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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Mar 06. 2020

<돈의 정석>

돈을 미워하거나 사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이야기들 

이번 3월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 10기에게 주어진 테마는 ‘0과 1’이었다. 당황스러운 것은 이 테마를 보자마자 곧바로 돈을 연상했다는 사실.  요새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가 가장 큰 화두여서 그런가. ‘너 속물이구나’ 할지도 모르겠지만 도대체 다른 대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돈 이야기가 뭐 나쁜 건가. 0에서 출발해 1로, 또 2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자기 힘으로 경제적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은 한 인간에게 자존감을 키워준다. 단,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안팎의 복병들을 만나는 게 문제다.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제자리. 대출 이자 갚기도 벅찬데 아파트 가격은 그 수십, 수백 배 이상으로 치솟고 있다.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일하니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싶지만 돈은 나만 피해 다니는 것 같다. 전체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저 높은 곳이나 온갖 정보를 귀신같이 먼저 알아 ‘작전’을 수행하는 저 아래 어두운 곳에만 돈이 모이는 것 같다. 영문도 모르고 늘 뒤통수만 맞는 개미가 된 기분. 손에 쥐는 건 딱 일한 만큼일 뿐이다. 좌절감이 쌓이면서 어느덧 모두들 돈을 미워하고, 또 그만큼 갈망하게 되어버렸다. 


늘 제대로 돈 공부를 하고 싶다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서일까. 원래 제목은 <Naked Money>지만 한국 제목은 <돈의 정석>이고 ‘인격의 격을 높이는 최소한의 교양’이라는 솔깃한 부제까지 붙여 놓았다. 격을 높여준다니 너무 과장 아닌가 했는데 읽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학생들이 뽑은 ‘교양과목 올해의 교수’로 선정되었고 경제학, 통계학 등 골치아픈 주제를 알기 쉽게 설명한 ‘Naked’ 시리즈로 유명하다는 저자 찰스 윌런은 바로 옆에 앉아 이해될 때까지 설명해주는 듯한 쉽고 직관적인 문체를 구사한다. 


앞에 나왔던 내용이라도 재차, 삼차, 다시 설명하고, 올드 무비 <멋진 인생>부터 쌀자루로 거래하는 상상 속의 마을, 비닐 진공 포장 용기에 담긴 고등어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는 미국 교도소, 하루 아침에 화폐 개혁을 단행해 암시장으로 축적한 인민들의 재산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북한 등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동원해 이해를 돕는다. 


1부 ‘돈이 만드는 세상’에서는 소금, 금, 담배, 돌고래 이빨, 조가비 구슬, 동물 가죽 등으로 출발해 인류의 거래에서 계산 단위, 가치 저장, 교환수환의 기능을 하던 돈이 금과 은 등 등 실물화폐 시기를 거쳐 각국의 정부가 법적으로 보증하겠다고 선언한 명목화폐로 진화하면서 현대 금융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종이조각인 달러, 유로, 엔, 원 등 수많은 명목화폐들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벌이는 모험들. 단 이 모험이 혼란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 화폐를 발행하는 정부들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전제가 달려 있다. 물론 당연히 문제가 발생한다. 


저자는 누군가는 덕을 보고 또 누군가는 손해를 입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빌려주려는 사람과 빌리려는 사람, 그리고 둘을 중개하는 은행이 맞물리며 발생하는 신용대출과 금융위기, 수출과 수입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한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환율 문제 등 돈을 둘러싼 현상들을 조명한다. 특히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의 국면마다 지불을 보장하는 ‘최종 대출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하며 자국의 화폐 가치와 금융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은행의 은행’ 격인 중앙은행의 활동이 책 전체에서 비중있게 다뤄진다. 


“중앙은행들은 무에서 돈을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돈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 ‘클릭, 클릭, 클릭’. 중앙은행 관리들이 돈의 공급을 늘리거나 줄이는 소리다. 책임감 있는 중앙은행 관리들은 명목화폐의 공급을 조절해서 금융 위기를 막고 안정된 경제 성장을 독려할 수 있다. 무책임한 정책 입안자들은 이 강력한 힘을 이용해서 무모하게 돈을 찍어냄으로써 화장실 휴지보다 가치 없는 지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양쪽 예를 모두 목격해 왔다.” 


저자는 2부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서 이 생생한 예들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자국의 화폐인 달러를 세계 준비 통화로 만든 미국이 어떻게 1929년 대공황의 쓰라린 경험을 교훈 삼아 2008년 금융위기를 넘겼는지, 이때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어떤 역할을 해냈는지 두 장에 걸쳐 다뤘다. 


이밖에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인 일본은 왜 버블경제 몰락 후 수십 년 동안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지, 또 왜 희망차게 출발했던 유로존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곪아왔던 문제가 폭발했으며 그중에서도 독일과 그리스가 원수 지간이 됐는지도 알려준다. 무역 적자 문제로 걸핏하면 으르렁거리는 중국과 미국이 맺고 있는, 보면 볼수록 애매한 공생관계의 이면, 전자화폐인 비트코인이 과연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마지막 장인 ‘중앙은행과 통화정책의 미래’에서는 세계 최대 은행 중 하나만 파산해도 전 세계 신용카드 거래 및 현금 인출기가 정지될 만큼 국경을 초월해 밀착되어 버린 전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갖추고 은행 및 관련 기관들을 규제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역설한다. 


“명목화폐를 운용하는 것─무에서 돈을 만들어 내거나 그런 돈을 없앨 수 있는 엄청난 힘─과 관련된 도전은 늘 존재할 것이다. 신경외과의가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회복시키기 위해 수술할 때는 항상 악화시킬 위험이 따르듯, 중앙은행도 경제 전체에 그와 비슷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의 일자리, 저축, 집 등이 모두 그 영향권 안에 있다. 연방준비제도의 결정에 따라 사람들이 말 그대로 죽거나 사는 건 아니라 할지라도, 엄청난 영향을 받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적어도 돈 문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설득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의 문제 이전에 주머니에 만 원짜리 지폐가 들어오게 하는 시스템이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 경제활동 역시 가능하게 만든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0에서 1, 2, 3... 장수를 세는데 집착하는 일을 잠깐 멈추고 한 걸음 떨어져 전체 상을 조망해 보라는 조언. ‘돈이 전부’라며 푸념하고, 안달하기 전에 실제로 돈이 굴러가며 펼쳐지는 메카니즘을 책을 통해 접해보자. 막연하게 부자가 되는 꿈을 꾸기 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투자가 될 수도 있다.    


*이 리뷰는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 10기 활동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다른 펜벗들의 리뷰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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