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하는 일이 글을 매개로 하는 터라 늘 책을 가까이 하긴 한다.(주로 책상과 침대 옆에 쌓여있다) 반백수 프리랜서 처지라 도서관에 빈번히 들락거리면서 주로 신착도서 서가의 신간들을 욕심껏 쟁인다. 대형서점도 자주 가서 관심 가는 책들을 스캔하고, 다 읽은 책을 팔러 간 김에 중고서점에도 오래 죽치는 편이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들도 정기적으로 둘러보면서 지름신이 내릴 때마다 지르고(주로 굿즈 욕심!), 몇 년 전 구입한 이북 리더로 전자도서관 책들도 대여해 본다.
그래서 괜찮은 독서가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매사 조급한 마음 때문에 일이나 공부 관련된 책을 주로 읽고, 시간이 남으면 관심이 끌리는 신간 위주로 선택하게 된다. 분야로 치자면 경제경영, 자기계발, 인문, 에세이, 소설 순이랄까. 물론 격년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나타난 평균치보다는 조금 더 읽는 편이다. 2017년 만 19세 이상 성인 6천명을 대상으로 한 이 실태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일반 도서(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를 제외한 종이책)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독서율)은 전체 성인의 59.9%이며 이들의 1년간 종이책 독서량은 평균 8.3권이라고 한다.
1권 이상 읽은 사람이 거의 60%에 달하며 독서량이 평균 8권이면 꽤 괜찮지 않나? 뜻밖이라서 가만히 들여다 보니 코어 그룹의 존재가 눈에 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책을 한 해 1권 이상 읽은 사람 중 ‘매일’ 또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읽는 성인 독자가 24.5%에 달한다고. 그러면 이 분들이 바로 나날이 침체를 겪고 있는 출판시장의 지원군인가. 과연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독서량 9.1권에 비해 2017년 독서량은 0.8권 줄어든 반면, 독서자(한 해 1권 이상 읽은 사람들)만 대상으로 보면 평균 13.8권으로 2015년 14권과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전체 독서 인구는 줄었지만 책을 읽어왔던 사람들의 독서량은 큰 변화 없이 꾸준하다는 분석. 게다가 웹 소설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연간 전자책 독서율은 증가 추세라고 한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책을 읽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나마 다행이다. 이 추세가 2019년 조사에서도 이어지길.
최근 나는 이 24.5%에 속하는 열혈 독서가들의 세계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다. 포털 사이트 기반 전자책 카페를 들락거리면서 대충 짐작은 했는데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들의 세계는 그리 크진 않지만 정말 치열하다. 이 분들은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활발하게 리뷰를 게재하는데 그 무대는 자신의 블로그, 유튜브(북튜브), SNS 뿐만 아니라 각 온라인 서점 사이트 기반 독자 블로그, 출판사 모집 서평단, 도서관을 비롯해 다양한 주체가 여는 독서모임 등 실로 방대하다. 물론 이미 100명이 넘는 출간작가를 배출했다는 브런치는 당연한 거고.
얼마나 고수가 많은지 잘 알기에 그간 드나들며 눈에 익었던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이 10기 모집 공지를 냈을 때도 별 기대 안 하고 신청서를 냈다. 셀프 마감으로 책 리뷰를 쓰는 게 좀 힘들어서 외부 플랫폼의 강제(?)를 빌려보자 싶기도 했고 늘 내 취향에 맞는 책만 고르지 말고 다른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더 다양한 시선에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 페이지
그 점에서 마음에 든 것이 반디앤루니스 공식 서평단인 ‘펜벗’은 총 4개월 동안 매달 주어진 주제에 맞는 책을 읽고 ‘테마 서평’을 쓰게 된다. 예를 들어 ‘컬러’라고 한다면 10인의 서평단이 각자 시각에서 골라낸 책 한 권씩을 추천하게 되는 것이다. 분야는 자유.
이밖에도 관심 가는 신간을 골라 소개하는 ‘신작 소개 페이퍼’, 마음을 울린 책 속 한 문장을 소개하는 ‘이 달의 문장 소개’, 매달 제시된 테마에 맞는 책을 추천하는 ‘함께 서점’ 도서 추천 등 모두 네 꼭지를 한 달에 한 번 제출하며 총 4개월 활동 기간 중 카드뉴스, 웹툰, 칼럼, 일러스트 등 자유로운 형태로 책과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하는 ‘나만의 콘텐츠’를 한번 게시해야 한다. 기반은 반디앤루니스 사이트 안 독자의 서재. 4개월간 매달 10만원의 적립금(총 40만원)을 활동 지원금으로 지원받고 활동 시작 선물로 땡큐박스(지난 기수 펜벗들이 감동과 함께 블로그 등에서 인증한 사려깊은 선물들!)도 준다는 것에 솔깃했던 것도 사실.
그냥 경험삼아 신청서를 썼는데 의외로 선정되었다는 문자와 메일이 와서 놀랐다. 나이도 젊지 않고 북튜브 같은 것도 못하는 데 끼워준 건 아마 서평단 구성의 다양성을 고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이트에 올라온 선정 안내 공지사항을 보니 100장이 훌쩍 넘는 지원서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역시 강호의 고수들은 많았던 것이다.(이번 브런치북 응모 수도 2500편이었담서요..ㅠ)
선정된 이후 담당 에디터의 부지런하고 센스 넘치는 메일을 받아가며 활동을 진행 중이다. 이미 1월말 게시될 첫 번째 원고는 넘겼고 2월 말에 두 번째 마감이 돌아온다. 혼자 좋아하는 책을 읽고 리뷰를 쓸 때와는 다르게 ‘이 책을 다른 사람들도 마음에 들어할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신선한 느낌이다. 4개월 기고가 끝나고 나서도 몸에 붙이면 두고 두고 좋을 습관일 수도 있겠다.
"그냥 출판은 망했다니까요!" 출판사를 하는 한 후배가 1년 전인가 내게 선언하듯 한 말이다. 농반진반이긴 했지만 각 대형서점 및 온라인 서점에서 '올해의 책'을 휩쓴 베스트셀러를 펴내고도 별반 달라진 건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가긴 했다. 자매품으로 잡지계에 있는 지인들도 이렇게 말한다. "난파되어가는 배에 앉아서 가라앉길 기다리는 기분이야."라고.
글 한 줄 안 보는 사람들 때문에 망해간다는 업계가 있는 반면 또 그 업계에서 책 한 권 내보길 간절히 원하는 예비 작가군단이 포진한 플랫폼이 있다. 이렇게나 책으로 묶이길 원하는 수많은 말과 글이 있으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와도 그중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손에 꼽는다. 사실 당연한 시장논리일 텐데 그게 다름아닌 책이라서 그런가. 이 상황이 뭔가 부조리하고 비정한 것 같아 아쉽다. 낼 수록 망하는 걸 잘 알면서도 자꾸 내는 미련한 출판사 사람들과 세상에 책은 많지만 '내 책'은 없기에 용기를 낸 초보 작가들의 기대가 모여있어서 남들은 안 산다는 책을 자꾸 꾸역꾸역 사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30%도 안되는 그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