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은 온디멘드 서비스가 아니야
당시만 해도 7년 후 내 명함에 ‘UX 디자이너’라는 직함이 찍힐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UX 분야는 나에게 오르지 못할 나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p.13 프롤로그 '어쩌다 보니 UXer가 되었다' 중
멘토링 활동을 시작한 지 만 7년을 향해 가고 있다. UX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명함에 UX라는 이니셜을 새기게 된 시간과 같다니 감회가 새롭다. 홀로 고군분투했던 시간만큼을 도움 뿌리기에 썼다니 할 만큼 했다고 자부해도 될 것 같다.
솔직히 인하우스 디자이너, 그것도 보안이 철저한 전자회사, 전통적인 제조기반 기업의 월급쟁이로 살며 멘토링이라는 대외활동을 이토록 병행한다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 그래서도 희소하지. 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나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노력이 실은 많았다.
어떠한 질문에도 그럭저럭 답을 해내려면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체계의 양적 충만함과 질적 객관화가 늘 중요했다. 전 세계 UXers 미디엄 글과 UX 아티클을 꾸준히 살폈고, 그간의 질의응답 내용들도 따로 분류하고 아카이브 했으며, 주요 멘토와 관련 플레이어들의 활동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했다. 그러다 보면 버젓이 사내 기밀문서를 온라인에 떡하니 올려놓는 강심장들도 눈에 보이더라.
나 나름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UX 멘토링 시장이라는 걸 그리려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단순히 공부를 한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공부가 중심이 되면 내가 모르는 걸 채우는 방향이 되기 쉽다. 문제는 내가 쉽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멘토링 상황에서는 더 소비된다는 점이었다. 기본기가 튼튼해야 했고, 멘티의 시선에서 의미 있는 정보 체계를 새롭게 체계화해야 했다. 그렇게 멘토링 트렌드를 계속 보려고 했다.
국내 UX 신간 확인도 공부보다는 남이 어떤 것들을 세상에 내놓는지 파악하기 의해 필수적으로 살폈다. 과거보다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는 주기 또한 차츰 짧아진 추세였다. 집필 막바지엔 마감 압박에 마음의 여유가 하나도 없었지만, 곧 출간 예정인 책 정보를 안 이상은 당장 살펴보지 않으면 마무리를 못하겠는 것이었다. 결국 북페어로 달려가 미리 입수해서 확인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크라우드 펀딩 종료 후 더 이상 구할 수 없었던 책도 이미 갖고 있었다. 출판사 기획자분에게 작가가 책을 빌려주기까지 했으니, 솔직히 준비가 제법이나 돼있던 나였다. 이런 식의 7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답변하는 행위 자체는 루틴 해졌고, 같은 질문에도 질문자의 특성에 맞춤답변을 하는 것에서 큰 희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세월이 흐른 만큼, 다음날 출근임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답변글을 작성하다가 아침 참새 지저귀는 소리로 현실복귀하는 일은 이젠 퍽 힘들어 자제하게 되었다. 물론 과거 며칠씩 걸리던 답변글을 이제는 몇십 분이면 써내니 빨라진 것도 있다.
출간 이후 생각지도 못한 좋은 기회들이 더러 찾아왔지만 심사숙고 끝에 많이 고사했다. 그 이유는 오로지 회사 취업규칙 겸업금지조항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다른 동료들은 가져본 적 없을 이 눈치를 7년 동안이나 혼자 짊어졌단 것만으로도 할많하않. 그래서 너무 유명해지면 위험하단 관념이 내겐 아직도 지배적이다. 이 대목에서 참 바보 같다 여기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참 당신 열심히 사셨네요' 이 소리가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멘토로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이렇게 떠버리지 않는 한 어차피 내 숨은 노력 따위는 아무도 알아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날 만든 건 분명 다른 무언가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야만 한다. 어쩌면 나는 그것이 '평판'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평판이란 인기와는 많이 다른 것이다. 인기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도 내 이미지를 통해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평판은 나를 실제로 겪어 보았기 때문에 매길 수 있는 일종의 '경험점수' 같은 것이다. 내가 이 평판관리를 위해 가능한 한 고수해 온 멘토링 루틴이 1:1이다.
