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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Nov 11. 2019

<386 세대유감>

리뷰를 빙자한 386세대와의 동승기

386세대에 대해 본격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한 최초의 책으로 프리미엄을 얻었다. 세 명의 저자가 있는데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가 78년생. CBS 심층취재팀 팀장이다. 또 한 명은 81년생 연구자로 역시 CBS 기자로 일하다 유학길에 올랐다가 귀국, 계약직 연구자로 살다가 386세대 정치인의 정책 참모 역할을 했다. 다음은 87년생. 여의도에서 정치인의 보좌를 업으로 삼고 있어 386세대 선배들을 참 많이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스스로를 386세대의 성공담을 들으며 20~30대를 보냈으며, 어느덧 30대의 끝이 보이고 40대에 접어들었다고 자평한다.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선배들이 그랬듯 벤처붐에 올라타 막대한 부를 거머쥐거나 대통령의 오른팔이나 왼팔이 되기는커녕 계속 앞줄에 서 있는 그들의 뒤통수만 봐야 하는 사람들이 애증을 섞어 털어놓는 이야기다. 이미 직속 후배인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지나 Z세대가 합류했으나 IMF 외환위기로 일찌감치 시장에서 퇴출당한 유신세대가 물려준 그 자리를 앞으로도 족히 30년은 차지할 기세로 짱짱한 그 세대, 386에 대한 이야기.


저자들은 말한다. “10여 년 전 아픈 청춘들은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이제야 우리를 그렇게 호명한 386세대에게 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본인이 386세대이자 <88만원세대>를 쓴 우석훈 박사가 해제를 써주기도 했다.      

본격적인 386 담론을 다룬 <386 세대유감>

아스팔트에서 시작해 권력과 부를 거머쥔 386세대의 모든 것

1부 ‘축복받은 세대, 저주받은 사회’에서는 시대적 상황이 각 세대에 미친 영향을 손익계산서로 계량화해 386세대가 누린 시대적 행운을 보여준다. 1965년생, 1975년생, 1985년생 기준으로 대학졸업장의 가치, 1997년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청년노동의 상대적 가치, 전세금 상승, 서울시 아파트를 사는데 걸리는 시간, 저축할 수 있는 여유자금 등 세분화해서 살펴보았다. 뭐 답은 대충 아시리라 본다.  


2부 ‘민주화 공로자인가 수혜자인가’ 장에서는 386세대가 민주화의 훈장을 독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묻는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이라는 치명적인 전략 미스를 범한 선배들이 사라진 후 전두환 정권의 7.30 교육개혁조치(대학별 본고사 폐지, 대학졸업정원제 실시, 입학정원 대폭 확대 등이 핵심)로 1981년의 캠퍼스를 가득 채운 후배들이 1987년 6월 6.29선언으로 짜릿한 승리를 맛본 과정을 먼저 살펴본다. 이후 1990년대 들어서 학생운동은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중간계의 386세대는 빛나는 승리의 기억만을 간직하고 90년대 이후 후배들을 지질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90년대 중후반 이후 이제는 존재감도 없이 대학을 다니는 이들에겐 더 말할 것도 없다. (“요새 애들은 꿈이 없어!”)


3부 ‘헬조선과 386 전성시대’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주 병폐인 사교육, 부동산, 노동문제, 기득권 문제에서 386세대가 해온 적극적 가담 또는 소극적 방관 행위를 보여준다. 1990년대 이후 사교육 시장으로 뛰어들어 스타강사로, 학원 재벌로 거듭난 모습이 우선 인상적이다. 운동을 하며 익혔던 종합적 사고력과 논리력을 십분 활용해 1994년부터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한 논술, 역사, 국어, 사탐, 일타 강사가 되고 이후 학원재벌에 국회까지 진출한 그들. 국회의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도 스스로 대학생 프리미엄을 절감했기에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더욱 극성스럽게 자녀교육에 열을 올렸다. 조기교육, 해외유학, 기러기아빠, 위장전입, 원정출산 등은 이때 나온 말들이다.


1989년 4월 27일 발표된 제1기 신도시개발계획(분당, 일산)부터 출발해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 같은 대규모 주택공급 붐을 타고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진 주택청약통장을 가슴에 품은 386세대는 1990년대 중반부터 각종 주택금융규제 완화정책까지 받쳐주면서 보란 듯이 내 집 마련에 성공한다. 생애주기 상 내 집 마련 욕구가 가장 높은 것이 30대 중반이라고 한다. 386세대가 이 나이였던 1990년대 초중반은 한국 부동산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격안정기였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10년간 386세대는 자산을 매입해 1993년 22%에서 2003년 51%까지 두 배 이상 보유율이 상승한다. 1999년 한 조사에 따르면 자가를 소유한 386세대 중 78%는 아파트 보유자. 문제는 ‘거기까지’라는 것. 이후 1999년 분양가 상한가 폐지 이후 고급 아파트들이 쏟아지면서 서민 아파트 가격도 덩달아 올랐고 2003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본격적으로 상승한다. 그 유탄은 고스란히 X세대를 포함한 후배 세대에게 전가되었고 지금도 마찬가지.


