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스르는 방법을 몰라서
구멍을 무너짐으로 바라봤던 시기에
돌이켜 보니 내가 놓이고 싶었던 장면은 무난하게 문턱을 넘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무난하게'. 큰 고비와 좌절과 견딤 없이 책을 읽듯 자연스레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모습을 그려왔다. 공부, 도전, 관계 등 어느 것 하나 기울어지지 않고 수평을 이루는 직선. 일직선을 바라왔다. 그러면 조용히 평탄하게 순간순간을 지나갈 테니까. 일찌감치 정해놓은 꼭짓점이 그저 '지나감'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아챘다. 시선을 너무 멀리 두고 있던 탓에 탈이 나버린 것이다.
어쩌면 '무난하게 지나가길 바란다 = 당연한 일'로 치부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속해 있는 곳에서 하는 모든 일은 평균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처음 보는 시험이더라도 점수가 7~80점은 나와야 하고, 다른 아이들이 아는 것이라면 나도 당연하게 알고 칠판에 적어야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창피하지 않고 이름만 말해도 어느 정도 알 만한 중위권 대학에 갔어야 하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성인이 된 후로는 성인답게 당연히 감정을 누르며 성숙한 태도를 보여야 하고, 무언가를 시도했을 때는 결과가 합격이어야만 하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어떤 혜택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남들만큼만, 남들스럽게 평범한 삶이었으면 했다. 남들과 동떨어지지 않은 삶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기준이었다. 내가 참 소중하고 애틋해서. 비슷한 무리 틈에 끼고 싶었다. 나를 아끼는 마음이 타인으로 향했다는 것에서 뭔가 앞뒤가 맞지 않고 모순적이구나 싶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 깃들었다. 그것이 세상과 조화, 균형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수식어라고. 나를 받쳐주는 꽤 튼튼한 밑바탕이라고 믿고 싶었으니까.
수치심.
자괴감.
숨죽임.
극단적인 생각.
맺힘.
후회.
심적 우울.
그리고 무기력. 이라는 구멍이 숭숭 뚫리는 시기였다.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라 구멍이 뚫리는 대로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주저앉았다. 당연한 굴곡이었을 텐데 전부 선택지에 없었던 것들이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날아드는 성적표들로 스스로에게 결론을 냈다. 나는 똑똑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고, 무엇 하나 시도해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그렇다면 그냥 되는 대로 살아야겠다 싶어 지금까지 흘러온 것이다. 내가 결론 낸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부 드러날까 봐 나를 가리고, 숨기고, 모른 척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