만약 멘토링을 위해 내게 2시간이 주어진다면,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보다는 1명에게 내 2시간을 오롯이 내주는 것을 예나 지금이나 난 훨씬 더 선호한다. 결국 질문자의 문제에 최근접을 하거나 맞닿은 채 뭐라도 꼭 해결해 주겠노라 덤비는 의지와 정성, 그 결과가 조금씩 퍼지면서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고 자평한다.
여기까지 읽어 온 사람은 거의 없겠지! 얼마 전 로켓펀치를 통해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콜드메일 격으로 보낸 친구신청에 대해서 마치 내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접근한 사람인 줄 알고 경계를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그 어떤 SNS에서도 처음이었다.
알고 봤더니 그는 자신의 로켓펀치 계정에 본인 포트폴리오를 올려놨는데 왜 나는 그렇지 않았냐며 이메일 주소를 건네면서 그쪽으로 내 포트폴리오를 보내주면 관계가 유의미할 것 같다고 했다. 말이 틀리지 않았다 뿐이지 시비였다. 적어도 나는 포트폴리오에 고픈 입장도 아닐뿐더러, 대충의 이력만 보더라도 분명 손아랫사람이고 경력이 깊지도 않아보였다.
그렇게 빼앗기기 싫었다면 비공개로 계정을 잠그면 될 일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프리랜서다 보니 그럴 수도 없었겠지. 게다가 이럴 거면 처음부터 너님은 친구신청을 그냥 안 받고 날 무시하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내 느낌은,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가운데 때마침 너 잘 만났다는 느낌이었다. 당황스러운 내게 왜 대답이 늦냐며 추궁까지 하더라.
중요한 점은, 나는 실명에다가 내 얼굴을 프로필 사진으로, 학교와 회사 정보까지 모두 다 까발린 계정이었다. 반면 상대는 익명에다가 얼굴은커녕 본인 브랜딩 할 요량의 닉네임을 적은 텍스트 프로필 이미지, 프리랜서로서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를 실록 수준으로 적어놓은 상태였다. 얼마나 도둑질을 당했길래 이렇게 경계하는 것일까 측은하다 싶다가도 칠 수 있는 방어막은 다 쳐놓은 걸 보면 고약했다.
나는 두 차례 사과를 했다. 친구수락 후 다짜고짜 누구냐고 하길래 우선 불편하셨다면 사과한다는 메시지로 답한 게 시작이었다. 그러다 결국, 친구신청을 잘못 드린 것 같다며 다시 사과로 마무리 지었다. 이후 더 이상의 대화가 지속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친구관계를 끊었다. 당연히 상대는 내 사과에 대꾸 없었다.
이 일이 있고 불과 며칠 후, 그는 취준컴퍼니에 멘티로 등장했다. 심지어 내 커피챗 모집공지에도 버젓이 댓글을 달아 나로부터 조언을 들었으면 좋겠다며 신청하는 것이다. 동시에 위와 같은 사건이 있었던 로켓펀치로 이번엔 나에게 친구신청을 보내는데 강한 빌런의 기에 전율해야 했다.
나를 몰라봤을 리가 없는 게 내 프로필 사진은 로켓펀치와 동일하고 역시나 실명으로 취준컴퍼니에서도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내가 인사이트만 뽑아먹는 포트폴리오 도둑놈 같아 내 포트폴리오를 본인 이메일로 보내라고 한 지 불과 며칠 만에 이렇듯 아무 말 없이 태세전환을 한 것이다. 이제는 나보고 선생님이라면서 경험을 전수받고 싶단다ㅎㅎ
사실 로켓펀치 사건까지는 SNS 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라 넘겼다. 이후 일어난 전개는 좋게 말해,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수준으로 생각의 대전환을 가져다준, 그냥 한마디로,
소오르음...
올해는 사내 면접위원으로도 활동을 했다. 지난 7년 동안 어떻게 해서든 그네들의 상황을 개선해 주고 돕기 바빴던 나로서는 이제 타당한 이유와 명분을 갖고 수많은 사람들을 내칠 궁리를 하는 정반대의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말로만 듣던 표절의혹 포트폴리오도 실제로 보게 되니 실로 충격이었다. 특히 올해는 거의 매주 오프라인 멘토링을 하면서 현실의 문턱에 걸려 좌절하는 이들과 더 직접 마주한 시간이 전례 없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표절의혹에 대해서는 굉장한 분노가 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진위 여부를 밝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답답했다.