고용시장은 어떤가. 1997년 IMF 이후 계약직, 임시직, 파견직, 용역직 등 비정규직이 일상화되고 고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과 노인층이 서로 원하는 직종이 거의 겹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흘겨대는 아귀다툼에서 386세대는 또한 비껴나 있다. 외환위기 당시 1950년대 생이 대거 구조조정 당한 반면 주니어급이었던 386세대는 살아남으면서 1998년 파견법, 2006년 비정규직보호법, 무기계약직 도입, 2019년 8월 강사법 등 거세지는 노동시장 유연화 추세 속에서 유일한 정규직 그룹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3년 당시 50대 비정규직 비율은 40%인데 2018년 현재 386세대가 중심이 된 50대 비정규직 비율은 오히려 34%로 떨어졌다고 한다. 저자들은 1987년 5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대거 만들어진 정규직 중심의 노조들이 현재 비정규직 동료들의 호소는 외면하고 있는 현실도 짚어낸다.  


4부 ‘미필적 고의’ 편에서는 정의, 평등, 자유를 외쳤던 368세대의 자기 배신과 헬조선이 된 우리 현실을 두고 그들에게 미필적 고의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꼰대, 갑질, 희박한 젠더의식, 미투담론, 명예남성 등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한 의견을 요구한다. 특히 정치의식 면에서의 분석이 흥미로웠는데 2007년 17대 대선에서 가장 진보적 세대라 자임했던 40대의 50.1%가 ‘뉴타운’을 내세웠던 이명박을 지지했다고 한다. 18,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을 더 지지하긴 했으나 세대를 좀 쪼개서 보면 386세대 중에서도 민주화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1963~1967년생들이 슬슬 보수화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30대이던 16대 대선에서는 37.4%가 이회창을 찍었는데 50세를 코앞에 두고 치러진 18대 대선에서는 46.5%가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것. 19대 대선에서도 50대의 문재인-박근혜 지지율 차는 10.1% 밖에 나지 않는다.


결론 격인 5부 ‘게임체인저의 등장’에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약자들끼리의 의자게임에 비유하며 게임의 운영자는 물론 게임판 자체를 바꿀 게임체인저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들은 말한다. “우리 각자가 게임체인저가 된다면 조금은 나은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그 게임체인저는 특정세대가 주도해서는 안 된다. 60년대생이 물러난 자리를 70년대생이 차지하는 것을 넘어 모든 세대가 각자의 임무를 하고 함께 이익을 나누는 형태여야 한다. 세대를 아우르는 팀플레이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386세대에게 주문한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은 30여 년 전 386세대가 눈물 흘리며 바랐던 그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바랐던 혁명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라면, 세대독점의 해소는 비록 늦었지만 혁명의 완결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이제는 혁명의 열정을 뽐내는 주제가 아니라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풍기는 혁명의 지원군으로서 말이다.”      


그들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아, 386세대가 혁명의 지원군이 될 수 있을까. 바로 뒷전에서 그들의 강하고도 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봐왔던 나로서는 두 가지 의미에서 ‘NO’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적어도 핵심층의 세대 동질감이 너무 크다. 아직 대학생이 사회에 참여하는 게 ‘대견’하게 대접받던 시절(지금처럼 ‘애들이 왜 저래’라고 손가락질당하지 않고) 맨주먹으로 절대악에 맞서고 있다는 느낌은 갓 스물의 그들을 한껏 고양시켰다. 저자들도 이들이 한때 거악에 맞서 투쟁전선에 나섰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 경험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그 부채감으로 인해 더욱 적극적으로 공통의 집단심성을 받아들였을 거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랬다. 한 동기는 “넌 쁘띠 부르주아니까 돈을 꿔 달라”라고 말했고 선배는 “미제의 구정물인 콜라를 왜 마시냐”라고 물었다. 시골 부모님이 학비 때문에 소를 팔았다고 말하는 동기 앞에서 죄지은 심정이었다. 계급도 안 좋은 주제에 운동도 하지 않는다는 자의식은 대학생활 내내 그늘을 드리웠다. 정치와는 무관한 서클에 들어갈 정도로 대차지는 않았던 난 학점이나 열심히 따면서 시간을 보냈고 졸업한 뒤 대충 문송에 걸맞은 직장에 들어갔다.      


