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가 힘을 잃고 있다.
조직개편으로 바라본 기업 내 UX의 위상 변화
또다시 조직개편의 시기가 왔다. 여러 번 겪은 일이지만, 이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분위기는 당최 적응이 되질 않는다. 이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를 떠올려 봤다. 그때는 소위 말하는 UX 황금기였다. 모든 제품이 스마트를 외쳤고, 그 스마트의 중심에는 UX가 있었다. 각 기업에서는 자신들의 UX가 뛰어남을 강조했고, 그것을 마케팅에 활용했다. 당연히 UX 관련 인력들이 빠르게 채용됐고, 관련 부서도 많이 생겼다. 나도 그 분위기에 운 좋게 흘러 들어온 것 같다.
그때는 많은 팀에 UX타이틀이 붙었다. 아니 조직책임자들은 발 빠르게 본인의 팀 이름에 UX를 붙이고자 했다. 그렇게 UX디자인팀, UX기획팀, UX시나리오팀, UX플랫폼팀, UX거버넌스팀... 등 다수의 조직들이 생겨났고, 이를 총지휘하는 담당 임원도 생겼다. 뭘 해도 UX이야기만 하면 말발이 생기던 때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유비쿼터스나 스마트 같은 단어가 역사의 유물로 사라지듯 UX도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고, 그 자리를 로봇,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같은 단어가 차지하고 있다. 이번 조직개편도 이를 증명하듯 UX라는 조직들보다 컨버전스, 로봇, 인공 지능, 데이터 등을 품은 조직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 변화는 "UX 잘 만든다고 제품이 잘 팔려? 그냥 적당히 하면 안 되는 거야?"라는 의구심에서 시작된 것 같다. UX 디자이너로서 인정하기 싫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라고도 생각한다. 적당히 하다 골로 가는 수가 있으니까.
아무튼, 조직개편 인력시장에서 UX 디자이너의 위상이 줄어들어 가는 것은 맞아 보인다. 2명이서 하던 UX 디자인을 1명에게 맡기면서, 퀄리티는 그냥 적당히 이슈 안 날 만큼만 하자는 기조도 분명히 있다. 그래도 어쩌겠나 먹고살려면 살길을 찾아야지.
그나마 요즘 잘 먹히는 UX 디자이너는 아래 옵션을 가진 경우 같다.
1. 비즈니스와 테크 전반에 대한 이해가 있어 기획 업무를 병행할 수 있는 경우
2. 개발에 대한 이해가 있어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이 능한 경우, 더 나아가 프로토타이핑을 개발하여 개발자에게 전달 가능한 경우
3. GUI 역량을 갖춰 UX 디자인과 GUI를 병행할 수 있는 경우
혹시 UX 쪽으로 취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위 역량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UX만 잘해서는 이제 먹고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