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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Feb 09. 2020

<미래는 오지 않는다>

미래로 직행하는 나만의 ‘황금 티켓’은 없다

지난 1월부터 4개월 동안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 활동을 하게 되면서 매달 정해진 주제에 따라 책을 추천하게 되었다. 1월 주제는 ‘티켓’. 이 주제를 받아들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우선 비행기 보딩패스가 생각났다. 전날 졸린 눈을 비벼가며 짐을 싸고,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공항으로 향해 무거운 수트케이스까지 부치면 단촐해진 짐과 함께 손에 쥐게 되는,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는 증명서. 여행의 기대로 두근두근, 본격적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게 바로 이때다. 물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전세계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되고 있는 지금은 마음부터 주춤해져 버렸지만.  


어딘가 들어갈 수 있는 증명서라고 한다면 리그나 토너먼트전처럼 차곡차곡 경기를 치르며 올라가 손에 넣는 ‘8강행 티켓’도 생각나고,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5개의 웡카 초콜릿에 감춰진 행운의 황금 티켓도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티켓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감명 깊게 본 공연이나 전시 관람권을 ‘티켓북’에 소중하게 모으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에 대한 기대감만큼 매력적이진 않을 것이다. 세상 수많은 티켓들 중 가장 최고치의 기대감을 한 몸에 모으는 대상이라면 아마도 로또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문학과지성사 <미래는 오지 않는다> 카드뉴스 

티켓과 미래의 이런저런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서가를 돌아다니다가 <미래는 오지 않는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아직 연초의 설레임이 가시지 않은 때라 2020 트렌드 예측을 둘러싼 핑크빛 제목의 미래학 책들이 즐비한 가운데 심드렁한 제목의 이 책은 더욱 눈에 띄었다. 부제 역시 ‘과학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 


서울대학교 홍성욱 교수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전치형 교수가 함께 한 문화원에서 ‘과학기술과 미래사회’를 주제로 한 강연이 시발점이 된 이 책은 제4차산업혁명,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AI, 로봇 등 몇몇 단어들로 띄엄띄엄 연결된 우리의 단편적인 미래관에 균형감각을 제안한다. 과학책이라면 좀 난해할 것 같지만 대중강연을 기반으로 한 데다 잘 읽히는 쉬운 문체, 무엇보다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과학기술계의 빅이슈부터 숨겨진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이 이어져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저자들은 ‘미래’라는 단어를 한자 뜻대로 풀어쓴 이 책의 제목처럼 요즘 미래 담론에서 흔히 보이는 확신, 즉 미래를 곧 일어나고야 말 객관적 사건으로 보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미래 역시 하나의 담론, 즉 해석과 비판과 논쟁이 필요한 대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래 담론은 지나치게 과학기술 중심적이며 그중에서도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고 빠르게’하는 첨단 기술에만 관심이 치우쳐 있다. 이는 상용화할 수 있는 연구에만 자본이 몰리는 과학기술계의 현재 추세와 맞닿아 있는 문제다.(자율주행차에 쏠리는 관심 중 어느 정도가 지구온난화에 옮겨갈 수 있을까?) 

미래 예측을 둘러싼 과학 및 산업계의 에피소드가 풍성하게 담겨있다 


저자들은 또한 우리가 과학기술의 성공과 실패를 예측하는데 그다지 유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과학기술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경로와 방식으로 성공하거나,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이유 때문에 실패한다고 한다. 초음속으로 대서양을 세 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콩코드 비행기는 노트북의 상용화로 주 고객층인 회사 중역들이 비행기 안에서도 일할 수 있게 되면서 몰락했고, 2001년 당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미래의 운송수단으로 각광받았던 세그웨이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1876년 벨에 의해 특허가 신청된 이래 지금까지 그닥 바뀌지도 않은 일반 전화는 화상 전화가 떠오르면서 사라지게 될 거라는 예측을 보기 좋게 꺾고 지금도 건재하다. 집에 있어도 사무실에서 일하는 척, 피곤해도 즐거운 척. 목소리를 전달하면서도 통화자가 처한 맥락을 은폐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심리나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요인들이 과학기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또한 우리가 미래에 대해 말할 때 사실은 현재를 놓고 다투고 있는 것이라 지적한다. 기술의 발전 양상과 이로 인한 미래사회의 변화를 설파하는 과학자, 공학자, 비평가, 언론인 등 이른바 ‘기술-미래 예언자’들이 저마다 각양각색의 미래 예측을 내놓고 있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미래에 대한 담론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약속을 제공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 담론은 이를 설파하는 사람들의 역사관, 세계관, 정치적 의도 등을 담고 있고, 이를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연대와 결속감을 제공합니다.(중략) 일단 미래 예측이 가진 이런 담론적인 성격을 이해하면, 수많은 미래 예측 중에 우리 사회의 현재 문제를 회피하는 대신에 이를 직시하고, 사회의 불평등과 위계를 강화하는 대신에 이것들의 해소를 꾀하는 담론이 어떤 것인가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P. 297~298


우리 모두가 미래 예측 활동에 뛰어들 수는 없지만 저자들은 지금 널리 생산되고 유통되는 미래상이 어떤 세계를 지향하고 어떤 가치를 설파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미래는 우리가 예측한 대로 오지는 않겠지만, 미래에 대한 더 나은 논쟁이 현재를 더 낫게 바꾸는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주도한다는 제4차산업혁명의 미래 전망 속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묻히는 현실 속에 저자들은 “결국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과학기술이 열어주거나 미래학이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과거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복잡한 세상을 상상력을 사용해서 관통해야 하며, 여러 가능성과 제약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성찰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중략) 무엇보다 미래 예측은 실천지향적이어야 하며, 그 어느 학문보다도 현재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얼굴을 한 미래학’입니다.(중략) 인간의 얼굴을 한 미래 예측은 CEO를 위한 것이 아니라, 문제투성이 현재와 불편한 미래를 포용하면서도 희망을 키우고 연대를 만들어내는 시민들의 실천을 위한 미래 시나리오 작업을 의미합니다. 미래에 대한 이런 상상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면서, 현재 삶과 노력에 의미를 더해줍니다.” P.303~304 


질병의 정복이나 영생, 경제적 대박을 약속하는 과학은 그 의의를 개인적, 사적 차원으로 축소시키게 된다는 저자들의 지적처럼 이를 누리는 사람들 역시 각자 나만 생각하는 다음으로 현재를 산다면 정말 미래는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속가능한 세상은 아니겠지. 나만 입장하고, 나만 돈을 버는 티켓이 아니라 함께 골고루 나눠서 누릴 수 있는 공동의 티켓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미디어에서 접하는 4차산업혁명의 미래상이 미심쩍을 때 한번 읽어보시길. 


*이 리뷰는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 10기 활동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다른 펜벗들의 리뷰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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