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많아서 방황했던 30살의 고백
삶은 예측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예측할 수 없기에 대부분은 당황스럽고 힘들다.
어릴 땐 그런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면면들이 부담스러웠고, 해결할 수 없음에도 며칠 밤을 고민하며 머리를 싸매곤 했다. 해결되지도 않았고,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았지만 태생이 그렇다고 치부하며 질풍노도의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런 어린 시절을 지나, 어느덧 인생의 계란 한 판을 채우고도 세개가 남도록 나이를 먹었다. 새로운 한 판을 채우고 다른 한 판을 채우기 시작했던 2021년은 꽤나 변화무쌍했다. 오늘은 변화무쌍했던 지난 3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2019년 남들보다 2년 정도 늦게 졸업을 했다. 누구나 그렇듯 훌륭하고 좋은 대기업을 골라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듯 정신없이 취업리스트를 만들었던 때가 있었다. 거의 200개 정도의 회사에 지원했고, 80% 정도는 불합격, 나머지는 1차, 2차, 최종, 실무진면접 등 파란만장한 과거를 남긴채로 나의 USB에 남아있다. 정량적인 평가로 아주 훌륭한 일류 기업에는 취업하지 못했지만, 좋은 처우를 등에 업은채로 당당히 합격 통보를 받아냈다. 2019년 6월, 돈도 열심히 모아서 효도도 하고, 회사에서 야근하며 프로젝트를 도맡아 준비하는 멋진 신입사원을 꿈꾸며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만난 동료들은 모두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잘 챙겨줬고, 하나하나 친절히 알려주며 나를 팀의 일원으로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살갑게 챙겨주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체된 사업에만 매진하는 회사가 나를 성장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술독에 빠져 "누가 더 이번 회식에서 술을 더 마셨냐"며 자랑하는 회사 내 풍토가 꽤나 불편했었다. 야근은 커녕 칼퇴하기 바빴고, 일 얘기보다 술잔을 먼저 기울이는 업체 사장님들과의 식사 자리가 다가올 때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 시간이 누구에게는 성장의 시간, 사회생활을 배우는 시간일 수 있다. 그때 좀 더 노력하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종종 들곤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모든것으로부터 다 도망치고 싶었다.
지인들과 동료들은 나의 퇴사를 치기어린 마음, 사회경험 부족,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없는 것 때문이라며 만류했다. 그럼에도 난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내 소명과 원대한 꿈을 그곳에서 이룰 수 없다는 명목 때문이었다. 2021년 7월, 미국물 좀 먹은 나는 그렇게 프리랜서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