사실 과가 싫어진 건 남성 중심 분위기에 질색하는 탓도 컸다. 이상했다. 형이라 부르며 일체의 여성성을 거세한 듯 쿨하게 굴던 여자 선배들이 왜 “여자들이 열 명이 넘게 들어왔으니 운동의 동력이 떨어지겠다, 망조다”라고 말하는 남자 선배들 앞에서 침묵했는지. 한 남자 선배는 술자리에서 내 옆에 앉아 빤히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너도 뜯어보니까 괜찮다” 지금이었으면 해 줄 말이 참 많은데, 아쉽다. 지금이었으면 적어도 단톡방에서 성토의 대상이 될만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서클실, 과방, 학회실이라는 말 속에는  음침하고 후미진 아우라가 스쳤다. 책 속 ‘옥바라지’라는 말에 지나간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문제는 이제야, 지금이었으면, 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몇 년 빨리 그들과 같은 연도에 태어났으면 같은 집단에 들어가 코호트 효과를 누릴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386 세대가 다시는 혁명 따윈 지원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두 번째 이유다. 그들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어깨 걸고 나아가던’ 그 시기에도 이미 승자와 패자는 있었다. 1점 차이로 B0와 C+이 갈리는 상대평가처럼 거리 역시 이후 누가 얼마나 가질 것인가 정해지는 시험의 장이었다.

우리 과 최고의 호프로 총학생회 간부였던 한 선배는 졸업하자마자 학교 재단에 스카우트되어 지금까지 이사장의 넘버 투로 잘 지내고 있으며 국정원에 다니는 아버지를 둔 한 여자 선배는(이 특이한 인적사항으로 그녀는 더욱 추앙을 받았다) 역시 졸업하자마자 대를 이어 국정원에 들어갔다. 그때 알았다. 뭐든 잘해야 하는구나. 이쪽에서 좋은 건 저쪽에서도 먹히는구나.

더 웃기는 일은 공산권이 붕괴하면서 본격적으로 운동권이 저물기 시작한 90년대 중반에 일어났는데 그간 공부와는 담쌓고 지내와 취업이 막연했던 선배들 몇몇이 무슨 꼬임에 넘어갔는지 불법다단계에 빠져서 과 사람들을 꼬여내 다단계 숙소에 데려가거나 자석요를 팔았다.(진짜다. 학생운동권 중 일부가 변질되어 만들어진 조직 중 하나가 한국 불법다단계 시초라고 함). 나도 한 학번 위 선배한테 걸려들었는데 그 선배는 대상자의 약점을 공략하라는 교육을 잘 받았던지 마침 백수였고 방송 쪽에서 일하고 싶었던 내 취향을 확 저격한 제안으로 꼬여냈다. 방송 프로그램 촬영이 있는데 작가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1박 2일 짐을 싸 오라는 말에 엄마 격려까지 받아가며 신사역에 배낭을 메고 나갔는데 그래도 양심에 찔렸던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주면서 이실직고했다. 어찌나 황당했는지. 동기들한테 연락을 돌려보니 스키장 알바 제안을 받고 사무실 문 앞까지 끌려갔던 친구도 있었다. 그 선배는 이후 정신을 차리고 어찌어찌 무려 지하철공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몇 년씩 필기에 인적성 공부하고 입사한 후배들한테 큰소리치면서 정년 기다리고 있겠지.      


이렇게나 나 또한 애증이 많지만 386세대에 대해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게 내키진 않는다. 나이가 깡패라고 욕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 뒤통수 쳐다보고 따라다닌 덕분에 얻어걸린 몫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난 성공한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더 많이 안다. 서울 시내 그럭저럭한 대학 문과를 나오면 그때도 대기업 추천받긴 힘들었다. 게다가 시험 거부에 취업 공부까지 게을리한 다음에야...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 세대에 대한 험담은 참으로 많았다. 좁은 뜻으로는 정치권의 특정 연령대 그룹이지만 그들은 세대의 상징으로 가장 큰 권력을 잡고 있을 뿐, 노래방에 가서 흐느끼듯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불러 제끼는 부장님들까지 치면 꽤 많은 인간들이 386세대로 묶이기 때문이다. 위로는 좀 젊게 사는 유신세대, 밑으로는 이미 늙수구레해진 X세대에 이르기까지 구별이 좀 애매한 중늙은이들을 다 치면(사실 젊은 세대 눈으로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사무실, 지하철, 광장 등 여기저기 바퀴벌레처럼 참 많기도 하다는 느낌도 들만 하다. 실제로도 베이비부머들이기도 하고. 386세대와 동시대를 살아온 나로서는 그저 “내 나이가 어때서”라던가 “아직도 한창 때야”라고 일갈하는 그들 앞에서 예의 바르지만 겸연쩍게 피식 웃어드리고 속으로는 ‘난 저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정도 밖엔 할 일이 없다. 나에게 386세대는 사회학적인 용어나 개념이 아니라 고유명사를 가진 수많은 얼굴들의 조합이므로 비판이나 대안 제시는 불가능하다. 모쪼록 뒷 세대들이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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