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력과 여유 ③

오래가는 UXer의 조용한 설계

by UX민수 ㅡ 변민수

끌려가는 것과 나아가는 것


소진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서서히 온다. 그리고 대부분의 UXer는 그것이 오는 동안 눈치채지 못한다. 바쁘다는 감각이 살아있다는 감각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움직이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만들고 있으니까 성장하고 있다고.


그러나 어느 순간 멈춰서 보면, 달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소진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방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끌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설계한다는 것의 의미


UXer는 모름지기 설계하는 사람이다. 사용자의 경험을 설계하고, 서비스의 흐름을 설계하고, 인터페이스의 언어를 설계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기를 설계하는 일에는 무심한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사용자에게는 최적의 흐름을 만들어주면서, 자신에게는 아무 흐름도 설계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순이며, 어떤 의미에서 직무유기다.


기를 설계한다는 것은 거창한 자기 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단 두 가지 질문을 습관적으로 던지는 것이다.


지금 나는 여력을 남기고 있는가.
지금 나는 여유를 살리고 있는가.

이 두 질문은 처음에는 낯설다. 전부를 쏟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환경에서, 남겨두는 것을 의식한다는 것은 일종의 저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질문이 일상적인 감각으로 자리 잡을 때, 기는 비로소 설계되기 시작한다. 소진의 방향이 아니라 보존의 방향으로.



여유를 산다는 것


여유를 설계한다는 것은 달력을 비우는 것이 아니다. 비워진 시간 안에서 기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UXer에게 여유는 관찰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목적 없이 걷다가 어떤 가게의 입구 동선이 눈에 들어오는 것, 카페에서 주문 흐름을 무심코 따라가다가 작은 불편함을 발견하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앱을 쓰다가 자신이 어디서 멈추는지를 느끼는 것.


이것은 의도된 리서치가 아니다. 기가 살아있을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각이다. 그 감각이 UXer의 본질적인 도구다.


그러니 여유를 설계한다는 것은, 그 감각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슬랙을 닫고, 피그마를 닫고, 지금 이 순간을 업무의 연장으로 놔두지 않는 것. 경험을 경험으로 두는 것. 그것이 여유다. 그리고 그 여유 안에서 가장 좋은 아이디어들이 온다. 억지로 꺼낸 것이 아니라, 기가 살아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들. 잔도 비워야 또 따를 수 있다.



오래가는 UXer의 감각


오래가는 UXer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기를 쓰는 방식을 아는 사람이다. 여력을 남길 줄 알고, 여유를 살릴 줄 안다. 지금 전부를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쉬는 것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감각이 쌓여서 커리어가 되고, 그 커리어가 쌓여서 관점이 된다.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설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UXer가 사용자에게 주려는 것—흐름이 있는 경험, 소진되지 않는 여정, 다음을 향한 여백. 그것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 그것이 기를 설계하는 UXer가 가진 가장 조용하고 가장 단단한 태도다.


여력은 다음 수를 위해 남겨두는 힘이다. 여유는 지금을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이 두 힘을 동시에 의식하며 일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이 시대의 UXer에게 필요한 가장 오래된 기술이다. 또 어쩌면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건네고 타이르는 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