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존재하는
부슬비가 잠시 내린 토요일 오전이었다. 우산을 챙기지 않고 나온 산책길. 비 예보를 알았지만 그저 가볍게 나오고 싶은 아침이었다.
1.
단골 카페에 들른다. 야외 좌석에서 책을 읽던 중이었다. 그러다 정오 경 빗방울이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했다.
카페 직원분은 바깥 자리를 훑어보셨나 보다.
천막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드릴지 물어보신다.
"재현 씨,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테이블을 조금 안쪽으로 넣어 드릴까요?"
한두 시간쯤 편안히 책을 읽었다. 마침 빗방울이 이제 갈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아, 괜찮아요. 비가 내릴 것 같아서 딱 가려고요."
비가 내릴 듯한 공기를 쓱 보고 말하신다.
"아, 우산 빌려드릴 수 있는데"
카페라 남는 우산이 몇 개 있으신가 보다. 집이 가까워서 한두 방울 내릴 때 가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도 우산을 빌려줄 수 있다는 말이 고마웠다. 내가 다시 돌려주러 올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들를 때면 이제는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카페. 커피, 공원, 강아지들, 환영.. 그 카페가 좋은 이유는 참 많겠지만, 내게 일종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이유는 인간답기 때문일 것이다.
2.
올리브영에 계산대에 줄을 서 있었다.
직원분의 목소리가 꽤나 명랑해서 내게도 들렸다.
"아~ 아펠가모요? 바로 건너편 횡단보도 건너면 있어요!“
아펠가모는 근처에 있는 결혼식장이다.
계산하던 손님은 중년 남성이었는데 위치를 물어보신 모양이었다.
예상외로 직원분이 말을 이었다.
“오늘 결혼식 가시나요?“
직원분의 밝은 응대 덕분인지 손님은 미소를 띠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횡단보도 건너시면 안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바로 찾으실 거예요!"
동네를 잘 알고 있는 직원분은 근처에 사는 게 분명했다. 계산을 마친 손님은 안심한 표정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인상적인 응대였다. 동시에 이 짧은 장면은 왜인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올리브영 일과 관련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직원분은 자연스럽고 친절한 태도로 손님을 도와드렸다. 사무적인 응대나 귀찮다는 말투가 아니었다. 아버지 나이쯤 되는 손님께도 얼마나 고맙고 기분 좋은 방문이 되었을까?
서울에 혼자 산지 몇 년이 되었고,
개인주의에 가까운 분위기도 익숙하다.
하지만 이처럼 작은 친절함을 경험할 때면 어김없이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 개인으로 살아갈지라도 마냥 외딴섬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 간의 작은 친절함에 있을지도 모른다.
작은 친절함이라는 상자 안에 선물이 담겨 있기에. 오고 가는 산뜻한 기분, 지역사회의 감각, 상대방을 헤아리는 관심, 잊고 있던 태도에 대한 환기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