과거 익명게시판에서 떠돌던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는데, 이런 부정한 일이 없게 하는 것도 멘토링 못지않게 정말 절실한 일이겠구나 새삼 깨닫기도 했다. 다양한 면접을 진행해 보면서 그다지 변별력이 없을 줄 알았던 질문에서도 지원자 간 큰 격차가 발생하는 걸 직접 확인하니 이것도 참 놀라웠다.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지원자를 살피고 또 살피다 보니, 속임수를 쓰거나 어떻게 해서든 단점을 감추려고 하는 통에 나 역시 주도면밀하게 파보지 않으면 쉽게 속아 넘어갈 구석 또한 의외로 많다는 함정도 제법 느낄 수 있었다. 결국엔 포장된 지원자들을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긴 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걸 테크닉적으로 가르칠 수도 있겠지만, 정공법의 가치에 더 눈을 뜨게 되었다. 결국 아우라가 느껴지는 인재는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빛이 나는,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그런 인물들이었다.
솔직히 멘토링을 통해서도 빛나는 인재는 금방 눈에 걸리긴 한다. 왜 캠퍼스 리크루팅을 하는지 단 번에 이해되는 순간이다. 내가 내 회사 대표 혹은 사내 강력한 인사권을 가졌다면 그냥도 들이고 싶은 이들이 정말로 눈앞에 있었다. 과거에 나처럼 그물 같은데 걸려 빛을 뽐내지 못하고 있을 뿐. 자기 자신부터가 스스로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은 원석 상태로 곁에서 나만이 느끼고 가늠할 수 있는 그의 아우라, 이거 경험해보지 않으면 어떤 기쁨인지 설명이 어렵다.
면접은 정말로 한 사람의 운명을 가르는 실전이다 보니 멘토링에서는 배울 수 없는 특별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물론 멘토링 경험 또한 면접 시 도움이 되었기에 선순환이었다. 전에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멘토링을 통해서는 질문자의 인성을 쉽게 알기 어렵다는 그늘이 있다. 그들이 아쉬운 게 있기 때문에 예의인지 포장인지 모를 매너로 얼마든지 멘토를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는 만남이다. 로켓펀치 해프닝 덕분에 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내 올해 이런 복합적인 경험들이 추가로 업데이트되면서 전에는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을 아주 진지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가 멘토링이라는 헛물을 켜가며 수준미달인 사람들까지 무리해서 업계로 들여놓는 일종의 밀수업자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말이다. 그것도 공짜로.
이 발언은 그야말로 문제적 자폭이 따로 없다. 좋은 의도를 가진 과거의 나 자신은 물론, 유사한 기조로 임해온 다른 훌륭한 멘토들, 뿐만 아니라 선량한 멘티들까지 다 싸잡아 폄하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켓펀치 사건도 그렇고 전보다 멘토링의 가치에 대한 회의감이 솔직히 커진 게 사실이다.
곱씹어 보면, 분명 7년 전과 지금은 멘토링의 결이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마치 일타강사보다도 흡사 취업참모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과거엔 40점짜리를 65점짜리로, 70점짜리를 88점짜리로 만드는 일이 많았다. 요즘은 89점짜리가 93점을, 92점짜리가 97점을 노리는 경우가 늘어났다. 전형의 각 단계마다 붙들면서 매 단계 합격비책을 내어주길 대놓고 바라는 모습들이다. 어찌 보면 상향평준화 되었다고 취준생의 수준 향상을 좋게 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결국 당락을 좌우하는 불과 몇 점 차이를 멘토가 메꿔주는 것이라면 어디까지가 그 역할의 본위인지 참 헷갈릴 수밖에 없다. 물론 열과 성을 다해도 떨어질 사람들은 떨어지고 붙을 사람은 붙기에 업계에 자정작용이 없는 것도 아니긴 하다. 차라리 면접관은 냉정하게 TO에 필요한 인원을 앉히면 그만인데, 나름 평판을 가진 멘토로서는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더라.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그 멘토의 평판이 되다 보니까, 적극적으로 붙이려고만 해서도 문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어뜨리려 해서도 안되니 난제다.
