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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 Oct 08. 2019

UX 디자이너들의 수다 - 1

10초 앞으로는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가?

VOD 보다가 음성명령으로 '10초 앞으로'라고 하면 어떻게 동작할 것 같아?


친한 형의 집들이에 UX 디자인으로 밥벌이를 하는 지인들이 모였다. 요새 사는 이야기,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직업병이 발동했다. TV UX를 하는 형이 화두를 던졌다. "있잖아, VOD 보다가 음성명령으로 '10초 앞으로'라고 하면, 어떻게 동작할 것 같아?" 나는 "응? 당연히 10초 앞으로 가겠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형이 반문했다. "그러니까 네가 생각하는 10초 앞은 10초 전이야? 아니면 10초 후야?"


사실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주제라서 적지 않게 당황했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 대답을 했는지 알아차리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게 쉽지 않은(그리고 UX적으로 매우 재밌고 흥미로운) 문제라는 점에 공감하게 됐다. 먼저 '앞'이라는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살펴봐야겠다. 한국어 '앞'에 대해서 표준국어대사전은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1. 향하고 있는 쪽이나 곳
2. 차례나 열에서 앞서는 곳
3. 이미 지나간 시간
4. 장차 올 시간


여기서 시간상의 개념에 해당하는 3번과 4번을 보면, '앞'은 전과 후의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방향성을 뜻하는'으로'를 붙이면, '이미 지나간 시간으로(10초 전)' 또는 '장차 올 시간으로 (10초 후)'가 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각 개인은 좀 더 자연스럽게 여긴다. 따라서 '10초 앞으로'라는 음성명령이 Playback Control에서 어떻게 동작할 것인가에 대해 Rew와 FF로 의견이 갈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UX 디자이너로서 '10초 앞으로'라는 사용자 발화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정의해야만 한다. 보통 이처럼 개인의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판단의 정확성을 위해 간단한 UT(User Test)를 진행하게 된다. 이 이야기가 진짜 흥미로워지는 부분은 여기부터다. 이 화두를 꺼냈던 형은 UX팀 전체에 UT를 진행했고, 결과는 놀랍게도 정확히 50대 50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집들이 자리에 있던 지인 8명의 의견도 정확히 4대 4로 갈렸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주변 지인에게 한번 물어봐도 재밌을 것 같다. 쉽게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결과를 그대로 사용자에 대입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어느 쪽으로 정의를 하던 예상과 다른 결과를 제공받는 사용자가 있을 것이고, 그 사용자의 비율이 상당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UX 디자이너에게 참 어려운, 그리고 해결하고 싶은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 공감한 지인들은 여러 해결방안을 내놓았다. 먼저 하나의 정해진 결과를 제시하고 난 뒤, 사용자의 반응을 살펴서 대응 방향을 조정하면 어떠냐는 의견, 그리고 그렇게 제공하는 것이 자칫 UX의 일관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의견, 사용자의 시청 맥락을 이해해서 동작의 적중률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 가이드 문구를 좀 더 정교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 등 발전적인, 그리고 논의할만한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이 수다가 TV UX를 하는 그 형의 기능 정의에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늘 그렇듯 UX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답은 분명히 있다. 어쩌면 UX 디자이너들은 명확한 오답을 피하기 위해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수다가 나는 너무 즐거웠다.



Jay D

UX 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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