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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본질

영리한 자의 덫, '복세편살'이라는 저주

by UX민수 ㅡ 변민수


이 세상의 복잡성과 '복세편살'이란 모순


세상은 본질적으로 복잡하다. 하루 종일 정리를 해도 금세 다시 어지러워지는 일상만 보더라도, 엔트로피, 즉 무질서의 정도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또 증가한다. 이러한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사람들은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라고 하더라. 얼핏 들으면 이상적이고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실은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나에게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대로, 내가 불편을 겪고 있다면 그 이유는 아무도 그 불편을 대신해 내게 편의를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 복잡한 세상에서 '복세편살'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불편은 감수하거나 없애기 위한 노력을 '누군가'는 해줘야만 한다, 필수적이다. 그렇다 치고, 그러고 난 나머지 시간 동안 어떻게 편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 언뜻 생각해 보더라도 참 쉽지 않은 문제다. 말했듯 정리만 해도 끝이 없는데 타인의 편의를 위한 삶의 끝이란 게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내가 편하게 느낀다고 해서 모두가 편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게다가 나의 편함이 누군가의 불편과 충돌할 경우엔 갈등마저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사는 경우,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복잡도에 대한 개인의 소화력과 견해 차이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과 이해의 차이는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상식적, 합의적 요소다.



단순함의 이면과 소비자의 대가


디자인 분야에서 늘 이야기하는 '단순함'이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예컨대 사람들은 복잡한 것을 싫어하지만, 모든 것을 단순하게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있다고? 불가능하다! 단순함은 노력이 덜 드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는 정보량이 적거나 들이는 힘이 적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 역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노력과 결과의 효과일 수 있다. 혜택이란 것이다. 예를 들어, 직접 밥을 짓는 것보다 햇반을 먹는 것이 더 편하고 단순하다. 누군가 햇반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직접 농사를 짓기보다는 쌀을 사서 밥을 해 먹는 것도 훨씬 편하다.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현대 사회는 이렇듯 소비자로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많아졌다. 하지만 이 편의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비용을 꼭 지불해야만 한다. 편하게 사는 데는 반드시 대가가 있으며, 이는 때로는 우리가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은밀하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비즈니스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 대가가 지나치게 높게 느껴져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우리가 편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혹여, 더 많은 자원(=돈)을 통해 많은 사람을 직접 부릴 수 있는 여건이 되더라도, 그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새로운 대가란 여전히 필요하다. 더 큰 대가를 위한 또 다른 대가도 있으니 끝이 없다.



복잡한 세상을 사는 삶의 기술


결국, 편하고 싶다는 욕구는 사람마다 원하는 수준이 제각기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를 잘 이해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상식적, 합의적 요소라 한 이유다. 그리고 이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가 놓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편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끼리 모종의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더 편하고자, 상대방이 지닌 복잡함을 유지하게 만들거나 더 고착화시키는 방편들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쉽게 진입하면 나의 편의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여겨지면, 그 진입 장벽을 더 높이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비즈니스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전략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복세편살'은 이상향에 가까울 순 있겠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내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서 편안함만을 추구하기란 이렇기 때문에 정말 쉽지 않다. 복잡한 세상에서는 본질적으로 복잡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복잡한 세상을 인정하고 복잡성 위에서 잘 살아가는 노하우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러한 노하우는 당연히 또 대가를 요한다. 종종 스스로 불편함을 해결하여 사업에 성공한 사례들이 그렇다. 이러한 성공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대가를 지불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대가를 얻은 것에 가깝기도 하다. 대가란 지불만 하는 대상이 아닌, 복잡한 세상에서는 그 복잡성에 맞서 싸운 이에게 주는 일종의 포상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니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어느 순간 단순함이란 결과를 잠시 얻을 뿐이다. 이러한 과정은 끈기를 필요로 하며, 그 정산은 대개 매우 늦게 이루어진다. 복세편살? 환상이다!


결국, 복잡한 세상에서는 단순히 편함을 추구하기보다, 그 안에서 나의 위치를 명확히 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불편함과 감수해야 할 대가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복잡한 세상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편안함을 찾고,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절실하지 편한 생각은 불편을 가까이 끌어들일 뿐이다.



UX, 단순함, 직업 이들 간의 연결고리


어쩌면 모든 직업의 존재 가치란, 이러한 세상의 단순함에 기여하는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UX 분야는 이를 전면에 내세운 업무로 볼 수 있으며, 포지션이 지닌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단순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과 직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UXer는 사용자가 복잡한 시스템을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더 편안하고 효율적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다는 것의 실체는 그들이 겪을 복잡성을 엔지니어 단계로 열심히 끌어다 모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이 백엔드건 프론트엔드건 말이다.


따라서,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편안함을 넘어,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의 일, 직업이라는 틀 안에서도 이러한 단순함의 추구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모든 업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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