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마음이 엎어지는 날들이 많다. 나의 불행이 여전히 행복보다 크기 때문일지 모른다. 스스로 이뤄내려 한 삶들이었지만, 그렇기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날들이 많다. 살려달라고, 벅차다고, 숨이 가쁘다고 말하기에 나의 핏줄들 역시 그들의 삶이 고달팠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갈아가며 일을 했다. 수술대를 오른 다음 날에도, 가까웠던 이의 죽음을 겪었을 때도, 스트레스에 매일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나는 꾸역꾸역 회사에 나갔다.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H는 서른이 넘은 내게 '하고 싶은 것을 하라' 했다. 음악을 다시 시작해도 좋고 글을 쓰는 걸 꾸준히 해도 좋고 뭐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막상 그 말에 어떤 것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음악을 하기엔 너무 뒤떨어진 실력과 글을 쓰는 걸로 업을 삼기엔 배고픈 직업이었다. 아니, 그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렇게나 음악이 하고 싶어 왕복 4시간의 대학을 단 한 번의 지각과 결석 없이 다녔다. 그러나 졸업하고 나니 음악을 하기에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음악을 하든 뭘 하든 내게는 당장 돈이 필요했다. 그렇게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다. 간간이 음악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부모님의 대출 사기로 인해 나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하며 그만뒀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날이 없었다. 기껏 해야 지인들과 밥 한 끼의 약속을 잡는 것 외에 무언가 하기에는 내게 생계의 무게가 너무 컸다. 2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임에도 나는 반년동안 티셔츠 하나 사지 않았다. 겨울 니트는 보풀이 생겨도 몇 년씩 입었다. 그렇게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아가며 나는 나의 삶을 꾸려갔다.
내게 주어진 평화와 기회. 이마저도 나는 즐기지를 못했다. 이제는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돈을 쓰는 것도 무서웠고, 돈을 벌지 않는 내가 H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했다. 나는 처음으로 내게 주어진 여유와 자유를 두려워했다. 여전히 과거는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평화로운 일상임에도 불안함에 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배고픔은 마시는 것으로 달랬다. H가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몰아서 식사를 했다. H는 피곤함에 집에 오면 잠깐씩 잠이 들었다. 그 모습에 자꾸만 마음이 시큰거리고 썩어갔다. 어떤 날은 죄책감이 들어 집 밖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의 불안이 그에게 어둡게 물들어 가는 것 같아 떠나고 싶었다. 그래도 H는 한 번을 재촉하지 않았다.
자꾸만 뭐가 이렇게 불안한 걸까 이유조차 찾지 못한 밤들이 늘어만 간다. 언제쯤 행복은 나의 불행보다 커질 수 있을까. 마음이 곪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