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그래퍼 May 07. 2020

런던의 일곱 번째 조각 [런던의 버스기사]



 달리던 87번 버스가 멈춰 섰다. 가뜩이나 출근길에 시원찮게 달리지 않던 버스라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상태였는데, 버스기사는 버스를 세웠다. 사실 이 버스를 타기 직전에 정류장에서 2대의 87번 버스를 선 채로 보내버려야 했다. 사람이 꽉 차 있다는 이유로.... 하지만, 떠나는 버스의 뒷부분을 보면 텅! 텅! 입구에만 사람들이 모여 병목현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어렵게 사람들을 밀고 올라탄 3번째 버스. 이 버스도 만원이다. 한데 좀 전부터 이 버스기사가 자꾸 나보고 안으로 들어가라고 주저리, 주저리를 하였다. 하지만, 뒤에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질 않는데 내가 무슨 방법이 있나! "너는 짖어라 나는 못 움직이겠다"

  

 "너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네가 뒤로 안 들어가니까, 다른 사람들을 더 태울 수가 없잖아!"

 

 런던에서 참고 참고, 또 참고를 반복하던 나였지만 이번은 도저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를 할 수가 없었다. 필터링되지 않은 selfish라는 단어가 정확히 내 귀에 꽂혀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도 반격을 시작하였다.  

 

"야! 네가 여기서 한 번 봐봐! 사람들이 움직이질 않는데, 내가 여기서 어떻게 움직일 수 있나. 네가 내 상황을 보고도 내게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나 한번 봐보라고!"  


 얼마만의 내지름인지 기억도 못할 만큼의 흥분을 버스기사에게 토해내었다. 그러자 기사양반은 '그래 한번 봐보자!'라는 표정으로 갑자기 버스를 세웠다. 운전석 문을 열고 나온 기사양반은 나의 말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1층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좀 들어가! 왜 이렇게 안 들어가는 거야. 거기 중간에 아저씨, 좀 들어가라고! 지금 몇 정거장을 그냥 지나쳤는지 알아?!? 왜 이렇게 이기적인 거야?!"

 "나! 당신네들이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로 운행을 하지 않을 거야.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이기적인지 모르겠어!" 


 한바탕 사자후를 지른 기사양반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말대로 시동은 다시 걸리지 않았다. 출근길 시간에 덩그러니 도로 한복판에 버스 한 대가 서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조금씩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가는 승객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버스기사의 행동이 우스운 듯 킥킥 웃어대던 승객들은 조금씩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인지한 후,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뚫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내 앞의 사람들은 마치 적진을 쳐들어가는 군사들처럼 뒷좌석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하였다. 기사가 버스 시동을 꺼버린지 불과 1분 후, 드디어 버스 내부에 넉넉한 공간이 생겨났고, 나 역시도 뒷 공간으로 이동을 할 수가 있었다. 나의 이동을 확인한 기사는 버스 내에 설치된 CCTV를 살피고는 시동을 걸었다. 

 

 '하..... 안 그래도 버스 두 번이나 그냥 보내고, 늦었는데! 이 일로 몇 분을 더 보내버렸는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우리의 열정적인 버스기사는 나의 이런 걱정을 '기우'로 만들어 버리듯, 신들린듯한 코너링과 액셀레이터로 승객들과의 실랑이로 소모해버린 시간 이상만큼을 빠르게 우리를 목적지에 내려 주었다. 

 

 사실 런던에서 생활을 하면 버스정류장에서 문을 열어놓고 승객과 싸우는 버스기사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나는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로 그러한 광경에는 분명 버스기사보다는 승객에게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으레 짐작을 하곤 하였다. 한국에서는 '고객이 왕이다'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여 웬만해서는 버스기사 아저씨들이 승객들에게 그 정도의 화를 내는 장면을 목격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가장 큰 목소리를 가진 직업군의 사람을 뽑으라 한다면, 난 의심 없이 버스기사를 뽑을 것이다. 자신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손님이라 생각되면 승차를 거부하고, 혹시라도 운행 중에 자신의 업무시간이 끝난다면 버스 내에 모든 승객들을 내리게 하고 다음 버스를 이용하게 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 무례한 그들의 처세이지만, 또 달리 보면 그들도 그들의 업무 외 시간과 쾌적한 작업환경을 누릴 인권이 있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가 없다. 비단 이 사례뿐만이 아니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에도 이들에게는 위아래의 구분이 없이 동일선상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부당함에 고함지르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피해에 자신 스스로가 변호를 함에 있어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 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에 그러한 관계가 어쩔 때에는 한 없이 부러워 보일 때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없이 불편할 때도 적지가 않다.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와 그들의 차이에서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문화인지. 아마 문화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처럼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그들의 삶의 방식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정답일지도.              

작가의 이전글 런던의 여섯 번째 조각 [YOU]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