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 Grab 등 프로덕트 디자이너 면접 회고
올 상반기부터 새로운 커리어 마일스톤을 준비하고자 포트폴리오 제작을 시작했다. 조만간 10년차가 되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어왔던 '글로벌한 디자이너'가 되고자, 모든 내용을 영문으로 제작했다. 가슴으로만 FAANG 디자이너가 될거야! 하면서 이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유학을 가는 게 순서지만, 내 딸이 갓 태어난 상태고 아내도 나도 육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유학은 조금 미루고, 대한민국에서 싱가포르, 일본, 대한민국의 영어 쓰는 기업을 타깃으로 잡아 ‘테스트 지원’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2022년 상반기는 드라마틱했다. 바로 Meta(Facebook), Grab, Unity 등 글로벌 기업의 Product Designer로써 면접을 본 것. 그리고 모두 최종 단계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나름의 성과를 얻은 데 만족하고 있다. 유학 경험이 없는 디자이너로써 좀 무모하게 도전했기 때문이다. 아직 보완할 점이 매우 많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고자 한다. 언젠가 분명 성공하리라 믿고 있다.
이 글에서는 레쥬메 작성, HR스크리닝 전화, HR 면접, 1차 디자인 면접, 2차 디자인 면접, 하이어링 매니저와의 최종 면접 등... 많은 과정을 거치며 체득한 내용을 중점으로 회고/공유하고자 한다. 재도전을 위해 내가 보완할 점을 적는 일종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레쥬메 및 포트폴리오, 면접 how to 지식이 필요하신 분들은 Kayla 님의 탈잉 강의를 추천합니다. https://taling.me/vod/view/40248)
서류 및 포트폴리오
사실 서류 합격률은 좋았다. 지원한 기업은 총 10군데 정도였는데, 대략 7군데 정도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주었다. (결과 연락을 안 준 기업도 포함) 포트폴리오에 공을 들인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웹사이트는 미완성이었다. 제대로 완성하여 보여준 프로젝트는 딱 1개였다. 사실 서류를 통과하면서도 '이게 된다고?..' 하면서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꼭 글로벌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유학을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직접 체감했다. (하지만 영어는 정말 잘해야 한다.)
웬만한 글로벌 기업은 디자인 전문 리크루터가 있다. 이들은 '초기 인상'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1명의 지원자 탐색에 10분 이상을 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최대한 웹사이트에 첫 번째 포트폴리오를 잘 볼 수 있도록 강조하여 전진배치하였고, 레쥬메는 최대한 '꾸미지 않고 깔끔한 형태'를 중시하여 제작하였다. 포트폴리오 1개의 비주얼과 충실한 문제 해결 과정을 보여주었다. (제작 및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에 작성 예정.)
HR스크리닝 및 면접
HR스크리닝은 모두 리크루터와 영어로 진행했다. 영어 면접의 떨림도 있었지만, 이는 링글 등의 서비스를 통해 연습으로 커버했다. 싱가포르 Meta 리쿠르터와의 카카오톡 통화(!!)를 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세심한 리쿠르터들은 현지 플랫폼으로 통화를 건다.) 중요한 것은 지원동기를 각 회사의 맞춤형으로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모든 회사가 하나 같이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니?'를 질문했다.
Meta에 지원했을 때는, 지원동기를 메타 채용 웹사이트의 테크 블로그를 읽고 어느 정도 생각을 다듬었었다. 나의 과거 이러한 경험과 현 메타의 이러이러한 비즈니스 방향이 매칭이 되었었다는 형태로 말이다. Tell me yourself와 같은 질문도 무조건 포함이니 잊지 말자. (많이 고민한 질문이지만 사실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었다. 지원동기가 가장 중요했었다.)