다시 해프닝으로 돌아와서, 애초에 불협화음이 예상돼 나는 운영진에 내 우려사항을 충분히 전하고 이후 활동을 조심스레 진행했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소비되는 이유가 나름 쌓아온 그리고 지켜온 어떤 평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겐 실무자로서 뿐만 아니라 멘토로서의 평판관리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한데 이러한 사건은 그러한 평판관리에 지대한 위험신호이자 위협으로 느껴졌다. ‘뭐야 나는 안 봐주던데 사람 고르네?‘ 이런 말 한마디가 나비효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당연히 부족한 게 많고 감추고 싶은 약점 또한 있다. 그러다 보니 감히 내가 가치판단을 해도 되나 생각했었다. 혹자가 선한 영향력이라고 포장해 주는 것은 나라는 멘토에 대한 평판이지 내가 아니다. 난 그런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평판관리를 하려면 전보다도 더 인기관리 차원의 기준들을 떠올리지도 말아야 함을 깨달았다. 일부 비판에도 나는 오히려 보란 듯이 교과서무새로 남아야 할 것 같다.
이제 실제 면접에도 관여하고 있는 나로서는 입사를 시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봐버린 이에게 나의 단 1분도 나눠줄 의향이 1도 없다. 그렇게 7년 만에 블랙리스트를 갖게 됐다. 나아가 책임감을 갖고 잘 골라야 한다고 이제는 마인드셋을 바꿔야겠다 다짐하는 계기였다.
나는 해프닝을 겪어서 알아챘다지만 이를 모르는 다른 멘토는 그에게 기꺼이 선행을 이어 줄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걸 보고도 내가 애써 막을 방도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무리 없이 이런 식으로 실력을 살찌울 수 있을 것이다.
막말로 업계에 들이면 안 될 위인을 업계에 불러들이는 것에 지속적으로 일조를 한 것이 내가 해온 일의 실체라면 너무 소름 돋고 의기소침해진다. 이런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몹시 거만한 처사라고 오랫동안 믿어왔지만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사실, 싸한 느낌을 준 이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비로소 내 시간들이 참 아깝게 느껴지더라.
멘토와 면접위원의 경험이 융합하면서 다짐하게 되었다. 업계에 필요하고 유능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긍정적으로 유입시키고, 업계에 위험하고 무능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거르고 내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모름지기 UXer로서 주관을 부정하는 버릇이 업무 외적으로는 몹쓸 병이라고 진단하기로 했다.
이건 원래도 갖고 있었던 기조지만 이걸 어떻게 실현할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당연히 나는 나로서 그럴 자격이 굳건한 자가 되기 위해 더 레벨업 해야 할 테지!
특히 유료 멘토링의 경우 멘티들이 크게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돈을 지불했으니 당신은 응당 그 대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식으로 은연중에 나오기도 한다. 본인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어떤 본능적인 느낌이라 나무라기도 어렵다. 혹은 이미 아는 얘기는 됐고, 내가 몰랐던 것을 새로이 알게 해 달라는 무언의 압박도 느끼곤 한다. 물론 극소수다.
내가 주력으로 행하는 멘토링은 적어도 금전거래가 없는 경우로 보기 좋은 봉사활동, 자원봉사, 재능기부 이런 게 절대 아니다. 멘토링은 내 눈에 띈, 훗날 이 업계에 이바지할 것 같은 좋은 인재와 그가 지닌 재능이, 정말 별것도 아닌 말이나 현실 상황 때문에 상처받고 좌절해 업계가 그들을 잃는 것을 최소화했으면 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의 속내는 투자다. 다만 무료 멘토링의 봉사 성향을 역으로 멘토로서의 주권을 행사하는 기재로 쓰는 것 만이 최선의 방어책이라 이를 더 고수하는 것도 있다.
7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몇몇 기특하고 흐뭇한 이들이 한 명씩 늘고 있다. 그들은 내가 단타성 멘토가 아니라 멘토쉽을 향한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을 이해해 준 이들이다. 물론 결국 이해관계라면 이해관계다 보니 근본적으로는 이 모든 네트워크에 대해서도 못내 씁쓸한 생각이 자꾸만 자라나는 요즘이긴 하다. Pay it forward 이 구호가 그냥 주니어와 시니어 시절 나라는 멘토의 알량하고 비현실적인 스웩이었나 싶다.
젊은 친구들아 명심하자. 멘토링은 널 위한 온디멘드 서비스가 아니란다. 나에게 이제 멘토링이란 내가 속한 이 업계를 지키는 실천이자 그 훈련이다. 고객의 복잡성을 기꺼이 떠안겠단 호기로움 조차 없이, 똑 부러지게 거래라는 경제성과 셈법에 더 관심이 많다면 애초부터 다른 사람 다른 일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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