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도 친구 관계는 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른들이 고단했던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 시절 친구들과 쌓은 추억 때문입니다. 공부에는 별 뜻이 없었더라도 친구들과 하교 후에 수다 떨던 떡볶이집, 그 시절 매점에서 깔깔거리며 먹었던 국진이빵 같은 건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담임선생님이 험악해서 모두를 숨죽이게 했던 교실에서도,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이 있던 시절에도 우리는 친구들과 동지애를 불태우며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2020년 교실의 아이들도 똑같습니다. 공부에 뜻이 있든 없든 일단 교우 관계가 원만한 학생들은 학교생활을 즐겁게 합니다.
학부모님의 학창 시절처럼 한 반에 50명이나 되는 친구들이 있을 때는 친구를 사귀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만화에 빠진 독특한 친구가 있다고 칩시다. 한 반이 50명이나 되었을 때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가 한 명쯤은 더 있었습니다. 아주 조용한 친구도 비슷하게 내성적인 친구를 만나 둘이 단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학급에 25명 내외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요즘은 남녀 합반이 일반적이라서 겨우 12~13명 정도만 동성 친구입니다.
여기에는 반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4명씩 친한 무리가 둘(4*2=8), 두 명씩 단짝인 친구가 둘(2*2=4) 정도의 조합으로 교우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럼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고 단짝도 만들지 못한 한 두 명 정도의 친구가 꼭 남습니다. 고1 담임을 할 때 이런 친구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너무 안타깝지만, 담임으로서 도와주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중고등학교로 올라오는 순간, 교우 관계만큼은 담임이 개입하면 할수록 조심스럽고 어려운 영역입니다. 그래도 반복해서 친구들이 무리를 형성하는 것을 관찰한 결과, 외톨이가 되는 친구들의 전형적인 유형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한다고 친구가 생긴다고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알아야 도움이 됩니다.
고1 교우 관계- 실패하는 친구들의 세 가지 유형
1) 익숙한 친구와만 어울리는 친구
고1에 올라와 교우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의 특징은 익숙한 친구만 찾아가는 유형입니다. 아무래도 학교급이 바꾸고 여러 중학교 출신의 친구들이 섞이다 보니 1학년 친구들은 3월 초 학교 적응을 많이 힘들어합니다. 학교에서는 괜찮은 척하지만, 집에 가서 교우 관계 때문에 속상해 우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학부모 상담을 할 때마다 “중학교까지는 친구랑 문제가 없었는데, OO이가 친구 사귀는 게 너무 힘들대요.”라는 말씀을 많이들 하십니다. 코로나 시기에 이런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1학년 학생들은 3월 초 낯선 교실에 적응하는 게 힘들어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다른 반 아는 친구를 찾아갑니다. 같은 중학교의 마음 맞는 친구를 찾아가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어쩌면 당연할 수 있습니다. A는 급식 시간에도 친구 B의 반이 급식실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기다려서 애써 같이 점심을 먹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B는 학급 안에서 또 다른 친구를 사귄다는 겁니다. 그래도 의리가 있어서 3월까지는 A랑 같이 급식도 먹고 쉬는 시간도 함께 보내는데, 아이들의 의리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B는 시간이 지날수록 친해진 학급 친구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싶은데, 자꾸 A가 오니 불편합니다. A는 계속 다른 반 친구들 사이에 끼어야 하는 처지가 되자 눈치가 보입니다.
그래서 A가 뒤늦게 학급 안의 친구를 사귀어 보려고 하지만, 반 안에서 이미 무리가 형성된 후입니다. 중학교까지는 교실에서 점심을 먹거나 선생님의 인솔하에 급식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등학교는 점심시간부터 학생들끼리 이동합니다. 이동 수업도 많아서 반 안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계속 혼자 다녀야 합니다. 원래 사교성이 없는 것도 아닌데, 친구 사귈 시기를 놓치다 보니 갑자기 왕따가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4~5월쯤 상담 기간에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은데 레퍼토리가 너무 비슷해 안타깝습니다.
