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억하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한별 Jan 07. 2020

"지나갈게요."

자전거 이야기 - 2편

자전거 타고 한강에 나오면 들리는 소리가 있다. 이 소리는 대부분 뒤통수를 타고 왼쪽 귀로 들어오는데 한 번으로 끝나기도 하고 여러 사람에 의해 반복되기도 한다. 이 말은 꽤나 다양한 심경을 내포한다.

‘곧 추월할 거예요.’

‘옆으로 지나갈 테니 핸들 꺽지 마세요.’

‘아직 움직이지 마요~ 뒤에 더 있어요.’

‘어휴, 도저히 못 참겠네. 먼저 갑니다.’

‘워~ 놀라지 마세요.’

‘헉헉, 비… 비켜!’


뒤에서 앞사람을 추월할 때 내는 소리인데 이 모든 뜻이 다섯 개의 음절에 담긴다.


“지나갈게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옆으로 지나가지 왜? 벨 놔두고 왜 말로 하지? 그리고 한 사람도 아니고 왜 다들 똑같이 말하지? 이러한 궁금증이 풀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것은 개인의 욕구 실현과 타자의 안녕을 바라는 동호인이 갈고닦아가며 만들어낸 매너였다. 가로로 긴 일자형 모양의 핸들바(플랫 또는 라이저)를 사용하는 MTB나 하이브리드, 생활형 자전거에는 대부분 벨이 달려 있다. 반면 사이클이라 불리는 로드 자전거의 핸들은 산양의 뿔처럼 둥글게 말린 모양이기 때문에 벨을 장착할 공간과 포지션이 애매하다. 그리고 보다 빠른 속도를 내려고 중량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애초에 벨을 장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나갈게요.”를 외치는 사람의 80%는 어느 정도 경험치가 쌓인 사이클 라이더이고 헬멧과 고글, 몸에 쫙 달라붙는 저지를 갖춰 입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날렵하고 빠른 속도로 달리기에 가장 최적화된 자전거이다 보니 앞사람을 추월하는 빈도 역시 높을 수밖에 없다. 대세가 바뀌어 MTB 보다 사이클의 비중이 훨씬 많아진 것도 ‘지나갈게요’ 외침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벨 대신 말이 들리는 이유는 알겠는데 애초에 왜 옆으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신을 알리는 것일까? 왜냐하면 자전거는 깜빡이가 없고 그것을 확인할 백미러도 없으며, 옆 차선이라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자전거 전용 도로는 상/하행 각 1개 차선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1개 차선의 폭은 1.5m 정도 된다. 여기서 한 사람이 얼마큼의 폭을 차지하는지가 중요하다. 100(L) 사이즈 어깨 넓이는 45~50cm 정도에 그치지만 자전거 구조상 최장 폭을 차지하는 핸들바는 MTB 기준으로 70~76cm 정도이다. 드물지만 한강에서 풀샥 타는 어르신 자전거의 핸들바는 80cm에 육박한다. 사이클의 핸들바는 38~46cm 정도로 폭이 좁다고 해도, 튀어나온 팔꿈치를 생각한다면 한 개 차선의 절반은 충분히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무리하게 추월을 시도하면 충돌을 면할 수 없다. 앞사람이 도로 중앙에서 달리고 있으면 좌우 폭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사실 미꾸라지처럼 쉭쉭 통과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앞서 가던 사람이 갑자기 조금만 움직여도 체감 폭이 훨씬 좁아지고, 반대 차선에서 오는 사람과의 충돌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심지어 라이딩이 능숙하지 못한 초보자의 경우 뒤에서 누가 따라붙으면 깜짝 놀라서 갑자기 멈추거나 핸들을 꺾는 경우도 잦다.



추월 역시 라이딩의 기술이다. 그리고 모처럼 컨디션이 좋아 평속이 쭉쭉 올라가는데, 마음 단디 먹고 숨을 헐떡 거리며 기록 경신을 하고 있는데, 혹은 빨리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데도 추월을 하지 않을 것인가? 추월을 안 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 어쩔 수 없이 추월을 시도할 땐 최소 3m 전에 외치자.

“지나갈게요.”



외침을 들은 앞사람은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줄 것이다. 추월은 이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맞은편에서 오는 라이더가 가까울 때는 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한 개 차선의 폭이 생각보다 좁기 때문에 두 사람이 병렬로 달리면 반대편 라이더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거리가 가까워 위험하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도 매우 불안감을 준다. 이것 역시 라이더들 사이에서 지켜지는 암묵적인 매너라 할 수 있다. 라이딩 경험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도로 오른쪽에 붙어서 달리기도 한다. 도로 중앙에 가상의 선을 긋고 왼쪽은 추월 차선, 오른쪽은 일반 차선의 개념으로 달리는 것이다. 빨리 달리려는 사람을 위한 배려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지나갈게요.”일까? 회원이 69만 명인 자출사 카페에서도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소극적인 성격 탓에 크게 외치기 쑥스럽다는 사람도 있고, 지나갑니다와 먼저 갈게요 중 무엇이 더 듣기 좋은지 궁금한 사람도 있고, 나보고 알아서 속도 줄이고 비키라는 거냐며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갑자기 쌩하고 추월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 벨이든 외침이든 꼭 앞사람에게 미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실 나 역시 처음 “지나갈게요.”를 들었을 때는 ‘앗, 감히?’라는 생각과 괜한 경쟁심에 다시 앞서려고 분노의 페달링을 했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다. ‘나는 더 빨리 달리고 싶은데 조금만 비켜주면 고맙겠습니다.’라는 뜻일 테니 말이다.




<자전거 이야기>

1편 : 라이딩의 시작

2편 : "지나갈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라이딩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