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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Aug 15. 2021

나도 모르게 나오는 비교하는 말

  아이가 9-10개월 되었을 때 일이다. 신랑과 나는 한겨울의 추위를 뚫고 용산 아이파크로 외출을 했다. 아기 이유식과 기저귀 등 아이 용품으로 빵빵하게 채워진 가방을 유모차에 걸고 쇼핑몰을 한 바퀴쯤 돌아서 유아 휴게소로 찾아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밖에서 이유식 먹이기를 처음 시도하는 거라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유아 휴게소 한쪽 끝에서는 한 부부가 20개월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유아용 식탁의자에 앉힌 채 밥을 먹이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그 부부와 거리를 두고 앉아서 우리 아이를 위한 유아용 식탁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았다.


  “냠냠~, 아구~~ 잘 먹는다!”


  내가 내는 “냠냠”소리에 맞춰서 우리 아이는 이유식을 잘도 받아먹었다. 우리 아이는 다행히 밖에서도 가리지 않고 이유식을 잘 먹었다. 내 목소리에는 기분 좋은 추임새에 묻어났다. 옆에서 밥을 먹던 여자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를 보며 “냠냠”하는 소리를 따라 했다.


  “아휴, 너. 밥 안 먹을 거야? 딴짓하지 말고 밥 먹어.”


  여자아이 엄마는 속이 터지는 듯 말했다. 가만 보니 여자아이는 우리보다 먼저 와서 먹고 있었는데, 남은 밥이 우리 아이 밥보다 많았다. 여자아이는 숟가락을 피해 몸을 좌우로 뒤로 젖히고 있었다. 엄마 아빠에게 고개를 돌린 채 우리말을 따라 하고, 우리 아이에게 손짓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내가 아이에게 계속 “냠냠~” 소리를 내며 이유식을 먹일 때, 여자아이 엄마 목소리에는 점점 한숨이 실렸다.


  “옆에 아기는 잘 먹잖아. 너도 어서 먹어.”


  나는 어쩐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여자 아이 엄마는 “아~”도 하고, “냠냠!”도 하면서 아이 입을 벌리려고 고군분투했다. 중간중간 우리 아이처럼 먹으라고 이야기가 들렸다. 여자아이는 더더욱 몸을 꺾으며 우리 아이 식탁으로 몸을 돌렸다. 여자 아이 엄마는 “아기도 먹잖아. 누나가 돼서 왜 그래”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우리 아이가 이유식을 모두 먹고, 우리가 유아 휴게소를 떠날 때까지도 여자 아이 엄마는 진땀을 빼고 있었다.


  나는 유아 휴게소를 나오면서 신랑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도 조심해야겠다고. 신랑은 어리둥절해했다. 나는 신랑에게 이어서 말했다. 나는 여자 아이네 상황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잘 먹는 아이라 다행이었지만, 먹을 것이 아닌 다른 걸로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일이 분명 있었고 앞으로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에 걸리는 건 바로 엄마의 말이었다. 여자 아이 엄마는 우리 아이처럼 잘 먹으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아마 여자 아이가 먹을 것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한 것일 테다. “옆에 친구 봐봐. 친구는 잘하네.” 같은 말은 사실 우리 부부도 의식하지 않고 자주 사용해왔다. 비슷한 또래 아이의 모습을 보면 아이가 더 잘 따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유아 휴게소에서 제삼자가 되어서 들으니, 그 말은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말이었다. 그동안 너무 쉽게 나오는 말이라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유아 휴게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면서 앞으로는 주변에 있는 또래에 빗대서 하는 말을 조심하자고 신랑과 이야기 나눴다.


  그 후,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 등원도 시작하고, 놀이터에서 종종 놀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 또래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김없이 이런 말을 했다.


  “친구는 미끄럼틀 잘 타네~, 우리 아기도 친구처럼 미끄럼틀 타볼까?”  


비교하는 말이 언제부터 내 몸에 밴 건지, 자꾸만 튀어나왔다. 반사적으로 나오는 말을 잡기 쉽지 않았다. 나는 비교하는 말을 뱉어놓고 나서야 유아 휴게소 일을 떠 올 리며 후회하곤 했다.


  어린이집 등 하원 길에 아이와 같은 반 친구를 만나는 경우도 늘었다. 우리 아이는 11월생 아이라 1,2,3월 생 친구들은 잘 걷고 말하고 뛰었다. 나는 그때마다 아이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말을 걸었다.


“우와~! OO이 정말 잘 걷는다. 우리 아기는 언제 이렇게 잘 걸을까?”

“친구는 말도 잘하네~ 예뻐라. 우리 아이도 금방 말할 거지?”


아이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한다는 게 우리 아이와 비교하는 말이 되기 일쑤였다. 내 말은 내 마음과 다르게 우리 아이에게 친구처럼 하라는 은근한 독촉을 하는 것처럼 들였다. 주변 아이와 빗대어 우리 아이 행동을 유도할 때뿐 아니라 아이 친구에게 칭찬을 할 때도 비교 같은 말이 자연스레 나오고 있었다. 나는 비교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을 바꾸고 싶었다. 어떤 날은 펄쩍펄쩍 뛰는 아이 어린이집 친구를 보며 고심해서 꺼낸 말이 이랬다.


“OO이 정말 잘 뛴다. 우리 아기도 곧 OO처럼 잘 뛸 수 있을 거야.”


이 말도 뱉어 놓고 보니 결국 비교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 아이는 잘 뛰는 친구를 부러워한 적도 없는데, 애먼 위로를 한 셈이었다. 비교하지 않고 말하기가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었을까.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낫겠다 싶어 졌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아무 말이나 할 것이 아니라 침묵하라고. 그때, 침묵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에게 다른 아이 행동을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다음번에는 우리 아이를 향해 말을 던지지지 않기로 했다.


  그 후 아이가 17개월이 어느 날, 등원 길에 할머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여자 아이를 만났다. 우리 아이 어린이집에 새로 온 친구였다. 나는 내 손을 뿌리치고 달려 나가는 아이를 쫓아가서 아이를 낚아채듯 안아 올렸다. 그리고는 여자 아이와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아 안녕. @@이 할머님 안녕하세요. @@이는 할머니 손 잡고 얌전히 걸어가는구나~.”

사실 우리 아이도 내 손을 잡고 얌전히 걸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말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우리 아이에게는 천천히 어린이집으로 가보자고 말하고 안은채 걸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다시 걷고 싶으면 말해달라고 이야기하며 우리 아이에게 관심을 돌렸다. 나는 여자 아이와 할머니에게 다시 인사한 뒤 우리 아이와 함께 앞서 걸어갔다.


  비교하는 말을 고치려고 겨울부터 여름이 되도록 시행착오를 겪어 오면서도 아직도 가끔씩 나도 모르게 그 말들이 튀어나온다. 은연중에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비교하는 말에 침묵하는 긴긴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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