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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 Nov 01. 2019

공항 사이니지 제어 솔루션 디자인 회고

UX 디자인의 추억 - 1

3천대요?


분명히 3천대라고 했다. 사이니지 상품기획 담당자는 더욱 목소리에 힘을 줬다. 이번에 개발할 사이니지 제어 솔루션은 아랍권 국가 국제공항의 신규 터미널 전체에 들어가는 사이니지를 관리 / 제어하는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며, 그 규모는 사이니지 3천대로 논의되고 있다고 했다. 클라이언트 측에서 솔루션 퀄리티에 관심이 많아 계약 성사의 키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그는 덧붙였다.


미팅 자리에서 내색은 안 했지만, 상기 담당자의 UX 의뢰 내용을 들으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단독 프로젝트 기준으로 사이니지 3천대는 적은 규모가 아니다. 대충 계산해봐도 100억은 훌쩍 넘는 사업 규모로 보였다. 게다가 공항은 규모와 홍보효과 등의 이유로 사이니지 부문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버티컬 중 하나다. "엄청난 보고와 시행착오를 겪을 것 같다..."라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또 UX 디자인 측면에서도 두려움이 앞섰다. 수천 대의 디바이스를 개별 아이템 단위로 관리 / 제어한다는 이야기는 솔루션의 퍼포먼스와 디테일, 사용 효율성, 안정성을 모두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클라이언트가 솔루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니... 잘못하면 거하게 욕을 먹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잘 한번 만들어봐.

일은 나의 우려와 예상보다 커졌다. 이 프로젝트는 B2B 본부장에게 보고/관리되는 이슈로 등록됐고, 나는 솔루션의 대표 UX와 프로토타입을 본부장에게 보고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기획안 보고 자리에서 조사와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해서 잘 한번 만들어보라는 본부장의 당부가 있었다고 상기 담당자는 전했다. 덕분에 해외영업 부서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 현지 SI(System Integrator)와 사전 인터뷰를 진행할 기회를 얻었다.


해외영업 부서의 담당자는 평소와 사뭇 다르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기존에 SI에게 받았던 요구사항과 필드의 목소리들을 정리한 자료를 공유받을 수 있었고, 공항 관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도 간접적으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정보를 기반으로 현지 SI와 솔루션의 방향성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크게 3가지의 지향점을 함께 도출했고, 이를 기반으로 신규 솔루션의 UX와 기능의 골격을 잡을 수 있게 됐다.


신속, 효율, 그리고 안정


여러 의견과 요구사항들을 정리하고 그루핑 해서 솔루션의 3가지 value point를 설정했다.

그것은 '신속, 효율, 안정'이며, 이들의 공통점은 업무를 하며 장시간 솔루션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benefit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3가지 value point는 이후 다른 B2B 솔루션 디자인에도 큰 도움이 됐다.


신속

그들이 원하는 신속함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었다. 첫째는 그들에게 주어진 업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도와서 그들의 야근을 막는 것이다. B2B 분야에서 운영을 담당하는 사람은 동일 프로세스의 업무를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번 사이니지 관제의 경우, 각 디바이스에 동일한 처리 (설치, 튜닝, 화이트 밸런스 조정, 콘텐츠 매니징, 스케쥴링 등)에 대한 반복적 업무수행이 예상됐다. 한 가지 프로세스의 시간을 줄이면, 수천 배의 효과가 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주목한 프로세스는 사이니지의 설치였다. 대규모 사이니지의 설치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각 디바이스의 고유 ID와 설치 위치를 매칭 시켜야 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를 배정해야 한다. 장소에 따라 휘도와 화이트 밸런스를 조절하기도 한다. 비디오 월의 경우는 여기에 싱크 과정까지 더해진다. 이 과정을 많은 사람이 나눠 작업하다 보니 정보의 일관성은 떨어졌고, 작업에 오류는 빈번했다. 그리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time-loss는 상당했다. 설치자도, 관리자도 야근을 자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 업무와 관리를 분리했다. 총괄 관리자가 각 디바이스 코드에 ID, 설치 위치, 콘텐츠, 디스플레이 조정 값 들을 미리 세팅해 두고, 설치자는 디바이스 코드만 입력하도록 했다.


