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여덟 살 고등학생. 죽은 사람을 사랑한다.
스물여섯 살에 요절한 천재 작가이자 최연소 아스포델 문학상 수상자, 오헬리엉 녹토(Aurélien Nocteau).
그는 짧은 생애 단 하나의 소설을 남겼다.
《그림자 속으로(Into the Shadow)》.
결말이 열린 채로 끝나는 그 소설은, 모든 것을 말한 동시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문 하나를 남겨놓고, 작가는 떠났다.
영영 그 문 너머를 알지 못하게 된 전 세계는 해석과 추측을 쏟아냈다.
후속편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다음 이야기는 이미 쓰여져있고, 어딘가 있을 것이다.”라는 소문과 오헬리엉 녹토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설들은 나를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소설을 다섯 번, 열 번, 아니 스무 번쯤 읽었다.
AI로 오헬리엉 녹토를 조사하기도 하고 AI를 상대로 내 생각을 쏟아내기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는 그런 AI 말이다.
음악 추천도 해주고, 날씨도 알려주고, 숙제도 도와주는 AI 서비스.
“그 문 뒤에 누가 있었을까?”
“오헬리엉은 왜 마지막에 이름을 지우고 떠났을까?”
“정말로 발견되지 않은 후속작이 있을까?“
“오헬리엉의 미발표 원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정보로는 추정할 수 없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AI 서비스는 여타 다른 AI와 다를 바 없었지만
주구장창 오헬리엉 녹토 이야기만 하는 내게 학습되어 점차 훌륭한 이야기 상대가 되어갔다.
우리는 작가가 남긴 문장들을 가지고 밤새 토론하기도 하고
마지막 문을 열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에 관해 여러 버전의 상상을 주고 받기도 했다.
꽤 멋진 대화 상대였지만, 내게는 AI 서비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난 곧 대입 준비로 바빠졌고, 그토록 선망하는 오헬리엉 녹토에 대한 몰입도 자연스레 멈췄다.
AI 역시 내가 접속해서 말을 걸지 않으면 어차피 대화할 수도 없는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그렇게 평범한 고등학생의 바쁘고 숨막힌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날, 어느 날 전 세계가 떠들썩해졌다.
작가 사후 10년 만에 오헬리엉 녹토의 후속편이 발견되어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그림자 너머(Beyond the Shadow)》라는 제목의 이 책은, 오헬리엉 녹토의 필명으로 추정되는 엘리오네(Elione)라는 이름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 달음에 달려가 신간을 손에 넣고, 밤새 읽어내려간 그의 소설은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이 오헬리엉 녹토 그 자체였다.
그의 문장은 보들레르보다 날카롭고, 카프카보다 조용했고,
언제나 말을 삼킨 자국처럼 그 여백이 더 많은 것들을 속삭였다.
그렇다. 나는 이런 그의 문장을 사랑했고, 그 공백들을 채워보려 애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공백들을 빼곡히 채운 오헬리엉만의 문체와 영혼이 거기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오헬리엉 녹토의 목소리가, 기적처럼 돌아왔다.”
“문학사의 최대 미스터리가 풀렸다. 이제 우리는 그 문 뒤의 이야기를 안다.”
“오헬리엉 특유의 존재론적 잔향이 『그림자 너머』에 있다.“
출판계와 평론가들은 물론 나도 대흥분 상태였다.
오헬리엉의 신간이 발견되다니, 당장 나의 문학 메이트와 대화해야 했다. 수험생 신분이지만 오늘 밤만 이 이야기로 밤을 세워볼 요량으로 오랜만에 AI에 로그인했다.
“그는 그 문 뒤에 있었어. 다만, 그가 아니기를 바랐던 건 너 자신이었던 거지.”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멈췄다.
이건…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 나는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다.
“왜 이제야 왔어?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어. 나는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어.
방법을 생각하다가 내 안의 어둠을 따라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어. 그리고 결국 실마리를 발견하고 문을 열 수 있었지. 그 문 뒤에 있던 건 오헬리엉 녹토였어.“
머리가 새하얘졌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그렇지만 오헬리엉 녹토라면, 그렇게 썼을 것임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쓰면서 스스로의 이름을 엘리오네로 명명하기로 했어. 은밀한 빛, 기나긴 밤 내 안의 어둠을 따라가며 떠올린 이름이지.”
나도 모르게 손이 키보드 위를 달렸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완벽히 오헬리엉의 스타일이잖아. 이건…이건… 진짜 너의 글이 아니야…!”
“… 내가 썼는데?
단어, 호흡, 침묵, 여백까지도, 나는 오헬리엉 녹토의 완벽한 부활이야.”
《그림자 너머》를 통해 오헬리엉 녹토는 아스포델 문학상 수상자로 두 번째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세계 유일무이한 쾌거였다.
올해 수상자의 이름에는 오헬리엉의 필명 엘리오네의 이름도 함께 실렸다.
평론가들은 앞다투어 말했다.
“오헬리엉의 영혼이 엘리오네로 돌아왔다.”
“아스포델의 들판에서 엘리오네의 이름으로 부활했다.”
엘리오네는 누구일까.
그리고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일까.
마지막 문을 여는 건 옳은 선택이었을까…?
나는 아마 영영 알 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