 결혼한다니까 좋은 소리만 해!"


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뒤 나지막이 얘기했다.


"너나 나나 힘들게 살았잖아. 근데 이제 네 곁을 지켜줄 사람이 생기는 거니까. 나는 그게 다행인 것 같아."

"식장 들어가기 전까진 모른다더라."

"그래도 일단 안정감이 생기는 거니까 좋게 생각해. 나도 아직까지 결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결혼한다는 소식이나 결혼한 사람들이 안정감을 찾고 편안한 느낌을 줄 때면 부러운 생각도 들어."

"축가는 네가 불러. 부케도 받을래?"

"축가는 당연한 거고 부케는 모르겠다."


친구는 사실 프러포즈를 받을 때 '아, 큰일 났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본인에게 결혼은 생각에 없거나, 저 먼 미래의 얘기 정도였는데 갑작스레 결혼식 날짜까지 잡으며 식장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랑 결혼하는 게 맞나 싶은데, 근데 이 사람보다 좋은 사람은 못 만날 것 같아."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다 그런다더라. 그 사람보고 '아, 이 사람이다!' 하는 경우는 거의 없대. 그냥 어느 순간 '아,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래. 근데 그런 생각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고등학생 시절에 만나 화딱지 나는 담임 얘기를 나누던 우리는 시간을 흘러 결혼에 대한 심도 깊은 주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성격이나 말투, 서로에게 얄궂게 치는 장난까지 주제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건 없다. 독신주의인 친구가 나보다 먼저 결혼하게 될 줄은 서로 상상도 못 한 일이지만 결국 우리는 똑같을 것이다. 결혼해도 나와 놀아줘야 한다는 내 말에 '걱정 마, 방 한 칸 아예 내줄 거니까'라고 대답하는 친구의 대답에 나는 그저 깔깔대며 웃을 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안식, 미루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