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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bin Park Jan 27. 2022

Statement of Purpose 작성기

SOP가 쏘아올린 작은 공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관련 박사 과정 진학을 위해 대전의 K모 대학 교수님께 메일로 컨택을 했고 훈훈한 몇번의 메일이 오가고 대면 미팅 약속을 잡고 최종적으로 아래와 같은 요청을 받았다.


Statement of Purpose를 1장 내외로 영문으로 작성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연구방향과 관심사가 논리적이고 설득적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입니다.


대면 미팅은 당장 일주일 뒤인데 청천벽력 같은 요청이었다. 일단 저 두 개의 짧은 문장에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Statement of Purpose, 1장 내외, 영문, 연구방향, 관심사, 논리적, 설득적, 게다가 '가장 중요'라니? 대면 미팅에서 대략적인 자기 소개를 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90도 인사를 하면 교수님이 껄껄 웃으시며 '그래, 잘해봅세나.'하는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말도 안되는) 화기애애한 장면을 막연히 상상했던 나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회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수순인데 나와 같은 생애 첫 박사 지원 1회차인 사람이 또 있다면 도움이 되고자, 그리고 감사하게도 좋은 결과를 얻었기에 그 과정을 기록해보기로 한다.



1. SOP(Stagement of Purpose)란

일단 무엇을 하려면 그 정의부터 알아야 한다. 나 역시 바로 구글링에 돌입했다. 일반적으로 SOP라고 줄여 부르며, 주로 해외 대학원 석박사 지원 시 요구되는 문서로서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동기와 계획을 정리하는 학업계획서라고 하는데 SOP 작성을 완료한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학문적 자기소개서'라는 표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Statement about your academic and research background, your career goals, and his Michigan’s graduate program will help you meet your career and educational objectives.


이는 미시간주립대의 Statement of Purpose인데 이만큼 알기 쉽고 와닿는 내용은 없었다. 나의 학문적, 실무적 배경과 나의 커리어적 목표, 그리고 우리 학교의 프로그램이 너의 커리어와 학문적 목표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서술하라. 결론적으로 SOP는 이 대학원 프로그램에 내가 얼마나 적합하며, 자신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얼마나 성취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글이다.



2. 동기(Motivation), 그리고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중요하다

SOP를 작성하고 교수님과 대면 미팅 후 'SOP를 읽어본 결과 Motivation이 매우 분명해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받았고 너라는 사람을 만나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지더라.'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는 SOP계의 최고의 칭찬이라 할 수 있으니 정말 뿌듯했고 진심을 알아주신 교수님께 너무 감사했다. 사실 이는 내가 타고난 SOP 작가여서도 아니고 훌륭한 SOP를 많이 참고해서도 아니다. 내가 집중했던 것은 바로 학업을 넘어서서 HCI 분야를 계속 연구하고자 하는 그 '동기'를 하나의 '스토리'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아래는 교수님께서 주신 질문이었고 이 질문 리스트는 각자기 지원하는 분야에 상관없이 그 어떤 SOP에도 해당되는 핵심 내용이기에 여기에 공유하기로 한다.


왜 HCI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HCI 관련 경험이나 배경 지식을 보유하였는가?

관심있는 연구 주제가 무엇인가?

박사 이후 커리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가?


SOP는 상기 순서대로 작성되는 것이 좋은데, 이는 자신이 선택하는 연구분야에 대한 관심(이라 쓰고 애정이라 읽는다.), 경험이나 배경지식, 문제 의식이 있는 연구 영역, 추후 연구 활용계획을 자신의 과거, 현재와 미래에 걸쳐 기승전결이 뚜렷한 글을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위 순서대로 작성하되 첫째, 모든 항목에서 '동기'가 계속해서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둘째, 모든 항목이 '스토리라인'으로 이어지도록 작성하는데 집중하였다.



3. SOP에서 이것만은 피하자

Statement of Purpose를 읽는 주체는 지원자가 아닌 교수이다. 취업할 때 인사팀이 거르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아는 것이 중요한 팁이 되듯이 교수님이 거르는 SOP는 무엇인지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아래는 교수 입장에서 읽고싶지 않은 SOP에 대한 항목을 포스팅한 스레드를 주요 부분만 번역한 것이다.


"석박사 과정은 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또는 "나는 연구를 통해 사회에 공헌할 것입니다."와 같은 말은 피해라. 읽는 것도 고통스럽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Its painful to read and we don't care one bit about that.^^;;). 연구에만 집중해라.

인용문으로 시작하거나 6살 때부터 컴퓨터 공학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안 알려줘도 된다.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연구에만 집중해라. 어떤 기술적인 일을 했으며 어떤 기술적인 일을 하고 싶은가?

석사 또는 박사 학위가 "열정"이나 "인생의 사명"이 될 필요는 없다. 너는 우리에게 이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좋은 SOP개요는 이것이다. "저는 Z교수와 함께 Y프로젝트에서 X에 대해 작업했습니다. 그 후 A를 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았습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B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교수C의 작업, 특히A와 관련된 최근 프로젝트가 인상깊었습니다."

요약하면 "이것이 내 열정/인생의 목표입니다.", "나는 CS를 6세부터 사랑합니다." 등과 같은 말을 피하고 연구에 집중하여 수행한 일,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라. 관련 작업, 관련된 대학의 교수와 연결해라. 내가 관련 프로젝트에서 얼마나 멋졌는지 기술하라!


꽤나 직설적으로 쓰여진 이 스레드는 내가 SOP를 작성하는데 팁을 넘어서서 거의 바이블이 되어주었다.

Reader가 읽고 싶은 글을 쓰는 것, 읽고 싶지 않아하는 것은 피하는 것, 이 점에 유의하면서 프로젝트와 관련 경험, 그리고 하고자 하는 연구가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작성하려고 노력하였다.



4. SOP를 통해 만난 진짜 '나'의 이야기

결론은 위 과정을 거쳐 작성한 생애 최초의 SOP를 통해 교수님께 대면 미팅을 하자는 회신을 받았고, 대전의 교수님 연구실에 찾아뵙고 한시간 반 가까운 뜻깊은 대화 시간을 가졌다. 감사하게도 교수님 연구실의 연구원들과의 자리도 마련해주셔서 대학원 생활에 대해 궁금한 점과 준비해야할 것들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도 보낼 수 있었다. 장장 세 시간이 넘는 풍성한 대면 미팅, 학비 전액 지원과 연구실에서의 월급 이야기까지 두어장의 짥은 SOP가 쏘아올린 수확은 어마어마했지만 나는 사실 무엇보다 값진 수확은 '나'를 발견한 것이라고 하고싶다.


처음에는 단순히 좋은 교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그 분과 함께 연구하고 싶어서,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서 SOP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작업에 몰두하고 빠져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원서의 역할을 넘어서서 HCI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막연히 가졌던 나의 문제의식에 이름을 붙이고, 내가 원하는 미래를 정의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기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숱하게 탈고하고 또 탈고하는 과정을 거쳤다. 결국 이 짧은 글은 '학업계획서'가 아닌 나라는 사람이 HCI 분야에서 어떤 연구자인지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나의 '학문적, 실무적 자기소개서'가 되었고 링크드인에도 내 SOP를 포스팅해두었다.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헤맬 때마다 이번에 작성한 SOP는 등불이 되어줄 것이고 여러분들도 그런 Statement of Purpose를 작성할 수 있기를, 진짜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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