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고사 성적만 보고 원서 쓰지 마세요
우리 반 A는 10여 차례의 모의고사 모두 영어는 1~2등급, 사탐도 2등급 정도가 나왔다. 가끔 영어나 사탐이 3등급으로 떨어지면 수학이 2등급으로 올라 안정적인 2합 5등급이 만들어지는 식이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은 2합 5, 2합 6, 3합 7 정도의 수능 최저 기준을 요구한다. 말 그대로 2개 과목 등급의 합이 5등급 이내, 세 과목 등급의 합이 7등급 이내라는 의미이다.
이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진로가 변경되어 가고 싶은 학과에 원서를 내기 힘든 시점이라 5개의 교과 전형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교과 전형은 내신 성적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기에 고등학교 수준과 편차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전국 단위 시험인 수능의 ‘최저등급’을 요구한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학업 역량이 되려면 수능을 이 정도는 볼 실력이어야 한다는 마지노선을 정해두는 것이다. 이는 정시 일반전형으로 해당 대학에 가기 위한 성적보다는 훨씬 낮은 성적으로, 자격 요건에 해당한다.
재학생이 수능 최저등급을 맞출 수 있을지, 없을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전국 단위의 모의고사를 치르는 길이 유일하다. 특히, 3학년 6월과 9월 평가원 시험은 수능을 출제하는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주관하여 출제하기에 가장 신뢰도가 높은 시험이다. 다행히 A는 평가원 시험에서도 곧잘 2합 4를 맞추곤 했다. 아무리 재수생이 들어와서 등급이 떨어진다고 해도 2합 5나 2합 6 정도는 무리 없이 원서를 써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원서를 쓰고 있을 때 베테랑 고3 담임샘들은 그래도 최저 없는 대학을 하향으로 하나 쓰도록 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내심 최저 없는 하향 카드는 충청권에 있고, 여기까지 갈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괜히 썼다가 수능을 잘 보고 수시 납치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수시를 붙으면 수능을 잘 봐도 정시를 쓸 수 없어 납치된다는 표현을 쓴다.) 결론은 ‘이 학교마저 쓰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의 상황이 되었다. 수시 납치는커녕 수능 시험장에서 너무 긴장한 A는 1교시 국어를 망쳤고, 줄줄이 그동안 보지 못한 등급을 받아왔다. 최저가 있는 5개는 모두 자동 탈락해 딱 1개의 카드만 남아버린 상황이 되었다.
상위권에서는 N수생이 1등급을 거의 가져가고 한 등급씩 밀리는 것은 기본이다. 밀린다는 것을 알고 넉넉하게 3합 7까지 원서를 썼는데도 이렇게 훅 떨어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학생이 A뿐이 아니다. 수능 날 최저등급을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학원 모의고사는 주로 저녁 시간에 치르고, 학생들 입장에서 뇌가 활성화 되어 있는 시간은 저녁이라 등급이 잘 나온다.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치러도 평소 공부하던 공간, 익숙한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는 공간이라 긴장도가 낮다. 그러나 수능 시험장은 낯선 공간에 N수생들의 위협, 큰 시험이라는 긴장도가 높아 재학생이 모의고사 정도의 성적을 받기는 쉽지 않다.
우리 학교가 특별히 정시에 특화된 학교가 아닌 평범한 일반고라면 수시 6장의 카드 중에서 반드시 수능 최저를 못 맞출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 수시 때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가 정시까지 넘어가면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도전’, ‘위험’이 뜨는 학교들이다. 원서를 쓸 때 항상 변수를 생각해야 하고, 언제나 나에게는 뜻밖의 행운이 따를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안전장치 하나쯤은 꼭 마련해 두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