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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rey Sep 25. 2022

영화관이 이랬었지 (2)

코비드 전후의 영화관 경험에 관한 러브레터

2.


그래서 코로나 이후의 영화들은 대체로 외로웠습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딱 세 사람이 있는 관에서 보았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을 객석의 반의 반도 채우지 못한 극장에서 보았어요. 나는 그 영화들을 만나서 좋았지만, 동시에 고요한 극장에서 만나야만 했던 그 작품들이 상영되는 시간 내내 쓸쓸했어요. 많은 사람들은 극장을 떠났고, 곧 OTT에 영화가 들어올 테니 그때 보면 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또다시 극장에게 무심한 시대의 시작이었어요.


과거였다면 주말이라 객석을 꽉 채웠을 블록버스터 영화에 단 3줄 만의 객석이 찼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극장의 상업적 가치가 소멸해가고 멀티플렉스의 대형 스크린이 점차 사라지거나, 소수만을 위한 유희가 될까요? 어쩌면 언젠가는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빠르잖아요. 우리는 불과 3-5년 사이에 VCR이 무덤으로 가는 걸 봤죠. DVD와 블루레이는 소장 시스템 덕에 겨우 연명 중이고요.


코로나 시대의 극장 경험은 마치 한 시대가 끝나가는 것을 아주 느리고 괴롭게 겪는 것만 같은 감정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의 유년기와 성인기 전체 동안 영향력을 행사해 온 늙은 사자가 마침내 죽어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을요. 그건 사람들이 넓은 공간에 자유롭게 출입하고, 적은 돈으로도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풍요의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신호같기도 했어요.


때때로는 그래서 영화와 함께 더 깊게 내려갈 수 있어 좋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영화 경험의 순간이 몹시 고요한 지변에 머무르게 되는 것을 느껴 쓸쓸했습니다.


어쨌든 나는 그런 경험에도 익숙해진 상태였어요. 영화관에 자주 갔거든요. 극장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많다고 알리고 싶었습니다.  시기에 개봉한 대부분의 영화는 산업에서 밀려 컬러 영화와 TV 자리를 내주게  흑백영화들처럼, 혹은 간간히 작품을 찾아주는 헌신적인 관객들이  소비층이  예술영화와 비슷한 처지였어요. 지난 3년간 많은 사람들이 OTT 구독 개수를 늘리고 극장에 방문하는 횟수를 줄였으니까요. 크고 화려한 상업영화도 차디찬 외면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부  영화들은 개봉을 미뤘고, 그중에서도 미루고 미루다 시장 실험용으로 먼저 공개된 운명의 영화들은 기대에 훨씬  미치는 수익이나 벌어갔죠. 그때는 모든 극장이 굶주려야 했습니다. 아주 상업적인 공간인 멀티플렉스마저 쇠락을 앞둔 운명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었지요.



3.


그러나 기쁘게도 그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위험을 곧잘 망각하고 추억을 오래 기억하기 때문에요. 모이고 싶은 욕구, 체험하고 싶은 욕구, 유희에 대한 욕구가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압도하게 되면서 관객은 서서히 영화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전과 같지는 않지만, 다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은 들어요. 전성기 할리우드의 현역 화석과도 같은 톰 크루즈가 한국에 다시 방문했고, <탑건:매버릭>은 거의 800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깐느 박께서 상도 타 왔는데 어째 한국에서는 2주 차까지 고전하던 <헤어질 결심>이 마침내 손익분기를 넘겨 180만을 모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개인적인 승리처럼 팔짝팔짝 좋아했습니다.


극장은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닙니다. 이번 여름에는 영화관 객석이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어요.
나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극장의 일부가 되고 싶어서 더 부지런히 영화관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객석이 가득 찬 극장에서 단일한 스크린을 보고 상영시간 동안 관객들이 ‘우리’로 묶이는 경험을 아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징조들을 보고 흥분할 수밖에 없었지요. 코로나 이후로 몇 년 만에 이전의 극장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것은 자체로 기쁜 일이었습니다.


근데 우습게도, 근래의 영화관 경험을 생각하면 나는 어색해서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오히려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간 영화관 풍경을 낯설어하고, 나는 그토록 그리웠다고 말하던 극장 경험에 약간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내가  그랬을까요?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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