이 글의 핵심 주제이다. 대한민국 환경에서만 디자인을 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잘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리서치, 설계, 비주얼이든 뭐던 간에 말이다. UX설계, UI디자인(GUI 및 비주얼), 인터랙션 파트가 나뉘어진 상태로 수십 년째 직무가 이어진 대한민국의 디자인 업계는 최근 '프로덕트 디자이너(Product Designer)'가 등장하며 통합되는 추세인 것 같다. (UX Researcher는 완전히 별도 직무)
나는 프로덕트 디자인 직군으로만 지원을 했다. 실제로 균형감 있게 하드 스킬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으며 리서치, 설계, 비주얼 역량 모두 갖춘 디자이너가 되고자 노력했다. 이것을 가장 잘 증명하는 것은 역시 포트폴리오였다.
포트폴리오 면접은 합격 당락을 결정한다. 소개팅으로 비유하자면 포트폴리오 비주얼은 외모이며, 포트폴리오의 내용은 성격과 같다. 비주얼은 보기 전에도 잘 꾸며져 있다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실제 내용은 곧 성격을 보는 것이라 면접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적합한 사람인지를 알아가야 한다. 포트폴리오 내용은 사람을 만나서 설명하기 전까지 아무리 내용을 들여다봐도 알기 어렵다.
이번 상반기 Meta, Grab 등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을 만나며, 그들이 포트폴리오 면접에서 내게 질문한 대표 카테고리는 다음과 같았다.
"당신이 낸 디자인 임팩트를 보여주세요."
단순히 직무 통합을 넘어서 PO(Product Owner)의 영역까지 생각하며 비즈니스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를 글로벌 시장이 원한다는 사실은, 이번 상반기 면접에서 얻은 가장 큰 내면적 성과였다. 이 부분은 특히 Exponent라는 유튜브 채널의 구글 UX디자이너 인터뷰에서도 잘 나와있다.
디자이너는 사용성, 비주얼뿐만 아니라 이 서비스가 제공할 사용자의 반응,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구글, 메타는 특히 Inclusive Design(포용적인 디자인)을 중시하고 있으며 장애인 및 소외된 분야를 들여다보는 것이 새로운 회사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내가 면접을 본 글로벌 기업(유니티를 제외하고)들은 정량적으로 임팩트를 증명하는 디자이너를 원하는 듯했다. 공통 질문은 다음과 같다.
"What were the success metrics of this product? Please walk me through the example."
"이 프로덕트의 성공 지표는 무엇이었나요? 사례를 들어 설명해주세요."
이들은 지표 설정, 관리, 추적, 개선 등 프로덕 사이클에서 제품을 개선한 사례와 과정을 듣기 원했다. 사실 나는 숫자로 증명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면접을 보기 전까지 비주얼, 사용성 개선을 잘하는 디자이너가 좋은 디자이너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던 탓에, 구체적 데이터를 준비하지 않았다. 영어 실력과 더불어 이번 면접의 가장 큰 실패 원인 중 하나였다. 문제 해결 과정을 단순히 As-is > To-be 프레임에 맞춰 예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디자인 및 설계의 결과물 위주로 설명했다.
문제 해결 과정을 설명할 때, 이들 기업들은 추상적인 결과 및 프로세스를 듣고 싶지 않아 했다. 실무는 일반적 프로세스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안다. 대부분 치열한 토론과 야근, 혼란, 피곤함 속에서 프로덕트는 런칭한다. 나도 처음은 '깔끔해 보이기만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치우쳤다. 프로세스가 잘 정리된 것처럼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들이 정작 듣고 싶어 했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프로젝트 초반부의 프로덕트의 문제 (Problem and Mission)
2. 성공 지표, 성공 가설은 무엇이었는가 (Success Metrics, Assumption)
3. 사용자의 정량적, 정성적 페인포인트는 무엇이었는가 (Painpoint)
4. a/b/c 테스트안과 각 안들의 근거
5. 해당 안을 선택한 이유와 데이터
6. 성공 결과(얼마나 지표가 상승했는지 등)와 배운 점 (Takeaway)
위 내용 중 1가지라도 포함하지 않으면 면접이 잘 흘러가지 않았다. 특히 2번 항목인 Success Metrics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았었다'라는 나의 답변을 듣자마자 Meta의 한 디자이너는 안색이 변하며 '그러면 면접은 여기까지, 제 질문은 끝났다'라는 피드백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프로젝트는 성공 지표가 실제로 있었고,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트래킹하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었다.
