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취(臭)

어느 날 문득 경계에 서서

by 가람

수만 번 자책하고, 왜곡된 시점을 이때껏 끌어안고 살다 보니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초라함.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만약', '그랬더라면', '왜 그랬을까'. 길을 걷다가도, 버스를 탈 때도, TV를 볼 때도 깜빡이 없이 치고 들어왔다. 그럼에도 거슬리지 않았던 건 그 말이 꽤 근사했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나 자신이 뿌듯해할 만한 장면도 함께 그려 넣어 주었으니까. 향긋한 마법의 언어다. 동시에 독한 악취를 뿜는 시궁창의 언어다. 나 자신을 사라지게 하고 현재를 지우게 하는. 하지만 당시엔 최대한 덜 아프게 문턱을 넘는 방법이 그 단어를 움켜쥐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살갗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꽉 미련하리만치 붙잡으면 가끔 향기가 실려와 코를 씻을 수 있으니까.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실 도피를 위한 꿈에 흠뻑 취해있었다는 것을. 한참 동안 꿈을 깨는 방법을 몰라서 아니 깨고 싶지 않아서 마법의 언어가 주는 세계를 계속해서 따라갔다. 헤엄치지도 못하면서 물고기 흉내를 내보겠다고 깊은 수면에 얼굴을 담가 숨을 참았다. "잠깐만 참으면 될 거야." 그렇게 주문을 걸어 스스로를 세뇌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 마법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인지했다. 마법이 풀렸다. 결국 물밖으로 얼굴을 빼냈고 현실을 마주한 나의 상태는 충격적이었고, 하염없이 비틀댔다. 발 디딜 곳을 몰라 허둥댔다.


꿈에서 깬 직후, 공허하고 미친 듯이 답답한 마음은 계속 밀려들어 왔다. 애써 모른 척하고 참고 넘어가면 나름 괜찮아지는 듯하다가도 2~3개월 뒤면 다시 찾아왔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어느 날은 밑도 끝도 없는 예민함으로, 또 어떤 날은 책임감 없는 모습으로, 혼이 나간 사람으로. 문제는 수시로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무엇 때문인지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 그러다 입버릇처럼 생각이 튀어나왔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다른 일을 하면 괜찮을 거야", "왜 그것밖에 못했을까." 또다시 제자리. 꿈에 가라앉으려고 하는 나를 발견했다.


향기와 악취 사이를 오락가락 반복한 지 1년째에 접어들자 시궁창이 나를 가뒀다. 정면으로 마주보지 않으면 또 얼마 안 가 같은 모습이라고 속삭이면서. 이때 알았다. 지금까지 계속 되풀이했던 것이 도망과 회피라는 것을. '때론 도망도 필요해'하면서 땅만 보며 걸어왔던 때가 떠올랐다. 아무리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도 '때로는'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전부'였다. 실소가 터졌다.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살아온 걸까. 그나마 한두 갈래 희미하게 보이던 길마저 아예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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