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하고 혼미한 미로에서는 탈출 욕구가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된다. 이때는 답이 없다. 이리저리 허우적대기보다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는 것밖에는. 얽히고설킨 아지랑이가 잠잠해질 때까지.
얼마나 헤맸을까. 길인지 아닌지 모를 곳을 마구 헤집고 다니다 상처를 입은 맨발이 눈에 들어왔다. 찢어지고 멍들고 고름이 찬 발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약 처방보다는 신발이 필요하겠다는 것을. 아, 진짜 문밖을 나설 때구나. 라고. 하지만 아직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 두 다리를 보충해 줄 또 하나의 다리, 붙잡고 일어설 뭔가가 있었으면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고른 건 사람과 시간. 조심스레 속삭였다. 출구로 가는 방법을 귀띔해 줄 '존재', 그리고 무방비 상태의 내가 안도할 수 있는 작은 '순간'을 가져다주었으면 좋겠다고.
처음이었다. 용기 내어 사람의 곁을 선택한 게. 무리 속에서 비슷한 고민을 나눈다거나 그들의 멋진 생각을 힐끗힐끗 훔쳐본다던가 하는 용감함은 내게 무척 어려운 상대였으니까. 이전에는 흘러가는 시간 뒤에 숨어 무조건 혼자 견뎠다. 얼른 무뎌져라 기도하면서. 홀로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했던 것이다. 상대방의 손은 내가 가라앉아 있는 깊은 수면까지는 닿지 않으니까. 아마도 막다른 감정이 휘몰아치는 사이 적절한 거리를 두는 연습이 됐나 보다. 가령 '이제 그만 피해야겠다'같은 담백한 자기 응시를 할 줄 알게 되는.
"그래. 내가 바랐던 건 충분한 기다림이었을지도 몰라." 마음 바닥으로부터 먹먹한 메아리가 울렸다. 이참에 걸음마를 다시 배워볼까 싶었다. 내 방식대로. 존재하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괜찮다', '정말 별거 아니다', '고작 이런 걸로', '더 힘들고 아픈 사람도 많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렇지 않은 척 옥죄었던 게 서있을 힘을 잃게 했을 테니. 떼를 쓰고 억지를 피우면 될 줄 알고 미뤄두었던, 공감과 이해 또한 걸음걸음마다 놓아볼까 싶었다. 같은 선상에.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도록.
모로 가도 서울만 도착하면 된다고 했던가. 그런데 하필 간 곳이 완전히 반대 방향이어서 돌아오려면 긴 숨을 쉬어야 될 듯하다. 그럼 도착은 이후에 생각해 보자. 오래 걸리겠지만 일단 가려는 방향으로 걷기만 하자. 그래 일단은. 답답하기도 하고 또 길을 잘못 들 수도 있겠지만 가리키는 곳으로 가보자. 만약 아주 버거워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물어 가는 것으로 하자. 그렇게 가다 보면 적어도 긴 터널에서는 벗어나 있겠지. 혹여 수직으로 뻗은 오르막길이더라도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더라도 바람은 통할 거야. 하며.
지금 생각해 보면 두 종류의 시간이 나를 지켰던 게 아닌가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스스로 방어하고 발견하는 반복의 시간. 꿈에 취해 한 겹 한 겹 약점을 감쌀 무엇을 찾던 때. 경계심이 사그라들고 내 앞과 뒷모습을 어루만지는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