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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는 기술 문해력의 알파벳이다

시니어에게 UX 상식이 필요한 이유

by UX민수 ㅡ 변민수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요즘 건 왜 이렇게 복잡해?”라고 말하는 순간, 세대의 거리가 생긴다. 하지만 사실 그 간극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 탓이다.


오늘날의 기술은 더 이상 엔지니어의 언어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UX(User Experience), 즉 ‘사용자 경험’이라는 언어로 설계되고, 그 언어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과 더 원활하게 연결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UX는 기술 문해력의 알파벳이라고.




기술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과거에는 기계를 ‘다루는 법’을 배우면 충분했다. 라디오를 켜고, 세탁기를 돌리고,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앱 하나를 설치할 때도 ‘동의’, ‘위치 허용’, ‘푸시 알림 수신’ 같은 수많은 선택지가 쏟아진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조작 능력이 아니라 ‘이 경험이 왜 이렇게 설계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감각이다.


UX를 안다는 것은 화면의 구조와 흐름을 읽을 줄 안다는 뜻이다. ‘뒤로 가기’가 왼쪽 위에 있는 이유, ‘좋아요’ 버튼이 붉은색인 이유, ‘닫기’와 ‘삭제’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술은 더 이상 낯선 괴물이 아니다. 세상을 읽는 새로운 문해력이 생긴다.



기술은 ‘제품’이 아니라 ‘경험’으로 진화했다


과거의 전자제품은 기능 중심이었다. “잘 된다”가 전부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술은 ‘느낌’ 중심이다. 얼마나 빠르고, 편하고, 자연스럽고, 덜 귀찮은가가 경쟁력이다. 결국 기술은 기능이 아니라 경험을 파는 시대가 되었다.


UX 상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을 이해하려면 이제 회로도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선을 읽어야 한다. 앱이 ‘당신의 하루를 기억해요’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기능이 아니라 감정적 관계를 설계한 것이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기술에 휘둘리고, 이해한다면 기술을 길들일 수 있다. UX는 그 감정의 지도이자 기술 문해력의 문법서다.



세대의 장벽은 나이보다 ‘UX의 언어’ 차이에서 생긴다


많은 시니어가 “내가 늙어서 그런가 봐”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설계의 기준’이 젊은 세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디지털 서비스는 젊은 세대의 손끝 반응, 눈의 민첩성, 익숙한 아이콘 체계를 전제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시니어가 느끼는 불편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언어 체계의 차이다.


UX 상식을 익히는 것은 그 언어를 배우는 일이다. ‘메뉴’와 ‘탭’의 차이, ‘드래그’와 ‘스와이프’의 의미, ‘프로필 사진 변경’이 왜 설정에 숨어 있는지 알게 되면, 더 이상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탐색할 수 있다. 이건 단순한 디지털 적응이 아니라,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다. 기술 앞에서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읽을 줄 아는 사람’으로 서는 것.



UX는 결국 인간의 기술이다


UX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려는 태도다. “이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이 문장은 부담스럽지 않을까?” —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UX의 출발점이다. 그러니 UX 상식을 익힌다는 건 단지 앱을 잘 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는 연습이기도 하다.


이제 기술은 인간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냉장고도, 자동차도, 병원 접수대도 UX 위에서 작동한다. 그 안에서 시니어가 소외되지 않으려면, 기술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의 경험으로 이해해야 한다. UX는 그 길로 들어가는 첫 알파벳이다. A부터 Z까지 완벽히 외울 필요는 없다. 단지 A—‘Attention(주의)’과 B—‘Behavior(행동)’만 알아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경험이 가르쳐준다.




기술 문해력의 시대, UX는 새로운 교양이다


문해력이 글자를 읽는 능력이었다면, 기술 문해력은 화면을 읽는 능력이다. UX는 그 문법을 알려준다. 뉴스를 읽고, 은행 일을 보고, 건강 앱을 켜는 매 순간, 시니어는 이미 기술 사회의 중심에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사용법’이 아니라 ‘이해법’이다.


UX를 배우는 것은 젊은 세대를 따라잡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일이다. 기술이 아무리 복잡해져도, 결국 그것을 움직이는 건 인간의 감정이다. UX를 안다는 건 그 감정의 지도 위에서 길을 읽는 법을 아는 것 — 그래서 나는 말한다. UX는 기술 문해력의 알파벳이다. 그리고 알파벳은, 언제 배워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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