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션이 명확하지 않으면, 아무 팀에도 낄 수 없다
어떤 게임이든 시작은 같다. 캐릭터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먼저 캐릭터부터 선택한다. 전사가 될지, 마법사가 될지, 힐러가 될지.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이후의 플레이 스타일, 장비, 스킬트리가 모두 달라진다. 취업도 다르지 않다. UX 취업이라는 판 안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라는 캐릭터의 포지션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지원자가 이 단계를 건너뛴다. 간과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저 UX라는 단어만 붙이면, 뭐든 관련성이 생길 것 같고, 모든 면에서 다 잘 해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휩싸인다. 그러다 보니 포트폴리오도, 자소서도, 면접 답변도 아이러니하게 초점이 흐릿해진다. 그러다 보면 방향성도 상실한다. 자신이 어떤 클래스인지 모른 채 게임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떤 무기로, 어떤 방식으로 싸워야 할지 모른 채 마냥 흔들려버린다.
플레이어를 모르는데 전략이란 있을 수 없다. 포지션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떤 팀에도 낄 수 없다.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
포지션을 설정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어떤 걸 잘할까?" 하지만 이 질문은 방향이 틀렸다. 포지션은 ‘잘하는 것’으로 정하는 게 아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왔는가’로 정하는 것이다. 잘하는 것엔 착시가 끼어들 여지가 있다. 내 착각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어떤 의례 그러함은 조작이 있을 수 없는 순수한 영역이다. 이 말이 조금 어려울 수 있겠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사용자가 처음 접할 때 느끼는 ‘불편함’을 누구보다 빨리 감지한다. 어떤 사람은 시스템 안에 숨은 정보 구조의 비효율성에 민감하다. 또 어떤 사람은 감성적 경험의 결을 맞추는 데 탁월한 감각을 가진다. 그 모든 것은 실력이라기보다, 어떤 문제를 자연스럽게 중요하게 여겼는가라는 일종의 본능에 가깝다.
UX 포지션도 마찬가지다. 기획형 UX, 리서치형 UX, 퍼포먼스형 UX, BX 마케터, UI 비주얼 디자이너, 시스템 아키텍처 등 결국 자신이 ‘어떤 문제를 먼저 보고, 더 깊게 고민하게 되는가’로 정의된다. 그러니 스스로에 묻자. “나는 어떤 문제를, 다른 사람보다 더 자주, 더 진지하게 들여다봤는가?”
⸻
포지션을 선택할 때 흔히 착각하는 게 있다. “기획형은 스펙이 좋아야 해.” “퍼포먼스형은 비주얼 퀄리티가 높아야 해.” 물론 각 포지션마다 기대하는 결과물의 성격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포지션의 본질은 그런 스펙이나 능력치가 아니다. ‘플레이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기획형 플레이어는 문제를 ‘정의’하는 데 몰두해야 한다. 퍼포먼스형 플레이어는 문제를 ‘표현’하는 데 몰입한다. 리서치형 플레이어는 문제를 ‘탐색’하는 데 깊이 빠진다. 시스템 UX형 플레이어는 문제를 ‘구조화’하는 데 성취감을 느낀다.
같은 프로젝트라면 성과와 결과는 어떻게 보면 공유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구분은 성과나 결과가 아니라, 플레이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방식은 억지로 바꿀 수도 없다. 억지로 억제하면 흐름이 끊기고, 자신감이 무너진다. 취업은 장기전이다. 당신을 가장 자연스럽게 작동하게 만드는 플레이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
포지션을 고민할 때 가장 많은 함정은 "나는 기획도 하고 싶고, 비주얼도 잘하고 싶고, 리서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물론 UXer는 다양한 감각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취업이라는 초반 게임에서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 언젠가는 제너럴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이다.
면접관은 스킬셋을 다 체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질문을 던진다. "이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는 사람인가?" "우리 팀에서 어떤 역할로 작동할까?" "팀에 어떤 조합을 만들어줄까?" 결국 지원자의 스페셜티로 모든 것을 판단해 내야 하는 입장이다.
당신이 ‘모든 걸 잘하려고’ 할수록, 당신의 플레이 스타일은 역설적으로 흐릿해진다. 그러니 나라는 캐릭터의 포지션을 명확히 하자. 기획 쪽에 강점을 두든, 비주얼에 집중하든, 리서치 중심으로 가든,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인지를 선명히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것과 잘 매칭되는 전형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채용의 문을 크게 여는 첫걸음이다.
⸻
포지션을 설정한다는 건 단순히 직무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나라는 시스템이 어떤 기준과 감각으로 작동하는지를 세상에 선언하는 일이다. 이건 지원서를 넘어서, 포트폴리오, 면접, 실무 전형까지 모두에 영향을 준다.
당신이 기획형 플레이어라면 문제 정의와 흐름 설계에서 깊이를 보여야 하고, 퍼포먼스형 플레이어라면 비주얼에서 감성적 연결성과 조형의 리듬을 보여줘야 한다. 리서치형 플레이어라면 사용자 관찰과 데이터 해석에서 통찰을 만들어야 한다. 시스템 UX형 플레이어라면 복잡한 구조를 단순하게 풀어내는 설계 논리를 설득해야 한다.
포지션을 설정하는 순간, 당신이 세상과 맺는 모든 인터랙션의 방향이 정해진다. 그 선언이 없는 사람은 항상 해석이 애매하다. 경쟁력이 낮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 지원자를 흡수할 팀은 불안해진다. 당신을 해석해줘야 하는 팀은, 대개 그런 부담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명확한 플레이어가 돼야 기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러니 차라리 떨어지더라도 (물론 심리적 타격이 당연히 있겠지만) 명확하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롭다.
⸻
UXer는 세상의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취업이라는 시스템 안에서도, 자기 자신이라는 세계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가? 어떤 순간에 가장 몰입하는가? 어떤 흐름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작동하는가? 어떤 맥락에서 가장 설득력을 발휘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는 순간, 당신은 단순한 지원자가 아니라, 하나의 설계된 플레이어가 된다. 그리고 이 설계야말로 취업이라는 게임에서,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기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