또한 문제 해결 과정을 '개발팀, 기획팀과 토론을 통해 결정했습니다.'라고만 전달한 부분도 패착이었다. Grab은 매 인터뷰마다 놀랍게도 면접관들의 피드백을 종합하여 전달해준다. 그중 내가 받은 '단점 피드백'으로는 '해당 지원자는 본인의 직관을 가지기 위해 리서치/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다른 이해관계자의 가이드를 더욱 따르는 것 같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일하는 환경은 전형적인 대한민국 회사의 문화일 것이다. 매 스펙을 데이터/근거로 일하기보다 PM과 개발자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일하기 때문에, 회의가 매우 많은 것이 사실이다. 면접에서 많은 질문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요구했음에도, 나는 의사결정 과정을 너무나도 솔직히 '개발적 제약사항, 시간적 문제, 우선순위 세션 회의'등을 통해 결정했다고 답변했었다.
우리나라에서 PM/PO가 아닌 디자이너가 '제가 조사한 데이터는 ~하고, ~~였습니다.'라고 강력히 주장하여 일하는 환경을 만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내가 제작한 프로덕트의 구체적 개선 사례와 근거는 존재했다. 내 디자인이 분명 정량적 임팩트를 냈겠지만, 이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의 잘못도 있다. (이후 면접에서는 분명한 데이터와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모든 회사가 위와 같은 정량적 지표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디자인 문제가 정량적 측정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디자인 리더/매니저들의 커리어 과정과 각 회사의 비즈니스적 상황에 따라 이를 중시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을 것이다. '역시 디자이너는 비주얼이지' 하면서 디자인 팀의 존재 이유를 어필하는 곳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특히 국내 스타트업이나 이제 갓 중견에 들어선 기업들은 정량적 지표와 개선을 더욱 깊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파악된다. (쿠팡, 토스, 쏘카 등 블로그를 참고하면 많은 사례가 있다.) 분명한 것은 지표적 관점 및 개선사례를 보유한다고 하여 손해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5년 전부터 시작된 프로토타이핑, 스케치, 피그마 등의 툴링 트렌드가 끝나가고, 이제 시장에서 '몸값 높은 디자이너'는 비즈니스에 기여하는 디자이너임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어떻게 효과적으로 '내가 데이터 드리븐 디자이너요'라고 주장하고, 증명할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Grab의 탈락 메일을 받고 실망하던 중 재밌는 일이 하나 있었다. Grab에서 나와 면접을 본 Yang이라는 디자이너가 링크드인 인메일을 보낸 것이다. 요지는 '네 포트폴리오 작업은 매우 인상 깊었다. 네가 떨어진 게 정말 놀랍고 아쉬운 일이다. (아마 채용 결정자는 아니었던 듯) 조만간 내가 Meta에 입사하는데, 너에게 추천서를 써주겠다'라고 말이다. 이를 듣자 내가 '뒤떨어지는 디자이너'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사실 Meta는 추천서를 받더라도, 다시 지원을 한다면 더욱 내 자신을 다듬고 지원하고자 한다. 단점을 보완하고, 재도전한다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가능성 있는 디자이너임을 믿고 살아갈 것이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실무에서 성공 지표를 설정하고 실제로 프로덕트를 더 개선해보기
포트폴리오를 더욱 잘 다듬기
문제 해결 과정을 더 논리적으로, 정량적으로 증명하기
영어를 워킹 레벨로 더 끌어올리기
이 글이 부디 나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