두 번째는 이슈 상황 발생 시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 대응 소요 시간을 줄여 그들이 혼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원격 제어와 모바일 알림 기능으로 해결하려 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이니지 제어 기능을 원격에서 가능하도록 설계했고, 모니터링 항목 별로 임계치를 조절하여 이슈가 발생하기 전에 담당자가 미리 알림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재부팅하면 해결될 문제를 위해 담당자가 집에서 공항으로 뛰어올 일이 줄어들 것 같았다.


효율

앞서 설명한 것처럼 B2B 분야는 반복적인 업무 프로세스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낮시간 동안에는 사이니지의 휘도를 올려 시인성을 높이고, 밤 시간 동안에는 휘도를 낮추는 등의 일을 매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뷰를 통해, 관제 담당자가 매일 이런 일을 수동으로 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 반복적인 일을 자동으로 해결해 주고 싶었다. day mode와 night mode 같은 제어 템플릿을 만들 수 있게 했고, 이를 동작시키는 방식을 시간과 이벤트로 나눴다. 앞서 언급했던 휘도의 경우 일출, 일몰 시간 데이터를 외부 API를 통해 불러와서 동작하도록 설계했다.


이 아이디어는 공항의 스케줄과 연동하는 아이디어로 확장했다. 예를 들어 한국발 비행기의 도착 터미널에 한국향 콘텐츠를 재생하는 것이다. '맞춤형 광고의 주목 효과가 더 높을 것이다, 그것이 타국의 공항이라면 광고지만 반가운, 극적인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이 아이디어는 광고 마케팅 부서의 관심을 받아 별도 프로젝트로도 추가 기획되었다.


안정

관제 솔루션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 한 가지만 말해보라고 하면 십중팔구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저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대상 디바이스의 규모가 커질수록 크고 작은 이슈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를 예방과 해결로 나누어 접근했다. 이슈를 최대한 예방하고, 발생한 이슈에 대해서는 빠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제공하고 싶었다.


기존의 이상 감지(warning notice)는 임계값(threshold value)을 정해두고 이 값을 넘어섰을 때 알림을 주는 형태였다. 예를 들어 CPU 점유율이 50% 이상이 되면 알림을 주는 등의 방식이다. 이 방식의 단점은 이미 물이 넘쳐흐르고 나서야 사태를 알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리 알고 싶은 마음에 임계값을 낮추면 어마어마한 alert notification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슈가 발생하기 전에는 일종의 징조가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값의 변화가 루틴 한 사이클의 범위와 크게 달라지는 시점을 잡을 수 있다면, 이슈를 미리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를 위해 모니터링 값을 데일리로 서버에 저장하면서 표본을 만들고, 신규로 발생하는 값을 대조해 허용 범위를 넘어선 경우 알람을 주는 방식을 추가했다.


위와 같은 노력에도 이슈는 발생할 것이다. 랜선이 뽑힐 수도 있고, 콘텐츠 플레이어가 다운될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이유에 따라 재생되기로 약속된 콘텐츠 대신 검은 화면만 덩그러니 보이거나 no signal 같은 문구가 화면에 떠다닐 수 있다. 옥외 건물 옥상에 설치된 대형 사이니지에 블루 스크린이 떠 있는 것을 본 경험이 있는가? 이는 해당 사이니지 관리자에게 최악의 경우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생되는 콘텐츠의 스크린 숏을 일정 주기로 캡처해 로컬 스토리지에 저장해두는 아이디어를 냈다. 디바이스 단에서 이슈 상태가 감지되는 경우, 해당 이미지를 사이니지에 노출하는 방식이다. 적어도 블루 스크린보다는 식은땀이 덜 날 것 같았다.


결론은...


회사는 이 계약을 따냈고, 솔루션은 사이니지와 함께 납품됐다. 개발 진행 과정에서 크고 작은... 아니 생각보다 훨씬 큰 논쟁과 설득의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 솔루션은 개발됐고 클라이언트에게 잘 전달됐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규모가 커서, 계약이 잘 성사돼서, 보고가 잘 되고 분위기가 좋게 끝나서가 아니다. 이 솔루션을 쓰는... 관제실에 앉아 있을 그 누군가의 퇴근 시간을 앞당겨주고, 반복적인 일을 대신해주고, 상사로 부터 혼날 일을 약간이나마 줄여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이런 게 업계 포상인가 싶다.



Jay D

UX 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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