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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미 늦었다고 느낄 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조급할까

by UX민수 ㅡ 변민수

시작의 역설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새로운 커리어든, 글쓰기든, 공부든, 관계든—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이려 할 때마다, 이미 그곳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능숙하고, 자신감 있어 보이며, 이미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이 말은 대부분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때 나온다는 것이다. 시작하지 않았는데 늦었다니, 이건 분명 역설이다. 아직 첫걸음도 떼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미 뒤처졌다고 느낄 수 있을까?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포기의 감정이 먼저 도착하는 셈이다.


'늦었다'는 감정은 객관적인 시계에서 오지 않는다. 대부분 타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비교할 때 발생한다. 누군가는 벌써 저 앞에 있는 것 같고, 나는 한참 뒤처진 것처럼 느껴진다. SNS를 스크롤하다 보면 이 감각은 더욱 강렬해진다. 동년배가 이룬 성취, 후배가 먼저 도달한 지점, 이미 몇 년 전에 시작한 사람들의 결과물—이 모든 것이 '나는 너무 늦었다'는 감정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이라고 부르는 이 순간은 모두에게 완전히 다르다. 출발선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마다 전혀 다른 좌표 위에 있다. 어떤 사람은 20대에, 어떤 사람은 40대에, 어떤 사람은 은퇴 후에 시작한다. 그리고 각자의 '지금'은 각자의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심리적 시계의 오류


이 감정의 본질은 '시계'가 아니라 '서사'에 있다. 우리는 타인의 커리어를 볼 때 완성된 이야기를 본다. 그들의 성공담은 이미 편집되고, 정리되고, 의미가 부여된 상태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시행착오는 생략되고, 방황의 시간은 압축되며, 우연과 행운은 필연처럼 포장된다.


반면 자신의 커리어를 볼 때는 미완의 원본 영상을 본다. 매일의 혼란, 방향을 잡지 못하는 순간들, 작은 실패와 망설임이 그대로 보인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실시간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그 안의 모든 노이즈와 불확실성을 고스란히 감당한다.


넷플릭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만 본 뒤, 아직 시놉시스도 못 쓴 나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늦었다'는 감정은 실제 시간 차이가 아니라 서사 편집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타인의 10년은 멋진 몽타주로 압축되지만, 나의 1년은 하루하루가 날것 그대로다. 이 비교는 처음부터 공정하지 않다.


게다가 우리는 자신이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반면 다른 사람들이 시작 전에 겪었을 망설임, 두려움, 시행착오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 역시 한때는 '너무 늦은 것 아닐까' 고민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 이야기는 성공 이후의 서사에서 대개 생략된다.



UXer의 시점에서 본 '시작의 순간'


UXer로 일하다 보면, '시작의 타이밍'이 생각보다 모호하다는 걸 자주 목격한다. 어떤 프로젝트는 공식 킥오프 이전에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다. 누군가의 비공식 대화, 작은 실험, 사전 리서치가 사실상 진짜 출발점이었던 경우가 많다. 킥오프 미팅은 그저 '공식화'의 순간일 뿐이다.


반대로 어떤 변화는 오히려 론칭 이후에야 진짜 시작된다. 사용자 피드백이 들어오고, 데이터가 쌓이고, 문제가 구체화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개선이 시작되는 것이다. 첫 번째 버전은 사실 '진짜 시작'을 위한 프로토타입에 가깝다.


즉, 시작은 이벤트가 아니라 흐름(flow)이다. 명확한 한 점으로 특정할 수 없는, 연속적인 과정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우리가 정확히 언제 시작한 거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여러 순간들이 중첩되고, 여러 맥락이 얽혀서 지금의 흐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개인의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시작은 조용히 흘러가다 어느 순간 '이벤트화'될 뿐이다. 처음엔 작은 호기심이었다가, 몇 번의 시도를 거쳐, 어느새 하나의 방향이 되어 있다. 그리고 나중에 되돌아보면 '아, 그때가 시작이었구나' 싶은 순간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순간은 당시엔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진짜 중요한 건 '언제 시작했는가'가 아니라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감각이다. 과거의 시작점을 소급해서 찾는 것보다, 현재 내가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



"지금"이 늦은 게 아니라, "늦었다"는 감정이 빠른 것


우리는 '시작의 순간'을 찾느라 시간을 잃는다. 완벽한 타이밍, 충분한 준비, 확실한 동기—이 모든 것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오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그 순간이 '지금'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작은 특정한 날, 특정한 선언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을 자각한 바로 지금, 이미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늦었다'고 느끼는 그 순간, 사실 당신은 이미 움직이고 싶다는 신호를 받은 것이다. 그 신호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다.


'늦었다'는 감정은 사실 '내가 움직이고 싶다'는 내면의 신호다. 만약 정말로 그 일에 관심이 없었다면, 늦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감정은 일종의 갈망이다. 나도 저기에 가고 싶다는, 나도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의 다른 이름이다.


그 신호를 죄책감으로 오해할 것인가, 점화점으로 삼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같은 감정을 '나는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라는 후회로 소비할 수도 있고,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라는 시작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결국 '지금'이 늦은 것이 아니다. '늦었다'는 감정이 너무 빨리 온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미리 포기하게 만드는 그 감정이, 실제 시간보다 앞서 달려온 것이다. 그러니 그 감정에 속지 말자.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늦지 않았다. 오히려 완벽한 타이밍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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