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d)도 문제해결이다
안녕하세요 멘토님! 저는 현재 스타트업에서 UXer로 일하고 있는 2년 차 직장인입니다. UX가 사용자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처음엔 정말 매력적이었고, 실제로 다양한 리서치나 테스트도 경험하며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D) 사고를 익히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기획자’의 역할보다는, 화면을 그리고 흐름을 구성하고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좀 더 시각 중심의 디자인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리서치 기반의 UX 설계가 대부분이고, UI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어떤 역량을 더 키워야 할지 방향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앞으로도 디자이너(d)로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은데, ‘문제 해결자’보다 ‘디자인(d)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을 땐 어떤 식으로 커리어 방향을 조정해 가야 할까요? 혹시 멘토님도 비슷한 고민을 하셨던 적이 있으신가요? 멘토님의 경험이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
➥ 스타트업에서 UXer로 일하고 계시며, 리서치 기반의 문제 해결보다 화면을 그리고 흐름을 구성하며,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더 흥미를 느끼고 계시군요. 스스로도 ‘문제 해결자’보다는 ‘디자인(d) 전문가’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다는 확신이 생겨가지만, 지금까지의 경력과 현재의 역할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내가 어떤 역량을 더 키워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크신 상황으로 이해했습니다.
질문 속에서 암시하고 있는 중요한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지닌 다층적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d)은 미적, 시각적 완성도에 초점을 둔 작업을 뜻하고, 디자인(D)은 문제 해결 중심의 계획적 사고를 의미하는 보다 상위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 둘은 분리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뿌리를 두고 있으며, 결국 디자인(d)도 일종의 문제 해결이라는 점에서 디자인(D)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 미적으로 부족하다는 인식’ 자체가 하나의 문제이며, 이 문제에 미적 해법을 제시하는 행위 역시 디자인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을 동일하게 여기는 것은 위험한 일반화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무에서 디자인이란 단어 하나가 어떤 문맥에서는 전략을 의미하고, 어떤 문맥에서는 비주얼을 의미하며, 또 어떤 경우에는 도구나 산출물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처럼 문맥적 의미 전달의 정확성을 위해 디자인(d)과 디자인(D)을 구분해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디자인(d) 역시 ‘문제 해결’의 일환이지만, 그 문제의 성격이 ‘심미성 부족’이라는 데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문제 해결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멘티님이 현재 느끼고 있는 방향성은 분명합니다. 좀 더 시각 중심의 디자인(d)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커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본인의 커리어를 재정비하고 싶은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저는 리서치 중심의 UX 역할에서 벗어나 점차 시각적 완성도와 구조적 설계 능력을 중심으로 커리어를 전환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추진해 보길 권합니다. 이게 마치 잘못 혹은 부족한 방향인가 오인해서는 곤란합니다. 엄연한 전문성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실무에서 현재 맡고 계신 프로젝트 중 화면 설계, UI 가이드, 디자인 시스템 구축 등의 업무에 비중을 더 실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직 내에서 ‘디자인(d) 감각이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 위해 작은 디테일에도 꾸준히 신경 쓰고, 이를 명확한 기준과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디자인 시스템은 단순히 비주얼 요소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반복성과 확장성을 고려해 구조화하는 작업이므로 '시각적 문제 해결자(=디자이너(d))'로서의 전문성을 드러내기 좋은 분야이기도 합니다.
디자인(d) 영역에서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선 비주얼 완성도와 사용자 감성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갖춰야 합니다. Figma 등 주요 툴에 대한 숙련도는 기본이며, 타이포그래피, 컬러 시스템, 아이콘 설계 등 UI의 핵심 구성 요소에 대해 명확한 철학과 기준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디자인(d) 리뷰를 주도하거나, 디자인(d) QA 과정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맡아보는 경험도 도움이 됩니다. 이런 과정은 디자인(d) 언어를 조직 내에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사용하는 훈련으로 이어지며, 이는 단순한 ‘감각 있는 디자이너’가 아닌 ‘논리로 말하는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d)’을 ‘기술적인 완성도’로만 보지 않고, ‘경험적으로 가장 적절한 표현’으로 확장해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버튼의 색상과 형태를 정할 때 단순히 예뻐 보이도록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맥락에서 가장 효율적인 정보 전달 구조가 무엇인지, 사용자 행동을 어떻게 유도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d)의 고도화된 형태입니다. 이렇듯 디자인(d)도 충분히 깊이 있는 전문 영역이며, UX의 맥락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 해결 과정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스타트업의 장점은 다양한 역할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지만, 때로는 본인이 원하는 역할에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외부 프로젝트나 프리랜스 형태로 UI 중심의 작업 경험을 보완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혹은 UI 포지션이 좀 더 명확하게 분리된 조직으로 이직을 고려해 보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UI를 중심으로 한 UXer로 커리어를 설정하고, 점차 브랜드 디자인이나 마이크로 인터랙션 등의 고도화된 시각적 작업으로 확장하는 경로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전환이 한 번에 이뤄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신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꾸준히 그쪽으로 경험을 쌓아간다면, 의도한 대로 커리어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겪었던 경험 중에도, 리서치나 전략에 몰두하다가도 어느 순간 화면 하나를 다듬는 일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 느꼈던 것은 ‘문제 해결’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도 내가 진짜 몰입할 수 있는 지점은 따로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디자인(d/D)이란 결국 사람을 위한 문제 해결입니다. 다만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고 싶은가에 따라 디자인(d)이냐 디자인(D)이냐 방향이 달라질 뿐입니다.
멘티님이 말한 ‘디자인(d) 전문가’란 결국 미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최적의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매우 정교하고, 경험적으로 검증된 방식으로 말이죠. 디자인(d)은 디자인(D)의 하위개념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만의 문제 해결 영역을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축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고민은 단지 진로의 전환이 아니라, 깊이 있는 전문성으로의 진입일 뿐입니다.
더 구체적인 실무 상황이나 포트폴리오에 대해 나누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다시 질문 주세요. 그 방향, 틀리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 길을 더 세밀하게 다듬고 나만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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