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너에게

by 가람

지금까지 만족스럽고 즐거웠던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더듬더듬 뒤적뒤적해보니까 뭐가 나오긴 나오데. 다 차치하고 그것부터 익숙해져 보려고.


생각보다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 시답지 않은 얘기로 매일 친구와 주고받던 편지,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며 떨던 주접, 무릎 깨지며 타던 롤러브레이드, 체육 실기시험 때 시끄럽게 방해하던 웃긴 친구, 월드컵 때 다 같이 모여서 치킨 뜯으며 응원했던 교실, 학교 쉬는 시간 10분을 알차게 보내려 수업 종료 종이 울리자마자 달려갔다 오던 매점, 바깥 풍경을 눈에 담는 여행 같았던 대학 등굣길 기차 안, 기차 기다리는 시간을 배부르게 채워주었던 빵가게와 서점, 해보고 싶은 게 생겨 학원비 벌겠다고 아르바이트를 뛰댕기던 기특함까지.


돌이켜 보면 매일매일이 죽고 싶은 날은 아니었어. "행복해, 기뻐"까지는 아니어도 '맛있어', '궁금해' 또는 '재미있어', '해야 한다'가 틈틈이 짙어졌다 옅어졌다 하더라. 먹는 음식이 맛나고, 개봉한 영화 내용이 궁금하고 혹은 보는 드라마나 만화가 재미있고, 지금 당장 이 과제를 끝내고 싶은 농도 말야. 이따금씩 이 농도가 옅어질 때 무채색이 찾아와. 세상의 잣대나 시선은 크게, 나에 대한 건 아주 사소하게. 살 용기를 잃게 할 만큼 다가왔다가 어느 때는 저만치 멀어져 있더라고. 살 만한 순간이 몸 안에 들어오면 식탁 앞에, 책상 앞에 앉아 있거나 무엇을 바라보는 방식으로다가.


두 가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면서 싸우다가 끝끝내 결판이 안 나니까 이제는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건가 싶어. "네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하는 것 같은 느낌. 아직까지는 잠잠하네. 고맙게도. 지금은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거대했는지 참. 창피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 방황하고 움츠렸던 시간이 길어서 아쉽지만 살아'내'려고 그랬던 거겠지. 언제인지는 몰라도 때가 오면 잘 살아'가'려고. 그러니 잘 왔고 잘 견뎠어. 막막하고 힘에 부쳤을 너를 이제는 이해해. 형태가 어떻든 살아볼 마음을 먹고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살다가 가끔 원하지 않는 손님이 찾아올 때 당장 내쫓지 말고 두고 봐야겠어. 그 손님의 말을 한번 가만히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게 많아질 것 같아. 진짜 손님 말인지 내 말인지. 그게 내게 독이 될지 해독제가 될지. 생존이 될지 삶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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