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 사이에 ‘서울병(Seoul Syndrome)’이라는 흥미로운 단어가 있다고 한다. 향수병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병이라면, 서울병은 말 그대로 서울을 그리워하며 앓는 병이다. 한국의 드라마, 패션, 카페 문화, 밤거리의 불빛에 반해 잠시 머물렀던 외국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간 뒤, 뜻밖의 공허함과 그리움을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 표현이라고 한다.
낯선 도시였던 서울이 어느새 마음속에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에게 서울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마음 한편을 점유한 ‘대상’이 된다. 이 병의 치료법은 간단하다. 서울로 돌아오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비용과 시간 때문에 마음만큼 될 수 없을 뿐.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던 건, 나 역시 비슷한 병을 앓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앓았던 대상은 ‘서울’이 아니라, ‘기획’이라는 분야였다. 과거의 나는 서울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처럼, 멀리서 그 세계를 동경하며 마음속으로만 앓고만 있었다. 이 글은 그 병을 앓고, 지나고, 다시 바라보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특정 분야나 화두가 유난히 눈에 밟히는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내게는 그것이 ‘기획’이었다. 대학생활 내내, 예술 작품을 보더라도, 기획이 중요한 어떤 이벤트에서는 물론, 기획이라는 미스터리는 내 주변을 떠다니는 단어처럼 나를 괴롭혔다.
그 일이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막막하고 모르겠다 보니 생긴 현상이었다. 그저 막연하게 나와 잘 맞고 내 성향이 이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는 자기 검증만 마친 상태로 짝사랑만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기획병은 서울병과 닮았다. 서울병의 치료제가 ‘서울에 돌아가는 것’이듯, 이 병의 치료제도 사실 단순하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막연히 동경하며 준비만 하는 대신, 실제로 기획자가 되어 현장을 경험해 보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준비’라는 이름으로 그 시기를 질질 끌며 스스로 병을 키운다.
아직은 부족해. 좀 더 공부하고 나서.
이런 말들은 불안을 정당화하는 명분이자, 열병의 증상이다. 사실 이 병은 결핍이 아니라 갈망에서 시작된다. 눈에 밟히는 대상은 결국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가능성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 가능성이 밖의 대상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할 때, 병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해법도 서서히 내 눈에 보이길 시작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는 종종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이끌어낸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문득 돌아보니 나는 어느새 UXer가 되어 있었다. 기획자의 역할을 잠시 맡아본 경험도 있었고, 실제로 UXer라는 역할은 상황에 따라 기획자의 역량까지 함께 요구되는 경우도 있었다. 복잡한 여정 끝에 원하는 내가 된 셈이었다.
그렇다면 UXer가 된 이후 내 기획병은 완전히 낫게 되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다만 예전처럼 ‘내가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은 사라졌고, 증상은 점차 가라앉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 조금은 다른 시선이 서서히 생겨났다.
이제는 내 주변, 혹은 저 멀리서도 과거의 나처럼 기획병을 앓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기획자 혹은 기획형 디자이너(D)로 포장하며 ‘고객’을 무기 삼는 유형은 모종의 실력과 논리로써 어떻게든 본인을 어필해 낼 수 있다. 그것이 먹히고 안 먹히고를 떠나서 말이다.
하지만 아직 기획병의 초입에 서 있는 이들은 다르다. 그들의 눈에는 막연한 동경과 가능성, 그리고 불안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 그건 내가 한때 앓았던 바로 그 기획병의 눈빛이다. 그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묘한 공감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책임감이 마음속 깊이 올라온다.
서울병의 치료제가 서울인 것처럼, 기획병의 치료제는 다름 아닌 기획이라는 ‘경험’과 기획을 향한 ‘도전’이었다. 실제로 기획자 역할을 부여받아 현장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실패하고, 부딪히는 순간부터 병은 조금씩 누그러들 수 있었다. ‘준비’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생생한 감각과 시야가 생기면서, 동경은 현실로, 불안은 성장의 에너지로 변해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순간부터 동시에 나는 누군가에게 치료제가 될 수 있었다. 이게 참 드라마틱하다. 기획형 디자이너(D)로 성장한다는 건 내 안의 병을 치유하는 과정을 넘어, 누군가에게는 그 병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병을 앓던 자에서, 병을 이해하고 이끌 수 있는 자로—이 변곡점에서 진짜 성장은 무르익어 간다.
그래서 열심히 외쳤다. 언젠가는 멘토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누군가 그 길을 걸어갈 때 옆에서 방향을 잡아주고, 때로는 뒤에서 밀어주는 존재. 내가 한때 앓았던 병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이제는 다른 이들의 여정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디자이너(D)로서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이자 사은품이다.
생각해 보면, 서울병도, 기획병도, UX병도 결국 마음이 움직인 흔적이다. 어떤 대상이 나를 이끌었고, 나는 거기에 응답했다. 병은 불편함의 형태로 찾아왔지만, 사실은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인 셈이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신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병은 돌고 돈다. 앓던 자는 치료자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씨앗을 남긴다. 이 순환이야말로 디자이너(D)의 길을 조금은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