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라는 우산은 놓쳐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
UX라는 용어를 처음 창안한 도널드 노먼은
왜 ‘UX는 모든 것(It’s everything)’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모든 것’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끌리거나 걸려서가 아니었을까? UX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관점에 도달해 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칫 ‘UX가 사실상 모든 것이라면, 그럼 나는 뭐든 할 수 있고 해도 되는 역할인 건가?’ 그 설렘과 동시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UX라는 거지?’라는 막막함도 함께 찾아왔을 것이다. 이 문장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희망이자 혼란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UX라는 용어는 오남용 되고 만다.
이런 분야의 특징은 여러 분야의 전문성을 마치 우산의 꼭지처럼 모은 것 같은 시각화가 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우산의 형상으로 UX를 설명하곤 해왔다. 그러니 모든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문장을 처음 옮겨 적으면서 나는 ‘모든 것’의 맹점을 강조하려고 했다. 이로써 ‘그만큼 경계가 모호하다’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UX라는 말이 만능열쇠처럼 쓰이는 현실도 경험한 바 경계해두고 싶었다. 누군가는 ‘UXer는 사용자의 모든 걸 책임지는 사람’이라 말하고도 싶을 것이다.
원론적으론 맞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다. 따라서 실제 역할은 그중에 일부를 담당하며, 대체로 여러 흩어진 맥락을 연결하는 역할에 더 가깝다. 이렇듯 개념과 실제 업무의 차이를 구분해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UXer는 금세 번아웃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실상 제대로 기능할 수도 없게 된다.
궂은 날씨,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와중에 UX라는 우산을 잡아봐야 아무런 현실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도움이 될만한 것은 따로 있고, 어쩌면 그런 이야기들을 독자의 선택에 기대어 모아보고 싶었다.
지금도 이와 같은 생각에 변화는 없다. 때문에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이 문장은 경고처럼도 들렸음 한다. UX는 ‘모든 것’을 품을 수는 있어도 결코 ‘모든 것’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이해를 돕기 위해선 다음과 같이 풀어서 적히는 게 좀 더 현실적이다.
UX는 원론적으로 사용자와 관련된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나 조직 내에선 그중 일부분을 담당한다.
UXer의 일은 정답을 만드는 게 아니라, 단서를 읽어내고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따라서 일부의 문제를 나눠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행동, 제품의 흐름, 비즈니스의 논리 속에 숨은 의미의 실마리 등의 여러 단서들이 모여서 총체적인 ‘경험’이 완성된다.
설령 우산과 같은 제너럴리스트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중일이다.
다음 글에서는 그 단서를 맞물리게 하는 첫 순간,〈첫 단추의 착각〉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처음부터 완벽히 맞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UX 여정의 첫 번째 성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