3월만큼은 어색해도 급식실이나 교실로 이동할 때 같은 반 친구랑 다녀야 합니다. ‘음악실 어딘지 알아? 나 길친데 너 따라가도 돼?’ 하면서 같이 찾아다녀야 가까워집니다. 어차피 친구도 낯선 학교의 특별실이 어딨는지 잘 모릅니다. 교실을 찾아가는 모험을 함께 하면서 둘이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같은 중학교 출신의 친구들이 있다는 것으로 안심하지 마시고, 반 안에서 친구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3월 초 조언해 주시면 좋습니다. 아이들이 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학교생활이 행복하지 않은데 적응을 잘하고 성적이 오르는 법은 없습니다.
안정적으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대화를 나누고 조언하는 것이 성적에 대한 염려보다 우선입니다.
2) SNS에 불필요한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친구
학생들은 주로 SNS로 소통합니다. 어른들은 메신저로 카카오톡을 많이 이용하지만, 아이들은 주로 페메(facebook messenger)를 활용해서 소통합니다. 그런데 본인 계정에 불필요한 글을 올려 물의를 일으키고 교우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저희 반 A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책에 대한 서평을 페이스북에 남겼다가 페미니즘을 욕하는 무리의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특별히 이상한 내용은 없었는데, 글을 오해하고 해석을 잘못한 남학생들이 이 여학생을 공격했습니다. B는 본인이 체험학습을 가서 찍은 사진을 재미로 올렸는데, 뒷배경의 친구들 무리가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이 같이 포착되어 곤경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온갖 뒷담화와 사진으로 인한 갈등의 시초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 남긴 글과 사진입니다. 학교폭력까지 신고되는 사건 대다수에 SNS 욕설, 신중하지 못한 글, 사진이 빌미가 됩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SNS 사용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구더기 무서우니 장 담그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담임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큼 SNS에 글이나 사진을 공유했다가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꼭 SNS를 하고 싶다면 친구들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을 것, 민감한 주제에 대한 언급은 피할 것, 사진은 초상권에 유의할 것 등 온라인 매너를 지키고 주의해서 SNS를 활용해야 합니다. 고등학생 자녀의 휴대폰을 마음대로 열어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가끔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는지, 인스타에 어떤 사진을 올리는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시면서 경각심을 갖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이기적인 친구
고등학교에서의 친구 관계는 중학교와 조금 다른 양상을 띱니다. 학부모님은 이런 분위기를 겪어보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학교 안에서 9등급 상대평가를 하게 된 후부터 학생들은 친구를 직접적인 경쟁상대로 여깁니다. 그래서 본인이 다니는 학원을 공개하지 않는 친구도 있고, 수행평가 정보를 알면서 감추기도 합니다. 중요한 공지사항, 대회 정보 등을 게시하면 친구들과 공유하지 않고 혼자만 챙기면서 수상까지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심지어 1분 지각한 친구를 이르면서 원칙대로 미인정 지각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수행평가 같은 조 친구가 참여한 게 없으니 친구의 점수를 깎아달라고도 합니다. 물론 학생 개인의 이기심으로만 돌릴 수 없는 제도적인 문제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도 경쟁상대를 학급 내 친구로 두지 않고, 같이 잘해보자고 격려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작년 저희 반 A는 본인이 고생해서 90% 이상의 수고를 해낸 결과물을 같은 조 친구들의 공로로 함께 여기며 오히려 선생님께 함께 만든 작품임을 강조했습니다. 반 친구들과는 ‘누가 더 오래 공부하나?’와 같이 서로에게 발전이 되는 부분에서만 경쟁했습니다. A 덕분에 공부 시간을 재는 어플을 반 친구들이 모두 같이 깔고, 다 같이 열심히 공부해서 학급 성적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A는 중요한 공지라고 생각되면 단체 대화방에 빠짐없이 올리면서 ‘꼭 제출하자, 할 수 있어!’와 같은 응원의 문구를 남겼습니다. 담임이 말하면 잔소리가 될 이야기를 친구가 격려하고 함께하자고 독려하니 저도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학급 아이들도 이 친구 덕분에 수행평가 제출일을 지킬 수 있었고, 공부하는 데 큰 자극과 도움이 되었다며 고마워했습니다. 그리고 A는 2학기 학급회장 선거에서 만장일치로 회장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본인의 것만 지키려는 친구는 인기가 없습니다. 다 같이 잘하자는 윈-윈(win-win)의 자세로 학급 친구들을 대할 때 친구들의 인정도 받고 본인도 성장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