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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 중요한 이유

디자인 프로세스 vs. 프로세스 디자인

by UX민수 ㅡ 변민수

우리가 일하는 세계에서 ‘끝’은 피할 수 없는 이벤트다. 마감이 있어야 일이 닫히고, 일정이 있어야 팀이 움직이며, 납품일이 있어야 책임이 성립한다. 끝은 언제나 현실의 리듬을 잡아주는 장치다. 그러나 이 끝이 일을 완전히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d/D)이든 기획이든, 일의 본질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 강에 가깝다. 우리는 끝을 향해 달리지만, 일은 끝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해할 때, 과정의 가치를 비로소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현실에서 중요한 ‘끝’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끝이 주는 압박과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마감은 단순히 정해진 날짜가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의 속도를 조율하고 팀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모아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때론 마감이 없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더 불안해한다. 기준이 없으니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모호해지고, 스스로 정한 완성도는 늘 흔들리기 때문이다. 출품 일정이나 납품일 역시 마찬가지다. 결과물을 언제 전달하는지가 신뢰를 만들고, 일정 준수 여부가 실력을 증명한다.


그래서 끝은 현실의 일에서 절대로 가볍게 볼 수 없다. 우리는 끝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고, 팀의 역할을 나누고, 퍼포먼스를 최적화한다. 때로는 그 끝 때문에 야근을 하고, 마감 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데드라인 때문에 감정적 후폭풍을 겪기도 한다. 끝은 현실을 구조 짓는 프레임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끝은 어디까지나 ‘일의 끝’일 뿐이라는 점이다. 사람은 그 지점을 통과하면서도 계속 생각하고, 그 일의 감각은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지며, 한 번의 끝이 전체를 정의하지 않는다. 현실에선 끝이 중요하지만, 삶과 경험에서는 과정의 연속성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한다. 끝이 일을 닫는다면, 과정은 사람을 연다.



끝은 스냅샷, 과정은 동영상


완성된 결과물은 마치 잘 찍은 스냅샷처럼 보인다. 조명 아래에서 가장 깔끔한 부분만 보여주고, 최종 정리된 형태로만 존재하며, 하나의 기준점처럼 남아 누구나 비교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이 한 장의 스냅샷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복잡한 흐름과 감정의 진폭이 있었는지는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과정 속에는 늘 예측 불가능한 방향 전환이 있다. 어느 날에는 아이디어가 날카롭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다음 날에는 같은 아이디어가 허술하게만 보인다. 같은 문장을 다시 읽고 또 지우는 반복 속에서 사고가 정제되고, 사용자 리서치에서 들었던 한 마디가 기획안을 전부 갈아엎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협업 과정에서는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시간을 들이다 보면 생각보다 더 깊은 통찰이 생겨 다음 단계의 판단이 더 명확해지는 순간도 있다.


이런 모든 장면은 결과물에는 담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과정 속에서 더 예리한 감각을 갖게 되고, 시행착오 속에서 자기만의 기준을 발견하며, 흐름을 지나며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스냅샷은 외부에 남는 기록이고, 과정은 내부에 쌓이는 역량이다. 스냅샷은 한순간이지만, 과정은 시간 전체를 관통하며 사람이 어떤 ‘결’을 가진 디자이너(d/D) 또는 기획자로 성장하게 만든다.


단 한 장의 결과물보다 그 결과물을 가능하게 한 수십 장의 실패와 수정이 사실은 더 큰 가치를 담고 있다. 과정은 드러나지 않지만, 과정이야말로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만든다.



미래를 만드는 것은 과정


현실에서 우리는 결과로 평가받는다. 이력서에는 결과가 기록되고, UX 포트폴리오에는 완성된 화면만 남으며, 회의실에서는 최종안으로 승부가 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보면 그 결과만으로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같은 결과를 만들었더라도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떤 문제를 어떻게 넘어섰는지, 어떤 관점이 나를 바꾸었는지가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진다.


특히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일수록 과정의 힘을 더욱 깊게 이해한다. 한 프로젝트가 완성된 직후에는 성취감보다 허무함이 먼저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프로젝트를 하며 늘어난 판단 능력, 넓어진 관점, 인간적인 성숙이 더 선명해진다. 끝은 한 번의 이벤트로 지나가지만, 과정은 경험의 매듭을 만들어 다음 흐름의 기반이 된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과정에서 배운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음 프로젝트에서 더 빠르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게 하고, 더 나은 시도를 가능하게 하며, 더 단단한 기준을 만들어낸다. 현실은 끝을 요구하지만, 그 끝을 뛰어넘는 미래를 만들어주는 것은 언제나 과정을 통해 얻은 감각과 근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끝을 목표로 달리면서도, 끝에 닿기 직전까지의 그 모든 흐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결과는 잠시의 기록이지만, 과정은 다음 결과를 더 나아지게 하는 힘이 된다.




끝은 현실의 일에 있어 필수적인 이벤트이며, 일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순간이다. 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일의 끝’일 뿐이지, ‘흐름의 끝’은 아니다. 우리는 끝을 통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흐름을 만들기 위해 다시 나아간다. 일을 완성시키는 것은 마감이지만, 일을 깊게 만드는 것은 과정이다.


결과는 한 장의 흔적을 남기고 지나가지만, 흐름 속에서 경험한 모든 순간들은 다음 결과를 더 나아지게 할 힘이 된다. 그래서 끝을 향해 달리면서도, 그 끝을 향해 흘러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더 크게 변화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은 멈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언제나 계속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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